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후보 확정, 4개월 레이스 시작…경선 최악 네거티브전으로 “차악 후보 뽑아야 할 판”

[홍영식의 정치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제10차 합동토론회가 열린 지난 10월 31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원희룡(왼쪽부터), 윤석열, 유승민, 홍준표 후보가 토론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제10차 합동토론회가 열린 지난 10월 31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원희룡(왼쪽부터), 윤석열, 유승민, 홍준표 후보가 토론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야가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확정함에 따라 본격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치열한 내부 경선을 치렀다. 그 후유증은 여전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전 대표 간 전방위 싸움으로 경선 뒤 불복 논란까지 일었다. 이 전 대표가 결국 승복을 선언했지만 이 전 대표 측의 지지자 중에선 대장동 수사 향방에 따라 후보 교체론이 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 국민의힘도 치열한 경선전 후유증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전 총장 고발사주 의혹과 처가 의혹을 둘러싸고 벌어진 후보들 간 감정의 생채기는 쉽사리 아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모두 네거티브전에 치중하면서 유력 후보 대부분이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높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뽑을 후보가 잘 안 보이는 역대 최악의 선거를 치를 판”, “차선은커녕 차악의 후보를 뽑아야 할 판”이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오고 있다. 경선에서 정책과 비전 경쟁이 사라지다시피 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 좋은 후보인지 판단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본선에서도 여야 후보들이 유권자의 바람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면 중도층의 대거 이탈을 부르는 것은 물론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불러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여당 내에서도 “정권 교체”…문 대통령과 거리 두기?

이번 대선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정권 교체냐’, ‘정권 재창출이냐’다. 보통 야당은 정권 교체, 여당은 정권 재창출을 외친다. 주목되는 것은 민주당 내부에서 정권 재창출이라는 말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후보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집권 시 새 정부의 이름은 ‘이재명 정부’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다음 발언이 주목된다.

“기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를 승계해야 한다고 본다. 거대한 정치 세력인 민주당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은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줄기마다 특색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전 정부와 완전히 똑같으면 영구 집권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측면에서는 정권 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 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정권 교체론을 언급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여든, 야든 정권은 교체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새로운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선거는 과거에 대한 평가와 심판의 성격도 있지만 보다 큰 것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재창출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기본 노선과 장점은 계승해 나아가되 부족한 부분은 보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 여론이 높게 나오자 문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권 말 여당이 선제적으로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선 것은 역대 정권의 공통점이었다. 집권 초·중반까지는 대통령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정국의 주도권을 청와대가 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권 말 대통령의 힘이 빠지면 당이 주도권을 갖는 게 보통이었다. 미래 권력은 선거 승리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지 현 권력과 과감하게 손절하는 길을 택했다. 이 후보와 송 대표의 ‘정권 교체’ 발언이 이런 차원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문재인 정부와 일정 정도 차별화하려는 전략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번 대선전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야권 단일화 여부다. 그 대상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안 대표는 11월 1일 대선 출마 자리에서 국민의힘 주자들과의 단일화·연대 가능성을 묻자 “저는 당선을 위해서 나왔다. 또 정권 교체를 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다”며 직접 답변을 삼갔다. 하지만 여지를 남겼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민의힘도 안 대표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대선전이 본격화하면 접촉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단일화 방식, 즉 권력 분점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안철수 총리론이 나온다.

‘새로운 물결(가칭)’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고 신당 창당에 시동을 건 김 전 부총리는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더불어는 없고 국민의힘에 국민은 없다”며 거대 양당을 싸잡아 비판한 뒤 “기존 정당과 정말 다르게, 거꾸로 해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마 선언을 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하며 “기존 정치권에 숟가락을 얹지 않고 완주하겠다”고 했다. 또 “중앙집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주민 참여 없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거대 양당 정치로는 묵은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독자적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캠프 관계자는 “김 전 부총리는 양당 진영이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고 미래 발전을 위한 얘기가 일절 없으며 진짜 진보·보수의 가치가 사라진 상태라고 보고 있다. 양쪽 모두 제대로 된 가치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할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안 대표와 김 전 부총리의 단일화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는 “김동연 후보는 이번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셨다”며 “문 정권의 공과에 대해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부총리는 “기존 양당을 포함해 안 대표 본인도 시대 교체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개발 이익 완전 환수·국토보유세 등 급진 대책 내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야 대선 주자 간 정책은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부동산 정책이 특히 그렇다. 이 후보는 역대 그 어느 대선 후보보다 이념적으로 왼쪽으로 가 있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후보는 11월 2일 선거대책위 출범식 연설에서 “높은 집값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자신의 부동산 대책의 얼개를 밝혔다. 개발 이익의 완전 국가환수제, 건설원가·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을 제시했다. 앞서 부동산 투기 문제를 조사할 부동산감독원 신설 방침도 내놓은 바 있다. 모두 국가 통제식 정책이다.

보유세 대폭 인상과 국토보유세 부과, 주택관리매입공사 설치 방안도 밝힌 바 있다. 주택관리매입공사는 집값이 내려가면 국가가 집을 사들여 공공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고 폭등하면 매입 주택을 시장에 내놓아 집값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공급은 주로 공공 주도 개발 방식을 내놓았다. 정부가 개입해 집값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와 관련해 “다주택 보유자에겐 심하게 손실이 날 수 있게 세 부담을 강화할 것”이라며 “투기 부동산에는 세금 폭탄을 넘어 징벌적 과세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급보다 규제 강화를 통한 수요 억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폭등을 부르는 등 실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완화도 내세우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규제도 풀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공급 확대는 투 트랙 전략이다. 도심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 차원의 공급 활성화를 꾀하는 것과 동시에 서민과 청년층을 겨냥한 공공 주도 주택도 대량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