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 성공적 데뷔…라면 시장 한계에 추가 성장 가능성은 '부담'
[마켓 인사이트] 삼양식품이 공개 모집 회사채 시장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도 탄탄한 재무 구조와 브랜드 경쟁력을 내세워 ‘투심’을 사로잡았다. 해외 매출 확대에 발맞춰 꾸준한 투자가 필요해 회사채 시장과 소통을 확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창립 후 첫 발행, 회사채 경쟁률 5 대 1
올해 말 회사채 시장의 최대 관심 기업은 단연 삼양식품이었다. ‘삼양라면’, ‘불닭볶음면’ 등을 주력으로 하는 삼양식품은 넉넉한 곳간과 흔들림 없는 재무 안정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동성이 풍부해 회사채 시장에서 특별히 자금을 조달할 유인이 별로 없었다. 한국 투자은행(IB)들이 항상 눈독을 들인 기업이지만 회사채 시장에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금 창출 능력을 넘어 대규모 투자가 많지 않았고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한 차입만으로도 운영에 큰 차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경제 상황과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자금 조달 채널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삼양식품 안팎에서 제기됐다. 또 해외 시장에서 제품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선제적으로 매출 확대에 대비해야 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시장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회사채 발행 환경은 비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한국투자증권을 대표 주간사회사로 선정하고 회사채 발행을 차분히 준비했다. 당초 예상한 발행 규모는 500억원으로 많지 않았다. 창립 후 첫 회사채 발행이라는 점과 실질적으로 필요한 투자 자금 등을 고려했다.
일반적으로 회사채를 처음 발행하는 기업에는 기관투자가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시장과 소통 기간이 길지 않고 투자 위험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삼양식품은 달랐다. 회사채 수요 예측 전부터 시장 안팎의 관심이 뜨거웠다. 삼양식품의 성장세와 향후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한 영향이었다. 올해 12월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회사채 수요 예측에선 당초 발행 예상 금액인 500억원의 5배에 달하는 2500억원의 주문이 몰렸다. 연말을 앞두고 보기 드문 대흥행 성공이었다.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이 뜨겁다 보니 회사채 발행 금리 역시 삼양식품의 신용도에 비해 낮은 수준에 결정됐다. 삼양식품으로선 자금 조달 비용을 크게 낮춘 셈이다. 삼양식품의 신용 등급은 ‘A’다. 대내외적인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재무 안정성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AA급(AA-~AA+)’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리 인상 기조에 연말을 앞두고 기관투자가들이 장부를 정리하면서 ‘A급(A-~A+)’ 회사채가 잘 팔리지 않았다”며 “삼양식품은 우수한 재무 구조와 외형 성장세 덕분에 투자 주문이 대거 몰렸다”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당초 500억원으로 예상했던 회사채 발행 금액을 750억원으로 증액했다. 조달한 자금은 밀양 신공장 건축과 토지 구매에 사용하기로 했다. 삼양식품이 현재 건설 중인 밀양 신공장은 내년 4월 완공돼 운영된다. 이를 통해 연간 약 6억 개 이상의 추가적인 라면 생산이 가능해진다. 정체된 라면 시장에 돌파구 있나
삼양식품은 면류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스낵·유제품·조미 소재 등도 제조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면류 제품의 매출 비율은 87.6%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삼양제분에서 밀가루를 제조하고 삼양식품이 라면·건과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삼양프루웰이 포장용 골판지 상자를 제조하고 삼양로지스틱스가 물류를 맡는 방식으로 수직 계열화도 구축돼 있다. 이 덕분에 원가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삼양식품은 한국 최초로 유탕면을 제조·판매했다. 삼양식품 이후 잇달아 경쟁사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점유율은 올 상반기 기준으로 10.7% 수준이다. 삼양식품은 이 같은 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한국 라면 시장에서 매년 2000억원대 중·후반의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도 2015년 이후 수요가 늘고 있다. 삼양식품이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중국·미국·태국 등지에서 꾸준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매출 성장을 이끌고 있는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불닭볶음면’의 선전 덕분에 2015년 연결 기준 307억원이던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2017년 2052억원으로 2년 만에 6.7배 증가했다. 지난해엔 3703억원을 기록하는 등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영업 수익성도 우수한 편이다. 2015년까지만 해도 삼양식품의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 마진은 2.5~5%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수익성이 높아지면서 2018~2020년 최근 3년 동안 평균 EBIT 마진은 13.8%를 기록했다. 2016년부터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 해외 매출의 영향이다.
송동환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해외 매출의 대부분이 면류에서 발생하는데 해외 라면 시장에서 핵심 브랜드가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마케팅과 운임 비용 등 관련 비용을 현지 업체에 일정 부분 전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일한 제품이더라도 해외 시장이 한국 시장에 비해 수익성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다. 수출 비율이 높아질수록 수익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전체적으로 외형이 커지고 수익성 개선이 계속되면서 삼양식품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창출 규모 역시 꾸준히 증가했다.
매출이 증가하면 운전 자금 부담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양식품은 라면 시장의 특성상 운전 자금 부담도 크지 않다. 이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영업 현금 흐름을 창출하고 있다. 올 9월 말 기준 삼양식품의 부채 비율은 71.2%다.
그렇다고 삼양식품의 사업·재무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단 농심이나 오뚜기 등 경쟁사에 비해 시장점유율이 낮은 상황에서 ‘불닭볶음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단일 사업이나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신용도 측면에서 감점 요인이다.
또 해외 사업을 중심으로 높은 외형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올 들어선 영업 실적이 저하되고 있다. 한국 라면 시장은 약 2조원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건강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진 데다 라면 이외에 간편식 보급이 확대된 영향이다. 해외 사업은 한국 사업에 비해 수익성은 높지만 환율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엄정원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 “원화 가치가 하락하거나 해상 운임료 상승이 이어지면 해외 사업의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태국·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서 외형 성장이 단기간에 이뤄져 판매 호조가 중기적으로 지속되는지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투자 계획을 봤을 때 재무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삼양식품은 생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밀양 신공장에 투자하고 있다. 신공장 투자 규모는 약 2300억원이다. 내년까지 투자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그 사이 잉여 현금 창출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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