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사업 물적 분할 후 잇단 IPO…경영진 스톡옵션 매각까지 불거지며 주가 급락
[스페셜 리포트] 잘나가던 카카오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발목을 잡은 것은 내부 실적도, 외부 규제도 아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문제다. 카카오의 주요 계열사인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이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 주식을 단체로 매각했다. 주가는 급락했다. 모회사인 카카오의 주가도 내렸다. 전문가들은 한국식 기업지배구조가 이번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한국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 카카오, 혁신 뒤에 숨은 그림자를 조명했다.‘성장에 성장을 더하다’
‘상상 그 이상의 플랫폼 파워’
‘비싸도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할 명품’
1년 전 카카오에 거는 증권가의 기대감은 상당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카카오 분석 보고서에 화려한 수식어를 내걸었다. 2021년 9월, 플랫폼 규제 등의 논란으로 악재가 불거졌을 때도 ‘성장의 폭주기관차’라며 카카오의 성장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성장에 거는 기대감에 개인 투자자들도 크게 늘었다. 카카오가 지난해 4월 액면 분할을 실시하면서 카카오 소액 주주는 2020년 말 56만1027명에서 지난해 9월 30일 주주 명부 기준으로 총 201만9216명을 기록했다. 한국 주식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20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삼성전자에 이어 둘째로, 카카오에 거는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보여줬다.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0년 카카오게임즈에 이어 2021년 한 해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를 차례대로 상장하며 이른바 ‘쪼개기 상장’이 일반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핵심 사업을 분사해 영토를 확장했지만 카카오 주주의 이익은 보호되지 않았다는 게 비판의 골자였다.
물적 분할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무렵, 기름을 붓는 사건이 터졌다. 2021년 12월 10일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를 비롯한 카카오페이 당시 경영진 8인이 회사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 주식을 단체 매각했다. 상장 후 최단 시간 내에 다수의 경영진이 한꺼번에 주식을 매각한 전례 없는 일에 ‘먹튀’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상장 후 장중 25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카카오페이 주가는 반 토막 났다. 카카오 주가 역시 13만원대에서 현재 8만원대로 하락했다. 기대감이 분노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자회사만 174개…대기업 닮아가는 카카오
“미국에선 바로 집단 소송감이에요. 핵심 사업을 분사하는 그 자체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봅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카카오의 이번 논란이 한국식 기업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핵심 계열사들을 분사하며 자금을 조달하고 김범수 의장의 지분율은 희석되지 않은 채 사업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구조가 기존 대기업 집단의 기업지배구조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카카오는 핵심 사업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렸다. 2021년 9월 기준 한국의 계열사 수는 141개다. 해외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174개로 늘어난다. 그중 한국의 상장사 수는 카카오를 시작으로 넵튠·카카오게임즈·카카오뱅크 그리고 11월 상장한 카카오페이까지 총 5개사다. 이후에도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사업의 물적 분할을 통한 자회사 상장이 예정돼 있다.
카카오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네이버의 성장 행보는 사뭇 다르다. 네이버 역시 2021년 9월 기준 한국의 계열사 수는 78개로 네이버파이낸셜·네이버클라우드·네이버웹툰·스노우 등 굵직한 자회사를 안고 있지만 한국 상장사는 네이버가 유일하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한경비즈니스가 올해 발표한 ‘2022 기업지배구조 랭킹’에서 성적이 엇갈렸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 대상 기업 집단 지배 구조’ 자료를 분석해 2021년 공시 대상 기업 집단 60개(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 제외)의 지배 구조 점수를 매긴 조사였다. 이 조사에서 카카오는 40위로 하위권이었다. 반면 네이버는 4위였다. 1년 전 조사에서 카카오는 종합 9위에 올랐지만 2021년 카카오의 잇단 계열사 상장으로 상장사 수가 1개에서 (조사 당시 시점) 3개로 늘어나면서 조사 항목의 모든 부문에서 점수가 깎인 것이 순위 하락의 원인이 됐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이러한 물적 분할이 소액 주주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아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지주사를 담당하는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물적 분할 후 자회사 상장은 지배 주주의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그 비용을 소액 주주들에게 전가하는 자금 조달 방식”이라며 “기업 구조 개편의 방법과 목적이 순수하게 기업 가치의 증대가 아닌 지배 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한국의 낙후된 지배 구조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대부분은 지배 주주가 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증자 등으로 자신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심 사업을 분할해 상장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물적 분할 방식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카카오엔 물적 분할이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성장의 통로가 됐지만 문제는 주주다. 자회사로 분할되는 사업 부문이 기존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중요할수록 소액 주주의 지분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주주가 자회사가 되는 사업부문의 성장 가치를 주목해 투자해 왔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송은해 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이 2018년 발표한 ‘물적 분할 기업의 후속 지배 구조 개편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물적 분할이 모회사의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17년 일어난 총 78건의 물적 분할 사례 중 35건(44.9%)은 분할 이후 신설 자회사의 지분 구조에 변화가 있었고 그중 25건(71.4%)은 모회사가 신설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 투자자 5만여 명이 모인 비영리 단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이하 한투연)의 정의정 대표는 “물적 분할은 소액 주주의 권리를 짓밟는 전근대적 행태”라며 “대기업 상장사들의 무분별한 물적 분할을 제어하고 규제하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물적 분할이 한국에만 들불처럼 번져 소액 주주들의 권리를 빼앗고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1000만 명에 달하는 소액 주주를 가난하게 만들어 지배 주주들이 안정적인 지배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모럴 해저드”라고 말했다.
카카오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2021년 3분기 기준 지분율 7.23%)이 주주 대표 소송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시민 사회와 노동계에서 나왔다. 참여연대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은 “주로 알짜 사업을 분사하는 카카오의 물적 분할은 모회사의 지분 가치 훼손으로 이어져 소수 주주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민연금은 카카오의 주요 주주로서 국민 노후 자금에 심각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대표 소송에 나서야 한다”며 1월 24일 국민연금 측에 성명서를 전달했다. 물적 분할 후 ‘쪼개기 상장’ 규제 나선다
소액 주주들의 국민청원, 노동계와 시민 사회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금융 당국에서도 진화에 나섰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1월 25일 열린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물적 분할 후 ‘쪼개기 상장’할 때 심사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의 의견을 반영했는지를 묻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상장 심사 시 주주 의견을 들었는지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심사 조항에 포함하는 것은 법이나 규정 개정이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손 이사장은 다만 일반 주주들의 의사에 반한다면 회사가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의 시행이나 소액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 장치인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식 등에 대해선 “자본시장법과 상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들도 주식 시장 개혁 방안을 발표하며 물적 분할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물적 분할 때 모회사와 자회사를 동시 상장하는 것과 관련한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공약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같은 상황에서 원래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배 구조 전문가들은 ‘모자회사 동시 상장’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식 기업지배구조 문제로, 이를 개선할 때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상헌 애널리스트는 “회사를 물적 분할해 신설된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것과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등이 향후 법개정 등을 통해 이뤄지게 되면 지배 주주와 소액 주주 간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면서 지배 구조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에는 이러한 지배 구조 개선이 지주회사 밸류에이션의 개선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 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어 설명
물적 분할과 인적 분할
회사분할제도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 조정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1998년 12월 상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기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인수·합병(M&A)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매각을 예로 들면 좋은 사업만 따로 분할해 파는 것이 통째로 파는 것보다 훨씬 쉽다. 또한 신사업을 분리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도 유리하다. 기업 분할에는 인적 분할과 물적 분할 등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신설 법인의 주식 소유권이 기존 회사의 주주(인적 분할)와 기존 회사(물적 분할) 중 누구에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방식을 나눈다. 분할은 주주 총회를 통해 의결하며 출석 주주의 3분의 2가 찬성하고 전체 의결권 3분의 1 이상이 찬성한다면 분할할 수 있다.
①물적 분할
모회사의 특정 사업부를 신설 회사로 만들고 이에 대한 지분을 100% 소유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형식의 기업 분할 형태다. 물적 분할하면 분할 주체(모회사)가 신설 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해 주주들은 종전과 다름없는 지분 가치를 누릴 수 있다. 또한 분할된 회사의 등록세와 취득세가 면세되고 법인세와 특별부가세 부과도 일정 기간 연기된다. 물적 분할로 기업이 새로 생길 때 기존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물적 분할은 분할하는 사업 부문이 모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분할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면 소액 주주의 지분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사례>2021년 SK이노베이션(SK온·SK어스온), 2020년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②인적 분할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의 기업 분할이다. 기존 회사와 똑같은 주주 구성으로 신설 회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회사만 수평적으로 나눠지는 수평적 분할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없다. 인적 분할되면 법적으로 독립된 회사가 되고 분할 후 곧바로 주식을 상장할 수 있다. 주주가 사업회사 주식을 투자회사 주식으로 교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선호한다.
<사례>2021년 LG-LX, 2021년 SK텔레콤-SK스퀘어, 2011년 신세계-이마트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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