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중국 등 참전, 높아지는 반도체 과잉생산 우려
‘국제 가이드라인’ 절실

[경제 돋보기]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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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의 보조금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반도체가 미래 기술 발전의 핵심 부품으로 인식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던 선진국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중국 경제의 부상에 있다. ‘중국 제조 2025’처럼 중국 정부가 전략 산업의 육성을 골자로 하는 강력한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이용해 중국의 경제적 지위가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협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맞선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국 기술 기업에 대한 제재를 현실화하면서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물자 공급 제한 등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됐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대중 견제 정책에 변화가 없고 오히려 노동·인권·환경 등 전선이 더욱 확대되자 중국은 지난해 ‘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과 2035년 장기 발전 전략을 통해 ‘혁신이 이끄는 발전’을 주요 내용으로 제조업과 기술 자립화를 천명, 소위 ‘기술 굴기(崛起)’에 나서고 있다. 또한 중국은 지난해 7월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기술의 자립자강’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맞서 미국은 미래 기술·과학·연구 분야에 향후 5년간 최소 2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을 포함한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제정해 상원의 승인을 받았다. 하원 역시 반도체 연구와 생산에 520억 달러의 지원을 포함한 ‘반도체 법(Chips Act)’을 지난 1월 발의했다.

하지만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 등 미국 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상하원이 어떠한 합의안을 도출할지 불확실하지만 미국의 반도체 연구와 생산 역량 강화, 관련 인력 양성 등에 투자해 장기적으로 미국의 기술 역량 확대와 중국과의 격차 유지를 기본적인 정책 방향으로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반도체 보조금 경쟁에 유럽연합(EU) 역시 참전을 고려하고 있다. EU는 ‘유럽 반도체 법안’을 통해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현재 10%에서 20%까지 늘릴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보조금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의 520억 달러에 버금가는 재원이 투입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EU의 최종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이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이지만 반도체 생산 공급망 중 네덜란드 ASML이 선도하는 반도체 노광 장비 공급 분야의 시장 지배력을 확대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또한 일본이 대만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 역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협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반도체(TSMC)는 일본에 연구·개발(R&D) 센터와 생산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고 일본에 있는 TSMC의 기존 협력 업체와의 R&D-생산 공급망 구축으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 역시 수천억 엔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K반도체 육성 전략’과 함께 미국·EU·일본·중국·대만 등 6개국이 결국 일종의 ‘치킨게임’에 들어가게 됐다. 철강 산업에서도 나타났듯이 경쟁적 생산 설비 확충 경쟁은 추후 전 세계가 과잉 생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합의된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없는 반도체 보조금 전쟁이 과연 어떠한 결말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격화되는 반도체 보조금 전쟁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