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위축 우려·기득권층 반발도 만만치 않아…부동산 업체 유동성 위기도 지속

[글로벌 현장]
10월 21일 중국 헝다 그룹이 베이징에 세운 아파트 단지 앞으로 한 여성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헝다 그룹은 3조원 규모의 자회사 매각이 무산돼 공식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선언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사진=연합뉴스)
10월 21일 중국 헝다 그룹이 베이징에 세운 아파트 단지 앞으로 한 여성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헝다 그룹은 3조원 규모의 자회사 매각이 무산돼 공식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선언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입법 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상무위원회는 최근 ‘일부 지역의 부동산세 개혁 업무에 관한 결정’을 의결했다. 부동산 보유자에게 물리는 세금인 부동산세 도입을 공식화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세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이어져 왔다. 가파른 경제 성장 속에 빈부 격차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시점이다. 중국 공산당이 ‘공동 부유’를 경제 개발 계획에 처음 제시한 시점도 2005년이다.

10년 넘도록 부동산세를 논의만 하는 사이에 대도시의 집값은 더 뛰었고 빈부 격차도 확대됐다. 일찌감치 집을 사 놓은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됐다.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대도시는 전체 가구 중 2주택 이상을 보유한 가구가 40%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중국의 부동산세 도입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지난 8월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열고 분배를 강화하는 ‘공동 부유’ 국정 기조를 전면화하면서부터 예고됐다.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시 회의에서 “법에 따라 합법적 수입을 보호함과 동시에 양극화를 방지하고 분배 불공정을 근절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증세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기도 했다.

세수 증대가 목적인 중국 부동산세

부동산세 도입은 보유세가 사실상 없었던 중국에서 상당한 변화다. 부동산이 사유 재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이념과 배치되기도 한다.

중국의 부동산세는 한국의 종합부동산세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두 세제는 입법 목적부터 다르다. 종부세법 1조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반면 부동산세는 ‘세수 증대’와 ‘소득 분배’를 내걸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집값 하락이 목표가 아니라고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집값은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관련 대출 제한과 함께 대도시 택지 분양을 늘리는 공격적인 공급 확대 정책을 병행한 효과다.

중국이 부동산세 도입을 미뤄 온 배경에는 기득권층의 반발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정부 재정 공백에 대한 우려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지만 여전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갓 넘은 중진국이다. 국가가 국민 생활을 책임지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다 보니 돈 쓸 곳은 많은데 재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퇴직연금이나 건강보험 같은 사회 안전망 재원은 지방 정부가 책임지는 구조다. 그런 지방 정부의 재정을 뒷받침해 오던 게 보유 토지의 사용권 매각(장기 임대)과 양도세 같은 부동산 관련 세금이다.

중국 지방 정부의 연간 토지 사용권 매각 규모는 2015년 3조 위안에서 지난해 8조 위안(약 1460조원)으로 뛰었다. 작년 국가 예산 수입 부문(18조 위안)의 절반에 육박한다. 지방 정부는 부동산 개발 업체에 땅을 팔아 재정을 확충하고 업체들은 그 땅에 아파트를 지어 떼돈을 버는 공생 관계가 이어져 온 것이다.

중국 중앙 정부는 이런 식의 부동산 산업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헝다그룹 사례에서 보듯 부채 문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견제를 이겨 내기 위해 부동산이 아니라 첨단 산업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부동산 산업이 죽으면 지방 정부의 재정에도 구멍이 뚫린다. 지방 정부의 토지 사용권 매각액은 이미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런 매각액 감소분을 채우기 위해 부동산세를 지방세로 배정할 계획이다.

또한 중국 당국은 부동산세가 공동 부유가 추구하는 분배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산을 기준으로 한 중국의 지니계수는 2000년 0.599에서 지난해 0.704로 뛰었다. 소득 기준 지니계수도 0.467(2017년 기준)로 높은데 자산 격차는 더 크다는 얘기다.

자캉 중국재정학회 부회장은 “보유세의 목적은 다주택자와 일반 월급 생활자의 격차를 조금 좁히자는 것이지 다주택자에게 당장 집을 팔라는 식으로 무리한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종부세 세율도 임대료 수입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할 방침이다.

중국은 또 1주택자에게 부동산세를 면제하고 5년 동안 시범 운영하면서 향후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하는 등 다양한 보완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방침들을 보면 중국이 한국 종부세의 부작용을 상당히 깊이 있게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11년 대도시인 상하이와 충칭에서 부동산세를 시범 도입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흘러가면서 주택 가격이 폭등했고 빈부 격차가 사회 불안 요인으로 부상하자 내놓은 조치다. 집값 안정이 목표라는 점에서 중국이 최근 도입을 공식화한 부동산세와는 차이가 있다.

중국 정부는 조세 저항을 줄이기 위해 먼저 두 도시에서 시행하고 그 성과를 본 뒤 다른 대도시와 중소도시에서 차례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시범 실시에 머물러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다.

실패 이유로는 우선 과세 대상이 너무 적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인당 거주 면적을 60㎡ 이상으로 잡아 3인 가족 기준 180㎡ 미만 주택은 보유세를 면제했다. 중산층 3인 가족을 타깃으로 하는 아파트가 보통 150㎡ 안팎이라는 점에서 대부분의 주택이 과세 대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과세 표준도 최근 2년간 거래 가격을 근거로 해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세율은 상하이가 최고 0.6%, 충칭이 1.2%인데, 이 역시 시행 전 예상됐던 최고 4%보다 비교적 낮아 집값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주택 보유자에게 물리는 재산세인 부동산세 도입 절차에 공식 착수했다. 중국에서 부동산세 도입 논의는 10년 넘게 이어졌지만 부동산 시장 위축 우려와 기득권층의 반발 등에 따라 미뤄져 왔다.

신규 부동산 판매는 급감

하지만 중국의 경기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는 데다 경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관련 산업이 침체에 빠지고 있어 부동산세 도입이 실무 단계에서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부동산세 전국 도입 계획에 지방 정부와 공산당 원로들까지 반발하면서 시범 도입 대상이 당초 계획의 30개 도시에서 10여 개로 축소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의 신규 주택 판매는 9월에 이어 10월에도 급감했다. 부동산업계에서 ‘금은월(金銀月)’로 부르는 9월과 10월 매출이 떨어지면서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유동성 위기가 한층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 정보 업체 중국부동산정보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국 100대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신축 부동산 판매액이 전년 동월 대비 32.2%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 36.2% 감소에 이어 또 30%대 급감한 것이다. 성수기인 9월과 10월 부동산 판매 부진이 부동산 업체들의 자금 융통 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 부동산 업체들의 주요 유동성 확보 통로인 금융 시장의 접근성도 떨어지고 있다. 3분기 실적을 내놓은 128개 상장 부동산 업체 가운데 80곳이 올해 9월 누적 기준 대출 상환액이 신규 차입금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국의 대출 제한으로 유동성 조달 창구가 점점 좁아지는데 대출을 갚아야 하니 보유 현금이 줄어드는 것이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이런 기업이 61곳이었다.

헝다그룹 사태로 본격화된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위기는 국유 기업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상하이시 국유 부동산 업체인 녹지그룹은 9월까지 금융 활동으로 인한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 689억 위안으로 작년 같은 기간 17억 위안에서 크게 떨어졌다. 새로 빌리지 못하고 갚기만 했다는 의미다.

중국 당국의 대출 규제 속에 유동성 위기에 몰려 있는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11월에 갚아야 하는 달러 표시 채권의 원금과 이자가 2조40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부동산 업체들은 11월 첫 주(1~7일)에 1억400만 달러, 둘째 주 11억5000만 달러, 셋째 주 5억9400만 달러, 넷째 주 2억4300만 달러의 달러채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총 20억9100만 달러(약 2조4500억원)에 달한다.

중국 2위 부동산 업체인 헝다그룹과 중견 업체인 푸리·신리·화양녠 등 최소 4곳이 지난 9월 이후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상환하지 못해 잠정적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30일의 유예 기간 이내까지 갚지 못하면 공식 디폴트가 되고 채권단의 신청 등에 따라 파산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중국 상위 30개 부동산 업체 가운데 3분의 2가 당국의 대출 제한 기준인 ‘3대 레드라인’을 위반한 상태다. 3대 레드라인은 △선수금을 제외한 자산 부채 비율 70% 미만 △순부채 비율(부채에서 유동 자산을 뺀 후 자본으로 나눈 비율) 100% 미만 △단기 부채 대비 현금 비율 100% 미만 등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9월 이 기준을 내놓고 지난 6월부터 위반 정도에 따라 대출 총액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올 하반기 들어 부동산 업체들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된 이유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