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값이라도 친환경 제품 구매 86.2% …기업 인센티브 또는 페널티 강화로 생존 도모해야

[스페셜 리포트]
개천절 연휴 마지막 날인 4일 강원 강릉시 한 해변의 공터가 관광객과 차박하는 이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2021.10.4 사진=연합뉴스
개천절 연휴 마지막 날인 4일 강원 강릉시 한 해변의 공터가 관광객과 차박하는 이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2021.10.4 사진=연합뉴스
‘친환경’이 미래 소비 성향의 큰 축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딜로이트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종식되더라도 ESG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기본 요소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며 “미래 세대로의 교체가 진행될수록 ESG 요소를 적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브랜드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위기에도 강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같은 값이라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다.” 86.2%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다.” 49.6%


실제 한경비즈니스가 지난 10월 18일 전국에 거주하는 19~34세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소비 성향’을 조사한 결과 MZ세대는 친환경 소비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ESG 문제 기업 불매 운동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과반(69.6%)이 참여하겠다고 답변했을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의 이 같은 답변은 기업의 미래 전략에도 참고할 만한 데이터다.

소비자들은 이미 친환경 제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떤 준비가 돼 있을까.

“이건 어디에 버려요?”

지난 10월 25일 오전 10시. 대형마트 식품 매장에 들렀다. 제품 포장을 최소화한 상품을 고르려니 눈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여기도 플라스틱, 아…여기에 플라스틱, 비닐….’ 선택지가 따로 없으니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다. 종이 박스에 담긴 달걀, 비닐 포장된 깻잎, 랩으로 감싸인 무, 스티로폼 위에 놓인 생선, 플라스틱에 담긴 배, 종이팩에 담긴 우유. 라벨이 없는 플라스틱 병에 담긴 음료수. 얼마 안 샀는데도 포장 부피에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장을 보고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를 향했다. 급하게 온 터라 텀블러를 따로 챙기지 못했다.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테이크아웃 잔을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컵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물었다. ‘(정책상)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플라스틱 컵에 종이 빨대를 꽂았다.

저녁 6시, 출출해져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순두부찌개 2개를 주문하고 ‘일회용 수저, 포크 안 주셔도 돼요’를 체크했다. 왠지 환경 보호에 동참한 것 같아 기분이 좋은 순간이다. 50분 뒤, 순두부찌개와 플라스틱 6개가 도착했다. 플라스틱 통 2개, 뚜껑 2개, 반찬 담은 플라스틱 2개 그리고 비닐 이만큼.

다음 날, 우리 동네 쓰레기 버리는 날. 창고에 지난 1주일간 쌓인 재활용 쓰레기들을 마주한다. “지난주에 버린 것 맞나?” 4인 가족이 버린 재활용 쓰레기가 산처럼 높다. 두 손 가득 쓰레기를 안고 용도에 맞게 분류한다. 병은 병, 캔은 캔, 라벨은 비닐에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에, 뚜껑은 어쩌지? 잘나가다가 헷갈리는 순간이 두어 번은 꼭 찾아온다. “이건 어디에 버려요?”
지구를 살리는 소비 혁명 ‘제로 웨이스트’
기자만의 질문일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안혜민 씨는 스마트폰에 ‘내손안의분리배출’ 앱을 깔았다.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분리 배출 방법을 바로 찾아보기 위해서다. 안 씨는 “앱에 폐기물 이름을 넣으면 분류처를 확인해 준다”며 “물건이 점점 다양해지고 하나의 물건에 재질도 다른 제품이 많다 보니 전부 외울 수 없어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안 씨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다. 3년 전, 다큐멘터리를 본 뒤 환경 문제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제로 웨이스트는 모든 제품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장려하며 폐기물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원칙을 말한다. 즉,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 낭비가 ‘0’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안 씨는 중고장터를 이용하거나 새 물건을 구매할 때도 되도록 환경 마크를 받은 녹색 제품을 구매한다. 리필 제품도 즐겨 쓴다. 최근에는 용기를 가져가면 내용물을 덜어주는 상점들이 속속 생겨나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장을 볼 때는 장바구니를 꼭 챙겨 가고 택배에 붙은 라벨 스티커는 먼지 청소용 도구로라도 다시 쓴다. 한 번이라도 더 재사용하겠다는 의지다.

안 씨의 일과에는 쓰레기와의 사투도 들어 있다. 며칠 전에는 플라스틱 병에 부착된 라벨을 제거하느라 20분을 썼다. “접착력이 너무 강해 손톱으로는 떼어지지 않아요. 알코올이나 오일을 발라 떼어 내거나 열을 가해 떼어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어요. 그래도 완벽하게 제거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를 가장 곤란하게 하는 것은 제품의 과대 포장이다. 최근 마켓컬리에서 콩나물 1개, 두부 한 모, 과자 2개를 같이 시켰다가 낭패를 본 이후 장은 꼭 근처 마트를 가기로 했다. 물건은 세 종류인데, 커다란 박스 3개에 제품이 나눠 도착했기 때문이다. 안 씨는 “친환경 소비를 하고 싶어도 과대 포장이나 재활용 분류가 불분명한 제품들이 너무 많다”며 “소비자 인식 강화를 외칠 게 아니라 기업에 책임을 묻거나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플라이 체인에 순환 경제 강제화

환경 전문가 역시 보다 강화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컨설팅사인 BNZ파트너스의 임대웅 대표는 순환 경제를 위해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순환 경제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이것을 안 해도 별다른 페널티가 없고 있다고 해도 너무 약하다”며 “페널티를 강화하거나 선택지 자체에서 ‘매립’을 없애는 방안까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2030년까지 전체 공급망과 제품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애플에 납품하려면 탄소 중립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협력사에도 탄소 중립 동참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만 TSMC, 일본 소니는 물론 SK하이닉스 등 전 세계 24국 109개 업체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애플은 이에 더해 폐기물 매립 제로(zero waste to landfill) 인증도 협력사에 요구하고 있다. 임 대표는 “애플은 협력사에 RE100이나 폐기물 매립 제로 인증을 가져오게 함으로써 서플라이 체인에 순환 경제를 강제화했다”며 “처음부터 순환 경제를 설계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이 하나의 소재로 제품 패키지 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유니 소재’다. 유니 소재(uni-material)는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유해 물질 사용을 줄이고 자원 순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재질을 단일화하거나 단순화하는 것을 말한다. 재질의 수를 줄이거나 제품의 구조 개선을 통해 자원 순환을 촉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이팩 음료에 플라스틱 뚜껑을 다는 혼합기 구조보다 종이팩으로 통일한다면 재료의 사용이 줄고 용기 재활용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임 대표는 “유니 소재가 아니면 재활용이 어려워진다”며 “하나의 소재로 패키지를 개발하는 것을 생각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기업은 이익을 남겨야 하는데 친환경 패키지나 제품 개발에는 어쩔 수 없이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 임 대표는 “수십여 년 전부터 환경 문제가 대두됐음에도 지켜지지 않았던 것은 경제적 인센티브나 페널티가 없었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변화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풀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즉각적으로 소비자 피부에 닿은 기후 변화, 여기에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이란 시대적 과제가 만나면서 순환 경제 시스템 동작 엔진이 달린 것 같다”며 “순환 경제가 탄소 중립과 만나며 시너지가 나는 상황이 왔다”고 덧붙였다.

이승희 경기대 교수는 “폐기물 처리에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수익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친환경에 대한 기업 철학을 갖고 굳건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한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 아모레스토어 광교점 리필스테이션에서 직원이 리필 화장품을 용기에 채우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경기도 수원시 아모레스토어 광교점 리필스테이션에서 직원이 리필 화장품을 용기에 채우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기업의 생존을 위한 기술 개발도 한창이다. ‘미래 시나리오 2022’의 저자인 이재호 카카오모빌리티디지털경제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그간 경제성이 떨어져 상용화되지 못했던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기술이 시장에 출현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강조했다.

실 사례가 바로 글로벌 장난감 브랜드인 레고다. 레고의 부품은 플라스틱으로 이뤄져 있어 친환경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레고는 생존을 위해 2030년까지 블록을 지속 가능한 물건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사탕수수를 이용한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블록과 포장재를 만들며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석유가 아닌 옥수수·사탕수수 등 재생 가능한 원재료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을 말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물과 이산화탄소로 돌아가기 때문에 화석 원료 기반의 플라스틱과 대비된다. 아직까지는 일반 플라스틱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강도와 내구성이 약해 지속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완구 업체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석유 화학 업체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바이오플라스틱은 석유 화학 기업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며 “전체 석유 화학 공정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플라스틱이고 이를 친환경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탄소 중립을 이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여러 화학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기술 개발을 선도해 왔다. 독일 바스프, 프랑스 토탈, 미국 듀폰 등 글로벌 석유 화학 기업들은 바이오 기업과 손잡고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을 선점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은 2020년 105억 달러에서 2025년 279억 달러로 성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22% 성장률이다.

한국 내에서도 투자가 한창이다. SKC·LG화학·CJ제일제당·삼양사 등이 앞다퉈 바이오플라스틱 기술 개발과 양산 체계 구축에 힘쓰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CJ제일제당은 한국의 바이오플라스틱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이안나 애널리스트는 “바이오플라스틱에서 의미 있는 소재는 PLA(Poly Lactic Acid)와 PHA(Polyhydroxyalkanoates)인데 CJ제일제당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2곳뿐인 PHA 소재를 개발했다”며 “향후 시장에서 빨대·페트병·포장재 개발 등에 쓰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그린 바이오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경쟁사 대비 음식료 업체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친환경 기술이 기업의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여겨질 만큼 외형 성장이 커진 것이다.

친환경 시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소비자는 준비가 됐다. 기업의 결단과 기술의 발달을 기다릴 때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