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후 IT·스타트업 몰려 들어…1300개 판교밸리 기업 중 대기업 비율 4.77% 불과

[스페셜 리포트] ‘혁신 성지’ 판교밸리에서 본 미래
다리에서 본 판교테크노밸리. / 이승재 한경비즈니스 기자
다리에서 본 판교테크노밸리. / 이승재 한경비즈니스 기자
판교테크노밸리는 경기도가 주도해 성남 지역에 조성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도시형 혁신 클러스터다.

판교제1테크노밸리는 성남시 삼평동 일대에 정보기술(IT)·통신기술(CT)·바이오기술(BT) 등 융합 기술 중심으로 조성된 클러스터다. 판교제2테크노밸리는 성남시 금토동 일대에 4차 산업혁명 기술, 자율주행 기술 등을 중심으로 현재 조성 중인 클러스터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술 혁신 클러스터라 판교에 뒤따르는 수식어도 화려하다.

‘K-실리콘밸리’
‘ICT 융합의 메카’
‘4차 산업혁명의 산실’


화려한 수식어를 입증하는 것은 수치다. 경기도 산하 공공 기관인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판교밸리의 입주 기업 수는 총 1300개다. 2019년 말 1259개보다 약 3.3% 증가했다.

1300개 기업이 뿜어내는 파워는 막강하다. 총매출액은 108조8000억원으로, 한국의 2020년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인 1933조원의 5.6%에 달한다. 대기업 비율 4.77%로 이뤄낸 성과다.

입주 기업의 규모는 중소기업이 85.54%로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의 비율이 높다. 대기업은 4.77%, 중견기업은 7.46%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총 12.23%를 이룬다. 업종은 IT 64%(832개), BT 15%(193개), CT 13%(169개)로 ICT의 비율이 매우 높다. 특히 게임, 응용 소프트웨어,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업종이 주를 이루고 있다. ICT 업종이 밀집해 있다 보니 입주 기업 간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이 형성되고 있고 기업 간 융합 기술의 개발 사례 등이 나타나 집적에 의한 시너지 효과가 있다. 판교 특유의 문화 정체성을 기반으로 일·여가·문화가 어우러진 공간, 젊고 창의적인 ICT 전문 인력이 집적된 창조 지구로 거듭난 지 오래다. 최수혜 CBRE코리아 리서치 부문 이사는 “판교밸리는 정부나 지자체 주도하에 진행된 여러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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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말하는 판교밸리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지자체가 계획·사업의 전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판교가 실리콘밸리를 표방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경우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산업 클러스터라면 판교는 계획 단계부터 신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도가 조성했다. 1996년 당시 경기도는 지식 산업 위주 정보통신·소프트웨어·반도체 산업 등 벤처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대규모 도시형 종합 첨단 벤처 단지의 필요성을 들며 330만㎡의 판교테크노밸리 조성 계획을 세웠다. 정부 역시 신도시 자족성을 위해 벤처 단지 조성에 공감했지만 수도권 과밀화 우려로 도의 대규모 벤처단지 계획엔 반대했다. 양측 간 시각차를 좁혀 나온 것이 66만㎡(약 20만 평) 규모, 지금의 제1판교테크노밸리다.

도는 첨단 벤처 단지 조성을 위해 IT와 IT 관련 연구·개발(R&D) 융합 분야로 업종을 제한했다. 그리고 이들 업종에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익성을 추구하지 않고 기업을 위해 최대한 저렴하게 용지를 공급했다. 당시 책정된 토지 공급 가격은 3.3㎡당 평균 952만원대다. 이는 강남 테헤란밸리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핵심 입주 기업을 사전 결정하며 기업들의 조기 정착을 유도했다. 앵커(anchor) 역할을 한 곳이 바로 글로벌 R&D 기업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협력해 설립한 한국파스퇴르연구소다. 이 회사는 2009년 판교밸리에 최초로 입주했는데 부지 무상 제공과 건축비· 연구비를 일부 지원받는 혜택을 누렸다. 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기적 개발 이익과 임대 수익 목적의 입주까지 제한했다. 첨단 벤처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최수혜 이사는 “판교는 지자체의 정책적인 세제 혜택, 저렴한 용지 공급 등이 기업에 좋게 작용한 부분 외에도 공정 산업 공간의 시너지 창출과 업무 시설 외에도 주거나 리테일 등 다양한 인프라가 복합적으로 같이 개발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단지를 설계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판교밸리는 전체 용지를 기능별로 배분해 조합했다. 이를테면 초청연구용지를 지정해 국내외 유수의 R&D 기관 유치 전략을 기본 계획에 포함했고 한국 최초로 일반연구용지와 연구지원용지를 구분해 90% 이상이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 중견기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기업 규모별로 필지를 나눈 것도 성공적이었다. 도로변에는 대규모 블록형을 공급함으로써 단지 전체의 웅장함과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판교의 랜드마크가 된 엔씨소프트·NHN·넥슨 사옥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배후에 상업업무지구와 주거 단지를 둬 산업 도시가 효율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조성한 것도 판교밸리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경기개발연구원은 “넓은 광장과 이용자 중심의 상가 배치 등은 민간 주도 개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요자 중심의 설계로 판교의 명품 단지화에 크게 기여했다”며 “판교밸리를 신도시 주거 단지, 상업서비스지구와 인접 배치해 주거·생산·소비·휴식 등의 도시 기능이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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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뛰어난 입지 요인이다. 특히 서울 강남과의 접근성은 IT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신분당선을 이용하면 판교에서 강남까지 약 13분이 소요된다. 판교역 도착 승객과 출발의 대부분이 강남과 연계된 승객이다. 판교테크노밸리 내 임직원 노동자들의 실거주지도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2021년 기준으로 서울 강남 거주자가 16.90%, 강북 거주자가 11.52%로 전체의 약 29%를 차지한다.

판교밸리의 성공을 바탕으로 현재 판교는 제2, 제3의 테크노밸리 공사가 한창이다. 판교 제2밸리는 43만㎡ 부지로 2023년쯤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판교밸리와의 연계를 통해 2000여 개의 기업과 10만 명 이상의 인재들이 집적되는 공간으로 세계경제의 판도를 바꾸는 한국 경제 혁신의 새로운 성장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일대에는 제3 판교밸리가 58만㎡로 조성된다. 2024년 준공이 목표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기존의 제1판교, 조성 중인 제2 판교밸리를 포함해 167만㎡ 규모의 첨단산업지구가 완성된다. 정부의 목표는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실리콘밸리로 자리 잡는 것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