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폭증하는데 해외 인력 빼가기 ‘비상’
LG엔솔·SK온, 대학과 손잡고 직접 육성

[비즈니스 포커스]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 R&D 연구원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 R&D 연구원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배터리업계가 향후 전기차 배터리 수요 폭증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외 생산 능력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공장 증설 경쟁이 본격화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 이어 삼성SDI까지 한국 배터리 3사가 모두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늘어나는 생산 능력만큼 배터리 핵심 인재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전기차 시장 개화에 따라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위한 전문 인재 영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전지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배터리업계 석·박사급 연구·설계 인력은 1013명, 학사급 공정 인력은 1810명이 부족한 상태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는 K배터리가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하면서 배터리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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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두뇌’ 찾아 미국까지…CEO도 발 벗고 나서

한국 배터리 업체 간 인재 쟁탈전과 함께 중국·미국·유럽 등 해외 경쟁 업체들의 한국 인력 빼 가기도 문제다. 해외 경쟁 업체들은 고액 연봉과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며 한국의 배터리 전문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스웨덴의 노스볼트는 2020년 자사 홈페이지에 LG에너지솔루션 등 출신의 한국인 직원이 일하고 있다고 홍보해 배터리 인력·기술 유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삼성SDI는 노스볼트로 이직한 퇴사 직원 3명에 대해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 최근 승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1600억 달러(약 187조6000억원)로 커져 메모리 반도체 시장(1490억 달러)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에는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인력 양성 속도가 시장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배터리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글로벌 핵심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올해 9월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미국 주주와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기업 설명회를 진행한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조지아공과대·코넬대 등 현지 10여 개 대학과 연구소의 한국인 석·박사를 대상으로 채용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유지영 최고기술책임자(CTO) 부사장, 김성민 최고인사책임자(CHO) 부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함께했다. LG화학은 2025년까지 6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을 주요 성장 동력으로 키운다는 청사진을 7월 밝힌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한 배터리 기업인 SK온 출범으로 독자 경영을 시작한 지동섭 사장도 취임 후 첫 행보로 글로벌 핵심 인재 영입에 나섰다.

지 사장은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과 주요 경영진과 함께 배터리, 친환경 소재 기반 신사업의 핵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10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미국 내 12개 대학과 연구소에서 초청한 석·박사들과 배터리·친환경 소재 분야 글로벌 기업 재직자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포럼을 열었다.

김 총괄사장은 “2023년까지 배터리 연구·개발(R&D) 인력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지 사장은 “전문 인재 확보에 기반해 배터리 사업의 딥체인지를 통해 글로벌 톱티어 배터리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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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인재 직접 키운다…학비 등 지원, 취업 보장

배터리업계는 한국 대학들과 손잡고 배터리 인재 양성에도 직접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려대·연세대와 손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9월 고려대에 이어 10월 연세대에 배터리 계약학과를 설립했다.

이와 관련해 LG에너지솔루션은 연세대와 ‘2차전지 융합공학 협동과정’을 신설했다. 2차전지 융합공학 협동과정은 학위 취득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되는 계약학과로, 석·박사 과정과 석·박사 통합 과정을 선발하며 2022학년도 전기 일반대학원 신입생이 모집 대상이다.

학생들은 학비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받게 되며 학위 과정 중 LG에너지솔루션의 현장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제 산업 현장 중심의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학위 취득 후에는 LG에너지솔루션 취업이 보장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앞서 9월 고려대에 배터리-스마트팩토리학과를 설립하고 2022학년도 전기 일반 대학원 신입생 모집을 시작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계약학과를 설립한 것은 배터리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우수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해 글로벌 배터리 선도 기업으로서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이번 배터리 계약학과 신설을 통해 전략적 연구 과제로 삼고 있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는 물론 전 세계 배터리 생산 기지의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 연구 인력을 육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K온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e-SKB(education program for SK Battery)’ 석사 과정 모집 공고를 내고 배터리 인재 모집을 시작했다. 이번 모집은 2022년 3월 UNIST 대학원 에너지화학공학과(배터리과학 및 기술) 진학이 가능한 인재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해당 전형 입학생은 석사 2년간 등록금과 학연 장려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석사 과정 졸업 후 SK온 취업에 특전을 준다. 향후 채용이 이뤄질 분야는 배터리 선행 연구, 배터리 셀 개발, 배터리 공정 개발, 배터리 시스템 개발 등이다.

배터리 산업이 대표적인 미래 산업으로 꼽히는 만큼 시장의 글로벌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중요하다.

중국과 유럽 등 각국 정부는 자사 배터리 업체를 키우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은 중국 정부의 다양한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규모와 역량을 키워 왔다.

정부는 배터리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기 위해 올해 7월 ‘K배터리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배터리를 반도체·백신과 함께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해 시설 투자와 R&D에 파격적인 세액 공제를 지원하기로 했다.

R&D 투자의 최대 50%, 시설 투자의 최대 20%까지 세액 공제가 강화된다. 배터리 세계 시장 1위를 목표로 매년 1100명 이상의 전문 인력 양성도 추진한다.

배터리 3사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2030년까지 설비(20조5000억원), R&D(20조1000억원)에 총 40조6000억원을 선제 투자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인력 조기 양성을 위해 오창2공장에 전 세계 배터리 업체 최초로 배터리 전문 교육 기관인 ‘LG IBT(Institute of Battery Tech)’를 설립하기로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