‘성장·안정’ 게임사에 잇따르는 러브콜…코로나19 대표적 ‘수혜 업종’, 인건비 부담은 풀어야 할 숙제
[마켓 인사이트] 회사채 시장에서 변방에 머무르던 게임 기업이 최근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에 이어 펄어비스·컴투스·더블유게임즈 등 성장성과 안정성을 두루 갖춘 게임사들이 연이어 회사채 시장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약점으로 꼽히던 실적 변동성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가파른 신용도 상향 가능성을 앞세워 기관투자가의 잇단 ‘러브콜’을 이끌어 내고 있다.외형 성장 앞세워 시장 주류로 부상
올해 공개 모집 회사채 시장에선 유독 ‘뉴 이슈어(new issuer)’의 등장이 많았다. 뉴 이슈어는 회사채를 처음 발행하는 기업을 뜻한다.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거나 기업어음(CP) 발행만으로 자금을 조달해 오던 기업이 처음으로 회사채 시장에 모습을 보일 때 상징적인 의미로 뉴 이슈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회사채 시장에서 기관투자가의 수요를 확보하려면 어느 정도 사업 규모가 되고 재무 상태가 탄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미 회사채 시장에서 여러 번의 자금 조달을 추진해 기관투자가에 인지도를 쌓은 중견 이상 기업이 아니면 회사채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사채 발행과 유통 시장이 대기업 위주로 형성돼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올해 뉴 이슈어들이 속속 등장한 것은 금리 인상기가 도래해서다. 조달 비용이 높아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운영·투자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몰린 것이다. 향후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 자금 조달 채널을 다각화하려는 기업도 많았다.
최근 등장한 뉴 이슈어들의 특징 중 하나는 게임사들이 집중적으로 포진돼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온라인 게임 ‘검은사막’으로 잘 알려진 펄어비스는 올해 7월 1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 예측(사전 청약)을 진행했는데 모집 금액의 세 배가 넘는 3170억원의 투자 수요가 몰렸다.
펄어비스는 최종적으로 당초 예상보다 많은 147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펄어비스는 조달 자금을 기존 지식재산권(IP)과 신규 IP 관련 개발·마케팅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모바일 게임인 ‘서머너즈 워’로 유명한 컴투스 역시 회사채 시장에 올해 데뷔했다. 컴투스도 펄어비스와 마찬가지로 첫 회사채 발행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컴투스는 올해 7월 1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 예측을 실시했다.
자산 운용사를 위주로 컴투스 회사채에 투자하겠다는 기관투자가가 줄을 이었고 최종적으로 3580억원의 수요가 몰렸다. 기관투자가의 희망 수요를 고려해 컴투스는 회사채를 1910억원으로 증액 발행했다.
게임사 중 일찌감치 회사채 시장에 터를 잡은 엔씨소프트는 주기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올해 7월에도 24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넷마블도 지난해 처음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첫 발행인 만큼 800억원 규모를 예상했지만 투자 의사를 밝힌 기관투자가의 투자 수요는 5600억원에 달했다. 기관투자가의 쏟아지는 증액 요청에 넷마블은 최종적으로 회사채 발행 금액을 당초 예상보다 두 배로 늘렸다.
올해 4분기에도 이 같은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 접어든 데다 기관투자가들이 연말을 앞두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비우호적 상황에서도 더블유게임즈는 창립 이후 첫 회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비대면 확산에 달라진 위상…인건비·개발 부담은 ‘숙제’
회사채 시장에서 게임 업체들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산업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게임 산업은 코로나19의 수혜를 본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비대면 문화 확산에 힘입어 게임업계 저변이 빠르게 확산된 덕분이다.
실적도 빠르게 개선됐다.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높은 수익성을 보이는 게임 업체가 속속 등장했다. 여기에 게임업계에서 연이어 기업공개(IPO)가 이어지면서 자본 시장에서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채권 시장은 주식 시장에 비해 게임 업체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낮은 편이었다. 높은 성장성 덕분에 주식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 게임 업체라도 신용도 측면에선 그리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었다.
김승범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게임 업체는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신작 게임의 높은 흥행 리스크와 그에 따른 실적 변동성에 대한 부담감으로 회사채 투자자에게 큰 환영을 받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게임 산업이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라는 인식도 회사채 시장 진입에 걸림돌이었다. 이 산업은 사행성과 중독성을 이유로 정부의 각종 규제를 심하게 받아 온 업종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게임 산업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면서 규제 압력이 누그러졌다.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완화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되면서 신용도 관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됐다. 한국기업평가는 “포트폴리오는 사업 기반의 안정성을 판단하는 핵심 요인”이라며 “최근 게임 업체들이 라인업을 확대하고 지역 다각화와 플랫폼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사업 위험이 분산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시장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다수의 대형 업체들이 생겨났고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 전략 추진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 욕구도 커졌다. 환경적 요인과 기업 수요가 적절하게 맞물린 셈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일단 급증하는 인건비 부담이다. 게임 업체들은 전문 개발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인력 수요가 급격하게 늘면서 임직원의 연봉 인상이 잇따르고 있다. 인건비 인상은 게임 업체들의 영업이익률 저하로 나타난다.
다양한 게임 장르 개발도 필수다. 한국 게임들의 유사한 시스템과 과금 구조로 이용자들의 피로도는 쌓여만 가고 있다. 이에 따라 게임 업체의 신용 등급에 대한 신용 평가사들의 의견은 아직 엇갈린다.
실제로 더블유게임즈의 신용 등급을 한국신용평가는 ‘A’, 한국기업평가는 ‘A-’로 매기고 있다. 펄어비스의 신용 등급 역시 한국기업평가는 ‘A’, 나이스신용평가는 ‘A-’로 부여하고 있다.
조원무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시장이 커지면서 게임 업체들이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며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만으로는 M&A 자금을 모두 충당하기 어려워 앞으로도 비교적 낮은 금리로 장기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회사채 시장에 게임 업체들의 진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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