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운임 하락 가능성 높은 상황에서 글로벌 선사들은 ‘종합 물류 기업’으로 변신 중

[비즈니스 포커스]
부산항 가득 채운 컨테이너.(사진=연합뉴스)
부산항 가득 채운 컨테이너.(사진=연합뉴스)
불황의 터널을 지나왔던 해운 시장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올해부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를 우려한 선사들이 선복 투입을 조절했고 이에 따라 해상 운임이 고공 행진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운임 시황을 알려주는 상하이종합운임지수의 지난해 평균은 1234였지만 올해 누적 평균치는 3636으로 월등히 높았다. 특히 3분기부터는 4000 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점을 기록했다.
해외 선사들에 비해 과도한 주가 하락
운임은 선사들의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3분기 높아진 운임 덕분에 예상대로 HMM의 3분기 실적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4조1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33.7% 늘었다. 영업이익은 2조27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9.5%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9248.8% 폭증한 2조2998억원이다. HMM 측은 “운임의 선전과 함께 물동량의 증가로 컨테이너 누적 적취량이 전년 대비 4%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HMM에는 여전히 불안 요소가 있다. 먼저 실적에 비해 오르지 않는 주가다. 시장에서는 이대로 HMM이 이른바 ‘피크 아웃(고점을 찍은 후 점차 하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5월만 해도 5만원대를 찍었던 HMM의 주가는 11월 들어 2만5000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6개월 만에 약 40%가 하락한 것이다. 특히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영구 전환사채(CB)에 대한 주식 전환 청구권 행사는 주가 하락에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주가는 하락한다. 주식 수가 증가해 기존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3분기 실적이 발표된 후에도 주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4500을 넘나들던 운임지수도 4분기부터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가올 4분기는 호실적보다 불확실성의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고 HMM 측은 내다보고 있다. 영업 상황이 계절적 비수기에 돌입했지만 미국 항만에서의 컨테이너 적체가 지속되면서 모든 노선의 운임이 보합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항만 적체로 인한 선복과 컨테이너 박스 공급의 불확실성, 중국 전력난에 따른 생산 차질과 물가 상승 우려로 해상 운송 시장의 수요가 오르락내리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HMM의 어깨는 무겁다. HMM 관계자는 “초대형 선박(24K 12척, 16K 8척) 20척 유럽 항로 투입에 따른 안정적인 화물 확보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경영 정상화를 위한 고객 중심의 차별화된 해운 서비스 제공, 정보기술(IT) 시스템 개선 등 경영 혁신을 통한 내부 역량 강화와 영업 체질 개선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HMM 자체의 경쟁력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현재 HMM이 처한 상황은 해외 선사들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과도한 우려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10월 중순 이후부터 해외 선사들의 주가는 20~30% 반등했고 해외에서도 피크아웃을 걱정했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도 “유럽의 머스크라인은 11월 3일 기준으로 신고가를 기록했고 하파그로이드도 고점 대비 약 5% 하락했기 때문에 HMM의 주가는 과도한 하락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HMM 체급 높이는 사이…글로벌 ‘해운 공룡’은 더 커졌다

상위 4개 선사 점유율은 ‘58%’
운임이 고공 행진하면서 올해 글로벌 선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인 한 해를 보냈다. 그 사이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상위권 선사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해운 전문 분석 기관 알파라이너는 지난 10월 “2021년 전 세계 컨테이너 운송 시장에서 선사들 간 통합 현상이 심화됐고 상위 10개 선사가 적재 능력의 85%를 점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머스크·MSC·CMA CGM·코스코 등 4개 그룹에서 운영하는 적재 능력이 절반 이상인 58%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라이너는 “선대 집중 현상은 주요 동서항로와 빅3로 알려져 있는 얼라이언스들로 인해 고착화되고 있고 상위 10개 정기 선사 그룹 중 9개가 빅3에 속해 있다”고 지적했다.

알파라이너가 집계한 ‘톱 100’ 선사를 살펴보면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선복량 1위는 덴마크 머스크라인으로, 총 425만8418TEU(길이 20피트의 컨테이너 박스 1개를 나타내는 단위)로 17.0%를 차지하고 있다. 2위인 MSC(420만4354TEU)와 3위인 CMA CGM(310만8473TEU)이 각각 16.8%, 12.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세 선사의 점유율을 더하면 46.2%로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HMM은 글로벌 선사 8위에 랭크돼 있고 총 선복량은 82만4904TEU로, 글로벌 선복량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급격히 쪼그라들었던 규모는 대형선 발주 등으로 어느 정도 회복됐다. 여기에 HMM이 2019년 ‘디 얼라이언스’ 해운 동맹에 합류했다는 점도 글로벌 선사들과 함께 나란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올해 ‘물류 대란’을 겪으며 물류업계는 국적 선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간 뒤처져 있었던 HMM이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해외 선사들의 동향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금 글로벌 선사들은 ‘종합 물류 기업’으로의 확장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컨테이너 시장에서 ‘해운 공룡’으로 불리는 머스크라인이 대표 주자다.

머스크라인은 물류 서비스와 관련한 기업들을 다수 인수·합병(M&A)했고 최근에는 항공 물류 분야까지 강화하고 있다. 해운 전문 매체 로이즈리스트에 따르면 머스크는 11월 항공 물류에 강점이 있는 포워더 세나토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며 포워딩 영역으로 확장했다. 또 항공 자회사인 스타에어를 통해 항공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머스크라인의 장기 계약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머스크의 내년 장기 계약 비율은 원양 서비스 물량 중 64.0%인 700만FEU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KMI는 “머스크의 2022년 장기 계약이 올해 운임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이미 다수의 계약이 체결됐고 현물 운임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통합 물류 서비스에 따라 장기 계약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운 운임은 시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추이를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올해 고점을 찍고 내년부터 하향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양수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은 11월 23일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해운 운임이 고점을 찍고 하락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운임의 변동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장기 계약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선사들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