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경제 위기 상황 인정…빅테크 죄기는 지속

[글로벌 현장]
중국 베이징의 인민은행.(사진=한국경제신문)
중국 베이징의 인민은행.(사진=한국경제신문)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고 있는 중국이 기준금리를 20개월 만에 내렸다. 미국 등 주요 경제 대국들이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것과 대비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긴축 강화를 선언하면서 2022년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한 데 이어 영국 중앙은행도 3년 4개월 만에 금리를 깜짝 인상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2021년 12월 1년 만기 대출 우대 금리(LPR)를 전달의 연 3.85%보다 0.05%포인트 낮은 연 3.80%로 인하한다고 2021년 12월 20일 발표했다. 다만 5년 만기 LPR은 연 4.65%로 동결했다.

‘헝다 디폴트 사태’ 영향이 직접적
중국은 2019년 8월부터 LPR을 사실상의 기준금리로 지정했다. 그전까지는 한국처럼 7일물 환매 조건부 채권을 기준금리로 썼다. LPR 1년 만기는 일반 대출에서, 5년 만기는 주택 담보 대출에서 기준으로 쓰인다. LPR은 18개 은행이 보고한 최우량 고객 대출 금리의 평균치로 매달 20일 공표된다. 형식상으로는 은행들의 동향을 취합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중앙은행이 정책 지도 등을 통해 결정한다.

중국이 LPR을 기준금리로 지정할 당시 1년 만기는 4.25%, 5년 만기는 4.85%였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내렸다. 마지막 인하했던 2020년 4월 1년 만기는 0.2%포인트, 5년 만기는 0.1%포인트 인하했다.

이번에 인민은행이 LPR을 내린 것은 2020년 4월 이후 20개월 만이다. 이번 인하 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것은 중국 당국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금리를 내릴 필요성이 커졌지만 인플레이션과 부실 부채 문제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유동성 공급을 대거 늘린다기보다 중국 당국이 시장에 ‘우리가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식의 일종의 시그널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2021년 1분기 경제성장률은 2020년 동기 대비 18.3%로 치솟았다. 당시 금리 인상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전력난과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3분기 경제성장률이 4.9%까지 주저앉았다. 일부 전문가는 4분기에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2021년 하반기 중국 경제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는 2위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의 디폴트 사태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도 역시 헝다그룹 디폴트로 대표되는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지적된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1년 기준 28% 정도다. 5년 전 35%에서 내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단일 산업으로 비율이 가장 높다. 부동산 개발업이 직접 차지하는 비율이 7%, 건설·철강·기계 등 간접 기여가 21%다. 헝다그룹 한 곳만의 협력사가 8000개에 고용 인원이 400만 명에 달한다. 헝다뿐만 아니라 100위권 내 중견 부동산 개발 업체들 5곳 이상이 하반기에 디폴트를 냈다.
20개월 만에 기준금리 내린 중국 [글로벌 현장]

안정 속 성장’ 내건 중국 지도부
중국 지도부가 내건 2022년 경제 정책 키워드는 ‘안정’이다. 2021년 12월 8~10일 열린 중국 공산당의 연례 중앙경제공작(업무)회의는 경제 정책 기조를 ‘안정을 우선으로 하되 안정 속에 성장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은 ‘온자당두, 온중구진(穩字當頭, 穩中求進)’으로 정했다.

중국 당국이 안정을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40여 년의 개혁·개방 시대를 관통해 온 ‘성장’이 한 발 물러섰음을 공식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어젠다인 ‘공동 부유’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여기에서 나오는 부작용들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안정의 의미로 분석된다. 분배 위주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돌발 요인들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이번 회의에서 관계자는 “경제 발전이 수요 축소, 공급 충격, 기대치 약세 전환의 3중 압력에 직면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국 당국의 발표 치고는 이례적으로 위기 상황임을 인정했다. 민간 부문에 대한 전방위 규제에 따른 내수 부진, 부동산 시장 침체 등 정책 부작용과 전력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같은 내·외부 악재 속에 중국의 경기는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경기 부양 측면에서 적극적 재정 정책과 온건한 통화 정책, 감세, 인프라 투자 증가, 중소기업·자영업자 지원 확대 등이 제시됐다. 재정 지출은 강도와 속도를 모두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인프라 투자는 적절하게 현 수준을 앞질러 전개하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인프라 투자 용도의 지방 정부 특수 목적 채권 발행 한도를 2021년 3조6500억 위안에서 2022년 4조 위안으로 늘릴 계획이다.

금융회사들에는 소규모 기업, 과학기술 혁신, 녹색 발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내수 확대 전략을 실시해 성장의 내생 동력 증강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 당국은 공동 부유와 관련해 취업 중시, 민생 보장, 세수 확충, 기업들의 자발적 공익·자선 사업 지지 등을 지속 유지하기로 했다. 부동산 부문에선 서민들을 위한 보장성 주택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저소득층에 정부가 시세보다 싼 가격에 주택을 임대·판매하는 정책이다.

이번 회의에서 “공정 경쟁 정책을 심도있게 추진해 반(反)독점 및 반부당 경쟁 기조를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통화 정책은 합리적 수준에서 여유 있는 유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지방 정부의 음성적 채무는 단호히 억제하기로 했다.

인민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소폭에 그친 것은 물가 불안이라는 위험 요인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2021년 11월까지 석 달 연속 두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2021년 10월이 13.5%(전년 동월 대비)로 역대 최고였고 11월에도 12.9%를 나타냈다.

PPI가 소비자물가지수(CPI)로 전이되는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2021년 10월 CPI 상승률 1.5%는 2020년 9월 1.7% 이후 최고치였다. 11월에는 2.3%까지 뛰었다.

시장에선 중국이 기준금리 추가 인하보다 지급준비율 인하 등 파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정책들을 내놓으면서 미세 조정을 지속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환율도 그 근거 중 하나다. 중국 위안화의 가치는 최근 3년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위안화 강세는 환율이 내려간다는 의미다. 2020년 5월 달러당 7위안에서 최근 달러당 6.3위안대로 떨어졌다.

환율이 내려가면 수출 기업의 경영이 어려워진다. 그런데 미국이 2022년 금리 인상을 공식화하면서 중국에 들어왔던 달러가 일부 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위안화 절상 압박도 일부 해소된다는 얘기다.

한편 중국 정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은 2021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8%를 기록하고 2022년에는 5.3% 안팎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전망인 5.3%는 2020년 코로나19 특수 상황에서 2.3% 성장했던 것을 빼면 30여 년 만의 최저치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6% 아래를 기록한 것은 1990년 3.8%가 마지막이었다.

외국 투자은행(IB)들의 전망은 다소 비관적이다. JP모간체이스는 2021년 8월 이후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5번이나 하향 조정했다. 11월에는 2021년 전망치를 7.9%에서 7.8%로 내리고 2022년은 5.2%에서 4.2%로 1%포인트나 내렸다. 그 외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22년 5.1%, 골드만삭스가 5.2%를 제시했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