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히트로 K드라마 관심 급증…글로벌 OTT, 韓 제작사에 잇달아 ‘러브콜’

[스페셜 리포트]
10월 1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월트디즈니코리아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오상호 디즈니코리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0월 1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월트디즈니코리아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오상호 디즈니코리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오징어 게임’이 일으킨 한국 드라마 열풍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오징어 게임’은 한국은 물론 브라질·프랑스·인도·터키 등 총 94개국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넷플릭스 계정 수만 1억4200만 개를 돌파했다.

원래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를 통해 노리는 것은 아시아 지역의 가입자를 늘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콘텐츠가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한국 드라마 자체의 가치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 공개된 한국 작품들도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마이네임’도 공개 직후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연달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지옥’ 등도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새롭게 론칭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들도 시장 안착을 위해 한국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11월 디즈니플러스·애플TV 등 한국 시장 진출을 앞둔 글로벌 OTT들은 한국 드라마 제작사들과 손잡고 다양한 콘텐츠 라인업을 구성 중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넷플릭스)

더 치열해질 글로벌 OTT의 경쟁
한국 상륙을 앞두고 있는 글로벌 OTT ‘디즈니플러스’는 10월 14일 사업 전략과 주요 콘텐츠를 소개하는 쇼케이스를 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히트로 한국 드라마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이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를 위협할 OTT로 꼽히는 디즈니플러스가 어떤 K콘텐츠를 확보했는지, 어떤 제작사와 손잡았는지가 큰 관심사였다.

디즈니플러스는 2023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50개 이상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쇼케이스에서 디즈니플러스는 약 20편의 콘텐츠를 공개했는데 그중 7개가 한국 콘텐츠(드라마 5편, 예능 1편, 다큐멘터리 1편)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오징어 게임’의 메가 히트로 전 세계에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글로벌 OTT들에 한국 드라마는 상당히 ‘가성비’가 높은 콘텐츠다. 할리우드 대작과 비교할 때 제작 비용은 적지만 콘텐츠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 질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이미 아시아권에서는 한류를 토대로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글로벌 OTT가 한국 시장에 투자를 늘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에 들어온 이후 약 5년간 7700억원을 투자해 왔다. 넷플릭스는 올해 5500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65% 늘어난 것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디즈니플러스 코리아는 구체적인 투자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아낌없는 콘텐츠 투자가 창의성·독창성·가성비 등을 겸비한 한국 시장에서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에 높은 가치를 매기며 한국 드라마 제작사들 또한 반사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는 ‘마이네임(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제작사인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지리산(tvn 방영)’ 제작사인 에이스토리가 주목 받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국 드라마 열풍을 타고 수혜를 보는 종목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인해 한화투자증권 애널리트는 “눈에 띄는 수혜주로는 디즈니플러스와 이미 두 편의 드라마 제작을 계약해 한참 촬영 중인 NEW, 지난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스트에도 이름을 많이 올렸던 제이콘텐트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디즈니플러스를 포함한 글로벌 OTT들이 한국 시장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은 콘텐츠 제작사들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지인해 애널리스트는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론칭은 단순히 판매처 하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오징어 게임’이 증명한 우수한 가성비와 높은 흥행력으로 향후 콘텐츠의 스케일이 점차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넷플릭스)

개미들 관심 모은 드라마 제작사들
전성기 맞은 한국 드라마, 덩달아 주목받는 제작사
한국 드라마의 질적 퀄리티가 높아진 요인으로는 드라마 제작사의 체계화된 시스템의 영향도 있다. 드라마 제작사들은 소속된 프로듀서와 작가들을 통해 양질의 대본을 만들어 내고 제작비 선지급을 통해 상생 구조를 확립했다. 이에 따라 방송사의 편성에 의해 좌우되던 드라마 제작 환경이 2010년대 들어 급격히 변했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된 것이다.

대표적인 드라마 제작사로는 CJ EN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2016년 6월 CJ ENM이 드라마 사업본부를 물적 분할한 것에서 출범했다. 지난 2분기 스튜디오드래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4% 감소한 1060억원을 기록했다. 방영 편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지식재산권(IP)의 영향력과 해외 판매 성과는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은 1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2% 감소했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3분기는 방영 편수 차질을 해소하고 동시에 프리미엄 IP를 기반으로 해외 매출과 IP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3분기 스튜디오드래곤의 히트작은 tvn ‘갯마을 차차차’였다. 지난 10월 1일 기준 글로벌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갯마을 차차차’는 월드와이트 콘텐츠 9위에 올랐다. 또 일본·호주·이집트·홍콩 등 20여 개 국가에서 톱10에 링크됐다.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스튜디오드래곤은 ‘우리들의 블루스’, ‘환혼’, ‘아일랜드’ 등 각종 대작들을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과 만난다.

스튜디오드래곤과 함께 대형 드라마 제작사로 꼽히는 곳이 제이콘텐트리다. 제이콘텐트리는 10월 14일 디즈니플러스의 쇼케이스 이후 주가가 오르며 ‘수혜주’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쇼케이스를 통해 제이콘텐트리의 자회사인 JTBC스튜디오 드라마 ‘설강화’가 디즈니플러스에 판매된 것이 확인됐다. 올해 상반기 넷플릭스에서 흥행한 ‘D.P도’ 제이콘텐트리의 자회사인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여기에 11월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인 유아인·박정민 주연의 ‘지옥’도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지옥’은 제이콘텐트리의 손자회사인 클라이맥스스튜디오가 제작한 작품이다.

특히 ‘오징어 게임’ 열풍에 힘입어 최근에는 대기업과 방송국 계열의 대형 제작사들뿐만 아니라 중소 제작사들도 시장의 관심을 얻고 있다.

제이콘텐트리와 함께 디즈니플러스의 쇼케이스 이후 주가가 오른 곳은 ‘NEW’다. NEW의 자회사 스튜디오앤뉴가 제작 중인 ‘무빙’, ‘너와나의 경찰수업’이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방영된다. 특히 NEW가 디즈니플러스 론칭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것은 장기 계약 때문이다. 스튜디오앤뉴는 디즈니플러스와 5년간 매년 1편 이상의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장기 파트너십에 따라 리스크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에이스토리는 한국 최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킹덤’을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과 만났다. 올해 에이스토리의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것은 tvn의 ‘지리산’이다. 김은희 작가와 이응복 PD 등 쟁쟁한 연출진과 함께 전지현·주지훈이 출연한다. 10월 23일 첫 방송된 ‘지리산’은 9.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역대 tvn 토일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에이스토리가 제작한 ‘빅마우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2022년 방영될 예정이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 주목받은 콘텐츠주로는 스튜디오산타클로스가 있다. 10월 1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소희 주연의 ‘마이네임’이 세계 각국에서 흥행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10월 17일(현지 시간) 글로벌 OTT 플랫폼 콘텐츠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마이네임은 4일 만에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4위에 올랐다. 같은 날 한국에서는 1위를 차지했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2위, 미국에서는 6위에 안착했다.

초록뱀미디어는 올해 다수의 히트작을 방영했다. ‘펜트하우스’, ‘결혼작사 이혼작곡’, ‘오케이 광자매’ 등 높은 시청률을 거둔 드라마들이 모두 초록뱀미디어가 제작한 작품들이다. 초록뱀미디어는 지난 9월 24일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등을 집팔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초록뱀미디어는 JTBC스튜디오와 80억원 규모의 드라마 제작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tvn 드라마 '지리산'.(/한국경제신문)
tvn 드라마 '지리산'.(/한국경제신문)

‘양날의 검’이 될 OTT 영향력
“다양한 콘텐츠 공급처의 등장은 드라마 제작사들엔 단연 ‘수혜’라고 할 수 있다. 공급의 판로가 확대됨으로써 투자비를 확보할 수 있는 도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경비즈니스는 2020년 4월 ‘스튜디오드래곤, 언택트 확산으로 날개 달고 글로벌 드라마 왕국 노린다’는 기사를 통해 OTT의 상륙이 드라마 제작사들에 미칠 영향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러한 분석은 ‘오징어 게임’의 히트로 증명됐다. 10년 묵은 대본이 넷플릭스의 투자로 드라마로 만들어져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OTT의 안목이 히트작을 만들어 낸 사례다.

이처럼 OTT가 한국 드라마 시장에 집행하는 투자는 분명 이점이 많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는 “글로벌 OTT의 투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수준 높은 제작 품질을 갖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다”며 “글로벌 OTT는 투자뿐만 아니라 해외로의 유통으로 인지도 제고와 팬덤 확산에 기여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한국 드라마 제작사의 수요 확대나 역량 강화 측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OTT의 힘이 커지는 것이 제작사들에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OTT, 정확히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 방식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이 넷플릭스가 작성한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의 수익은 9억 달러(약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에 투자한 제작비는 2140만 달러(약 253억원)이다.

하지만 정작 제작사 등에 별도로 지급되는 인센티브는 없다. 이유는 넷플릭스의 제작 방식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때 흥행 결과에 상관없이 전액 제작비를 보전한다. 그 대신 작품에 대한 권리인 IP를 가져가고 공개된 후 발생하는 수익 역시 오로지 OTT의 몫이다. 통상적으로 넷플릭스는 제작사에 10~30%의 마진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TT가 모든 IP를 가져간다면 드라마 제작사의 추가 수익화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드라마 제작사의 비즈니스는 투자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IP를 활용한 기회를 잃는다면 드라마 제작사의 중·장기 성장 동력 확보에 제약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성민 조교수는 “‘오징어 게임’ 굿즈 판매 등 우수 IP를 활용한 팬덤 비즈니스 기회를 타 사업자에게 넘겨준다면 드라마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와 초록색 트레이닝복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것처럼 더 이상 IP에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이에 따라 드라마 제작사들도 글로벌 IP 비즈니스의 기반을 갖추는 과정에서 해외 사업자와 협력해 일부 IP를 내주며 팬덤을 형성하는 과정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성민 조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드라마 제작사들이 글로벌 IP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OTT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드라마 제작사가 가져가는 마진이 앞으로는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지인해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OTT의 외주 제작에 대한 보장 마진율은 지금까지 넷플릭스만 있었던 15~20%에서 디즈니플러스의 입점으로 플랫폼 간 경쟁 심화로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형민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OTT의 한국 콘텐츠 확보 경쟁은 향후 콘텐츠 제작비 규모의 상승과 제작사의 판매 마진을 높여 드라마 제작사엔 우호적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