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직장인 퇴직 현상의 이면…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노동의 가치’ 변화에 주목해야

[비즈니스 포커스]
뉴욕에 거주하는 빈센츠 찬은 자신의 '퇴사' 경험을 담은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 35만명  정도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 사진= 빈센트 찬 유투브
뉴욕에 거주하는 빈센츠 찬은 자신의 '퇴사' 경험을 담은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 35만명 정도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 사진= 빈센트 찬 유투브
“저 그만뒀어요(I Quit)”. 최근 유튜브에서는 3040 젊은 직원들의 ‘퇴사’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사직’을 뜻하는 ‘샵레지그네이션(#resignation)’이 종종 눈에 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대사직(great resignation)’ 현상이다.

‘퇴사’, ‘사직’ 등의 용어가 뒤따라오긴 하지만 이는 “단순히 직업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지금까지 일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일종의 전환기인 셈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3040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업과 유통업 등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산업군을 중심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이 확산되는 가운데 3040 젊은 직원들까지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3040까지 문턱 낮아진 희망퇴직…“인생 2막 준비 기회”
‘4년 치 연봉+전직 지원금 2000만원+자녀 학자금 2000만원.’ 교보생명이 지난해 12월 시행한 상시 특별퇴직의 조건이다. 교보생명은 인력 적체를 해소하고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 상시 희망퇴직을 확대 시행했다. 희망퇴직자들에게 지급하던 기존 3년 치 연봉을 지급하던 것을 4년 치로 늘렸고 전직 지원금과 자녀 학자금 지원 또한 이번에 처음으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역대 최대 조건’에 1주일 동안 300여 명의 직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교보생명 희망퇴직 대상(1500명) 직원 중 20%가 ‘자발적 사직’을 선택한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특히 40대 젊은 직원들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을 포함해 최근 금융업계에는 ‘희망퇴직’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보험·카드 등 금융업계 전반에 불고 있는 희망퇴직 바람은 최근 금융권의 ‘디지털화’와 연관이 깊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인해 금융 서비스 또한 비대면으로 옮겨 가면서 금융회사들은 생존을 위한 핵심 키워드로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면 영업 중심의 ‘오프라인 지점 축소·폐쇄’가 본격화되면서 금융사들 또한 ‘효율적 인력 운용’을 위해 희망퇴직 제도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눈에 띄는 것은 3040세대를 포함해 희망퇴직 대상자의 연령이 예전과 비교해 대폭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BNK부산은행은 차장급과 대리급 이하 1982년생(만 39세) 이후 직원을 희망퇴직 대상자로 포함하며 30대까지 연령을 대폭 낮췄다. 하나은행은 만 15년 이상 근무하고 만 40세 이상인 일반 직원과 예외 인정 대상자를 대상으로 준정년 특별 퇴직 신청을 받았다. KB손해보험도 희망퇴직 대상자 범위를 1983년(만 38세) 이전 출생자까지 넓혔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해 12월 만 45세 이상 근속 기간 10년 이상, 만 45세 미만 근속 기간 15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 또한 ‘대규모 희망퇴직’이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비대면 온라인 유통 분야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점포를 빠르게 줄여 나가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무인 자동화 기기의 보급이 늘고 있는 영향이다. 롯데백화점은 창사 42년 만에 처음으로 20년 차 이상 근속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롯데마트는 전 직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GS리테일 또한 재직 20년 차 이상이거나 1975년(만 46세) 이전에 출생한 차장·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3040 직원들 역시 희망퇴직을 ‘제2의 인생’을 위한 도약의 기회로 삼는 분위기다. 퇴직 후 스타트업 창업이나 유학 등 자기 계발에 투자하거나 최근에 빠르게 성장하는 신사업 분야로 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금융업계에서 희망퇴직한 젊은 직원들 가운데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핀테크업계로 옮겨 간 사례가 적지 않다. 은행 등 기존 금융업계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핀테크 업체들이 ‘인력 블랙홀’로 떠오르면서 인력 경쟁이 치열해진 영향이다.
한 달 450만 명 짐 싸는 미국 직원들…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대사직’ 시대
한창 일할 나이(?)인 젊은 직원들이 ‘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2021년부터 ‘대사직(great resignation) 시대’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앤서니 클로츠 텍사스 A&M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만든 용어로, 그는 지난해 5월 노동자들의 대규모 이탈을 예견하며 주목받았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미 노동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둔 이들이 440만 명에 달했다. 2000년 미 정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2020년 4월 사직자 수가 22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코로나19 사태 동안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大사직 시대’…늘어나는 3040 희망퇴직
미 노동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 노동 참여율(전체 노동 인력 중 일하는 사람과 구직 중인 사람의 비율)은 61.6%로,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20년 2월 63.3%를 밑도는 수치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핵심 생산 인구인 25~54세 노동자층의 일터 복귀가 더디다는 점이다. 이들 연령층의 노동 참여율은 10월 기준 81.7%로 2020년 2월(82.9%)보다 낮았다. 대략 140만 명 정도의 인구가 노동 시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발표된 마이크로소프트의 ‘2021 워크 트렌드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3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41%의 응답자가 조만간 직장을 그만둘 계획이라고 답했다. 비즈니스 전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링크트인 또한 비슷한 설문을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75%가 ‘현재 직장의 근무 조건’과 관련해 이직 등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지금 전 세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대사직’ 현상이 팬데믹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2022년은 물론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달라지는 ‘노동의 가치’…‘일’보다 ‘내 삶’이 먼저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있음에도 ‘일을 그만두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먼저,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서 ‘노동의 가치’가 변화했다는 점이 젊은층의 ‘자발적 사직’ 열풍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노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여간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활황’이었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월급 정체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통해 월급으로 자산을 증식하는 것보다 실제로 주식이나 부동산 등이 ‘자산 증식’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특히 지난 2년간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 등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본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이를 밑천 삼아 ‘자신의 꿈’을 좇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을 통해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대사직 시대’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사직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주목 받은 클로츠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을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되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돌아보며 ‘일의 의미’를 재조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 이후 자연스럽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과 가족 등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우선순위의 재조정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 함께 매일 아침마다 1시간씩 걸리던 출퇴근 시간을 견디는 것이 당연한지,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지 등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월급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다. 자발적인 사퇴를 고민하는 젊은층에게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가진 일자리를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클로츠 교수는 “이 때문에 현재의 ‘대사직 현상’은 단순히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월급’, ‘더 나은 근무 조건’ 등을 찾아 떠나는 ‘일자리 전환기’로 봐야 한다”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예전과 다른 새로운 노동 환경과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