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증권사 관문인 ‘AA급’ 눈앞, 특색 맞춘 경쟁력 상향 주효

[마켓 인사이트]
서울 여의도 한화투자증권 본사. 사진=한화 제공
서울 여의도 한화투자증권 본사. 사진=한화 제공
중형 증권사들의 신용도가 연이어 개선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던 초기만 해도 실적 악화로 신용도가 떨어질 것이란 시장 안팎의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적극적인 자본 확충과 투자은행(IB) 부문의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이 오히려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해외 투자에 몸을 사린 것 역시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왔다.

리테일보다 IB 강화에 집중

올해 12월에는 한국 증권사들의 신용도 상향 소식이 많았다. 주로 그룹 차원의 탄탄한 지원이 있고 비경상적 지원 의지가 높은 계열 증권사에 낭보가 이어졌다. 대형 증권사와 비교하면 영업 능력이나 규모가 작지만 빠르게 자본 여력을 확충해 수익 창출 능력을 키운 중형 증권사들이 주인공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한화투자증권의 기업 신용 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높였다. 현재 ‘A+’인 한화투자증권의 신용 등급이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번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은 한화투자증권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AA급(AA-~AA+)’ 증권사로 올라설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형 증권사들의 신용 등급은 대부분 ‘AA급’이다. 나이스신용평가의 기준으로 미래에셋증권·신한금융투자·하나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 등이 ‘AA’의 신용 등급을 갖고 있다. 삼성증권·NH투자증권·KB증권 등은 ‘AA+’ 신용 등급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이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발판으로 조만간 등급이 오르면 이들 ‘AA급’ 대형 증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수익 창출 규모와 자본력에선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동일한 ‘AA급’ 신용도를 얻는 것만으로도 한화투자증권에는 큰 의미가 있다.

한화투자증권의 전반적인 경쟁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자산 관리와 IB 부문에서 비교적 우수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올해 9월 기준 총자산은 10조8000억원, 자기자본은 1조6000억원이다.

한화투자증권은 2013년을 정점으로 시장 지위가 하락세를 보였다. 영업 지점을 축소하고 보수적인 영업 정책을 펴면서 위탁 매매 부문의 경쟁 지위가 낮아졌다.

단, 2016년 경영진 교체 이후 주식 매매 회전율 제한 기준을 비롯해 리테일(소매금융) 부문의 각종 제한을 완화했다. 적극적으로 사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파생결합증권(DLS)과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위험 수준을 낮추는 데도 집중했다. 자체 헤지(위험 회피) ELS 운용 관련 실적 변동성은 한화투자증권의 수익성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한화투자증권은 2016년 이후 자체 헤지 ELS 발행과 운용 규모를 줄이고 인력 개편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올해 9월 기준 ELS 발행 잔액은 3158억원으로 지난해 3월의 1조1000억원 대비 크게 축소됐다. 자기자본 대비 자체 헤지 ELS 비율 역시 지난해 3월의 102.4%에서 올해 9월 2.5%로 줄었다.

지형삼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원금 비보장형(ELS·DLS) 상품 잔액 중 상대적으로 운용 부담이 적은 DLS 비율이 올해 9월 기준으로 62.6%를 차지하고 있어 운용 관련 위험이 크게 완화됐다”고 분석했다.
“중형 증권사의 반란”…한화·IBK·KTB, 신용도 상향 조정 ‘낭보’
위험 투자 확대는 향후 신용도에 ‘변수’

IBK투자증권은 올해 12월 ‘AA급’ 도약이라는 숙원 과제를 달성했다. 한국신용평가가 IBK투자증권의 기업 신용 등급을 종전 ‘A+’에서 ‘AA-’로 올려서다. 명실공히 우량 신용도를 갖춘 상위 증권사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2월 IBK투자증권의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꾼 후 조정 시점을 저울질해 왔다. 당시 한국신용평가는 IBK투자증권이 대규모 유상 증자를 단행해 사업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익 변동성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꾸준히 이익 창출 능력을 높여 나가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IBK투자증권은 올해 9월 기준 최대 주주인 IBK기업은행이 지분 87.78%를 갖고 있다. ‘AA-’ 신용 등급엔 계열의 유사시 지원 가능성도 포함돼 있다.

IBK투자증권은 2008년 설립된 증권업계의 후발 주자다. 경쟁사 대비 리테일 사업 기반이 미흡한 편이다. 하지만 IBK기업은행과 제휴해 증권 계좌 개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복합 점포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리테일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오지민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운용 부문은 채권 위주로 하고 있고 자본 대비 DLS 자체 헤지 비율도 8.5%로 높지 않다”며 “전반적인 위험 인수 성향이 낮아 앞으로도 우수한 자본 적정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B투자증권도 연말을 앞두고 신용 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올해 11월 기업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꾼 덕분이다. 현재 KTB투자증권의 신용 등급은 ‘A-’다. 한 단계만 신용 등급이 올라도 안정적인 ‘A급’ 중견 증권사로 올라설 수 있다.

KTB투자증권은 2008년 증권업에 진출한 후 서울과 지방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지점망을 개설했다. 하지만 리테일 부문의 경쟁이 거세지면서 영업 전략을 수정해 대부분의 지점을 폐쇄했다. 이 때문에 위탁 매매 부문에선 시장 지위가 낮다.

그 대신 IB 부문을 특화하기 시작했다. 해외 부동산, 항공기·선박 금융 등 대체 투자 부문과 기업 금융 자문에 집중했다. 2019년 1월 장외 파생 상품 인가도 획득했다. 장외 파생 상품 운용 과정에서 상품 운용 수익과 이자 수익이 늘어났다. 수익원 다양화와 함께 IB 부문의 영업 기반 확대 효과도 나타났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관계 회사 투자 지분이 자기자본의 25%를 웃돌고 있어 배당금 수익과 관련 영업외 손익의 변동이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건전성 분류 대상 자산 중 고정 이하 비율이 올해 9월 기준 0.7%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전반적인 사업·재무 위험이 완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중형 증권사들의 신용도 개선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내년에도 이런 분위기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움츠러들었던 위험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증시·금리 등 환경 변수가 증권업계에 비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투자가 재개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안나영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내년 이후에도 올해처럼 우호적인 업황 유지를 낙관하기는 어렵다”며 “해외 투자를 비롯한 IB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 재무 건전성 지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