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공급 없이 추진력 만드는 동력 기관 필수…원자력과 달리 국제적 규제에서도 자유로워
[테크 트렌드] 수중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잠수함은 주요 전략 자원으로 인정받는 강력한 무기다. 잠수함의 최대 강점인 은밀성은 수중에서 작동하는 동력 기관에 좌우된다. 수소 연료전지는 자동차의 차세대 친환경 동력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잠수함에서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외부 공기 유입 없이 작동하는 동력 기관
공기 불요 추진 체계(AIP : Air-Independent Propulsion System)는 외부에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추진력을 만들 수 있는 동력 기관을 뜻한다. AIP는 디젤 엔진 등 내연 기관을 주 동력원으로 삼는 재래식 잠수함의 보조 동력 기관을 지칭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AIP의 범주에 원자력 추진 기관을 포함하기도 한다. 소형 원자로를 이용해 축전지를 충전하는 동력 기관도 있기 때문이다.
AIP는 잠수함의 특성이자 최대 강점인 수중에서의 은밀한 활동, 즉 잠항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외부 공기를 유입할 수 없는 수중 환경에서 작동하지 않는 내연 기관의 한계를 극복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AIP의 개발은 잠수함 개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AIP의 성능은 가동 시간·출력·소음 등을 기준으로 판가름된다고 볼 수 있다. 잠수함이 오래도록 잠항할 수 있으려면 동력 기관이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추진력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잠수함이 원활하게 활동하려면 필요한 만큼의 출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또 잠수함이 쉽게 탐지되지 않도록 하려면 동력 기관에서 나는 소음이 작아야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AIP는 스털링 엔진과 수소 연료전지를 들 수 있다. 스털링 엔진은 밀폐된 공간에서 기체의 온도 차를 이용해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 동력 기관이다. 스털링 엔진이 높은 출력을 내려면 많은 양의 기체를 이용해야 하므로 엔진의 크기도 커지게 되는데, 잠수함은 내부 공간이 협소해 크기의 제약이 따른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잠수함에 탑재된 스털링 엔진의 출력은 유사한 규모의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PEMFC : Proton Exchange Membrane Fuel Cell) 대비 약 60%대에 그친다. 또한 배기가스 배출 문제로 수심 200m 이하의 심도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점도 확산을 저해하고 있다. 그래서 스털링 엔진 방식의 AIP를 사용하는 국가는 스웨덴과 일본 등에 한정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스웨덴은 코컴스가 건조한 1500톤 규모의 고틀란드(gotland)급 잠수함에 스털링 엔진을 사용해 왔고 2020년대 후반 취역 예정인 약 2000톤 규모의 차기 잠수함 블레킹(blekinge)급에도 채택할 예정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소류급 잠수함에 스털링 엔진을 도입했다. 상대적으로 수심이 얕은 북해에서 작전하므로 스털링 엔진의 심도 제한에 크게 지장 받지 않는 스웨덴 해군과 달리 심해가 깊은 동해와 태평양 등에서 활동하는 일본 해상자위대는 소류급 잠수함의 후기형에 스털링 엔진 대신 리튬 이온 배터리를 탑재했다.
연료전지 방식의 AIP는 스털링 엔진보다 늦은 1990년대 후반 등장했지만 훨씬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연료전지는 산소와 수소의 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를 발생시켜 동력을 만드는 추진 기관이다. 연료전지는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어 수중에서의 은밀한 잠항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털링 엔진보다 출력이 높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주 연료인 수소를 자력으로 보충하지 못하므로 주기적으로 기지로 복귀해야 하는 점과 디젤 엔진 등 내연 기관이나 원자력 추진 기관에 비해 훨씬 낮은 출력이 추가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연료전지의 가동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같은 용량의 저장 탱크로 액화 수소보다 2~3배 이상 많은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메탄·에탄올·암모니아 등의 화합물을 개질하는 방식의 연료전지 체계도 개발되고 있다. 연료전지 방식의 AIP는 지멘스가 개발한 연료전지를 탑재한 독일 해군의 212급(Type 212A) 잠수함을 필두로 세계 각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현재 연료전지를 탑재한 잠수함은 스페인의 S-80, 인도의 칼바리(kalvari)급, 이스라엘의 돌고래급(dolphin) 등이다.
한국 해군도 독일이 설계한 214급에서 시작해 2018년 한국 기술로 설계, 건조한 3000톤급 도산 안창호함에도 연료전지 방식의 AIP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도산 안창호함에는 독일 지멘스에 이어 세계 둘째로 잠수함용 연료전지를 개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 한국의 범한퓨얼셀 제품이 장착돼 있다.
프랑스가 개발한 폐쇄 회로 증기 터빈(MESMA) 방식도 한정적이지만 상용화돼 있다. MESMA는 에탄올과 산소를 연소해 만든 증기로 터빈을 구동해 전기를 생산하는 추진 기관인데 파키스탄과 칠레 등 소수의 국가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작전 중이거나 건조 중인 AIP 탑재 잠수함은 약 120척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한국을 비롯해 독일·스페인·인도·중국 등 다수의 국가들이 보유한 약 70척은 연료전지를 탑재했고 스웨덴·일본·중국에 소속된 약 50여 척은 스털링 엔진을 채택했다.
단기 연안 작전에 적합하고 글로벌 규제도 없어
AIP는 출력과 사용 시간의 제약 때문에 보조 동력으로만 사용되지만 원자력 추진 기관은 수상이든 수중이든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단일 동력원이다. AIP는 수십년 이상 연료 재보급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원자력 추진 기관에 비해 가동 시간이 훨씬 짧고 출력도 훨씬 낮다. 하지만 AIP는 원자력 추진 기관보다 훨씬 조용해 잠수함이 탐지될 가능성도 그만큼 더 낮다. 더군다나 AIP는 국제적 규제도 별로 받지 않는다.
이와 달리 원자력 추진 기관은 개발에서부터 핵연료의 생산·구매 등에 이르는 제반 과정에 국제 조약이나 협약 등 숱한 규제를 적용 받으므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건조와 운용이 모두 쉽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독일·스웨덴·이스라엘·호주·인도네시아 등 단기간의 연안 작전을 주로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AIP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반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장기간의 대양 작전을 중시하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소수 국가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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