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얼굴’ 5대 그룹 CI 변천사

[스페셜 리포트] 사명 바꾸는 기업들의 브랜딩 전략
삼성·SK·현대차·LG·롯데그룹 사옥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
삼성·SK·현대차·LG·롯데그룹 사옥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한국을 대표하는 5대 그룹의 사명과 로고는 많은 변화를 거쳐 완성됐다. SK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던 기존 사명을 신규 사명으로 새롭게 브랜딩하는 데 성공했고 신라시대 유물에서 따온 이미지를 기업 로고로 바꾼 LG는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삼성 CI 변천사. 사진=삼성그룹 제공
삼성 CI 변천사. 사진=삼성그룹 제공
① 삼성

삼성은 ‘세 개의 별’을 뜻하며 이병철 창업자의 비전인 ‘하늘의 별처럼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암자전’에 따르면 ‘삼(三)’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다. ‘성(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빛나는 것을 뜻하는데 이 두 글자를 조합해 사명을 만들었다.

삼성은 3개의 별을 형상화한 로고를 사용하다가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고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기업 이미지(CI) 리뉴얼을 단행하면서부터 우주를 상징하는 파란색 타원형 로고를 썼다. 미국의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리핀컷머서(Lippincott Mercer)에 의뢰해 20억원을 들여 개발한 것이다.

2015년부터 타원형 로고에서 영문 글자 ‘SAMSUNG’만 있는 로고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1993년부터 삼성전자를 상징하는 컬러로 기술과 혁신을 뜻하는 블루 색상을 쓰기 시작했다. 삼성의 기업 이미지를 대표하는 삼성블루로 불리는 이 색상은 팬톤의 286C 색상이다. 현재는 마케팅을 위해 삼성블루·블랙·화이트 등 3가지 색상을 사용하고 있다.
SK CI 변천사. 사진=SK그룹 제공
SK CI 변천사. 사진=SK그룹 제공
② SK

SK는 1998년 1월 선경에서 SK로 사명을 변경했다.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에서 선경의 앞 글자 영문 이니셜을 따온 것이다. 기업 슬로건은 ‘고객이 OK할 때까지, OK! SK!’를 채택했다. 이 슬로건은 1999년 ‘고객이 행복할 때까지 OK! SK!’로 수정됐다.

사명을 SK로 변경한 이유는 섬유 중심으로 성장한 선경의 이미지를 미래 유망 산업인 에너지와 정보통신의 SK로 재구성해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선경이 사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CI 진단 과정에서 선경의 영문명인 ‘Sun Kyoung’의 띄어쓰기를 잘못할 경우 ‘Sunk Young(가라앉는 젊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게 할 수 있고 한글의 영문 표기로 정확한 발음이 어려워 글로벌 진출 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선경그룹은 선경 관련 관계사, 유공 관련 관계사 등 계열사마다 다른 CI 체계로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분산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계열사마다 각기 다른 CI로 인해 고객이 선경그룹의 실체를 실제보다 작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신규 사명 개발은 삼성의 CI 리뉴얼을 맡았던 미국 리핀컷머서가 맡았다. 리핀컷머서는 SUNEX, SKYON, NEXEN, SUPEX, SUNPEX, SK·SKC, NUSUN, SUNUS, ESPEX, NEXO 등 총 10개안을 신규 사명으로 제안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발음되고 기억하기 쉬우며 임팩트가 강한 ‘SK’가 신규 사명으로 최종 결정됐다.

SK그룹을 대표하는 행복 날개 로고는 2005년 도입됐다. 로고 역시 삼성의 파란색 타원형 로고를 만든 리핀컷머서가 개발했다. 행복 날개는 연과 통신위성 등을 주요 모티브로 디자인됐다.

당시 SK그룹의 두 성장 축이었던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의 비상하는 모습을 두 날개의 형상으로 표현해 진취적이고 높이 비상하는 SK의 글로벌 의지를 반영했다.

색상에도 의미를 담았다. 행복 날개는 패기와 열정,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빨간색을 기본 색상으로 사용하고 행복·따뜻함·매력을 의미하는 주황색 등 두 가지를 사용했다. 2020년 12월부터는 녹색·보라색·파란색·검은색 등 총 10가지로 확대해 마케팅·프로모션 등에서 행복 날개를 활용한 디자인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다.
현대차 CI 변천사.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 CI 변천사.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③ 현대차

1946년 정주영 창업자가 설립한 자동차 정비소인 현대자동차공업사에서부터 ‘현대(現代)’라는 사명을 쓰기 시작했다. 현대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수리하는 곳이어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졌다.

‘현대’라는 단어에는 ‘앞서가는’, ‘모던한’, ‘세련된’ 등의 의미가 담겨 있고 창립 당시에는 ‘현대적’이라는 말 자체가 ‘상상 속의 밝은 미래’를 뜻했다. 현대라는 사명에는 가슴 뛰는 미래를 열어 갈 도전과 창조, 개척의 기업 정신이 녹아 있다.

현대차 로고에서 타원형의 링 안에 있는 ‘H’는 두 사람이 악수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노사 화합, 고객과 기업 간의 신뢰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친숙한 국민 브랜드이지만 현대차의 영문 사명(Hyundai)을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해 전 세계 기업 가운데 구글에서 틀린 철자로 검색되는 브랜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영국 잡지 머니가 2020년 9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구글에서 현대차를 훈다이(Hundai), 히운대(Hiundai)로 잘못 검색한 사례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 60만5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차는 2009년부터 슈퍼볼 TV 광고에서 ‘현데이 라이크 선데이(Hyundai like Sunday)’ 카피를 통해 현대를 ‘선데이’처럼 발음하라고 홍보하고 있다.
LG CI 변천사. 사진=LG그룹 제공
LG CI 변천사. 사진=LG그룹 제공
④ LG

LG는 1947년 구인회 창업자가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이 모태다. ‘락희’는 영어 단어 ‘럭키(lucky)’에서 비롯됐다. 락희화학공업에서 만든 럭키크림이 크게 성공하면서 럭키치약 등 락희화학이 만드는 제품들의 대표 브랜드 역할을 했다.

1974년 락희화학은 럭키로 사명을 변경했다. LG는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해 전자 사업도 함께 키워 나갔다. 석유화학·에너지·반도체·건설·증권·유통·보험 등으로 사업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1983년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Lucky Goldstar)’으로 바꿨다.

1995년 그룹 CI를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구본무 전 회장이었다. 구 전 회장은 ‘럭키’, ‘금성’ 등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사명 변경을 반대하는 주변의 만류에도 세계화 추세에 맞춰 강력하고 선명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사명 변경을 추진했다.

당시 구 전 회장이 ‘럭키 골드스타(Lucky Goldstar)’라는 긴 이름은 외국인들이 기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LG’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고 디자인은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랜도어소시에이츠가 맡았다. 현재 LG를 대표하는 붉은색 로고는 이때 만들어졌다.

‘미래의 얼굴’로 불리는 LG 로고는 신라시대 유물인 얼굴 무늬 수막새 기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색상은 LG레드로 불리는 팬톤 207C와 LG 그레이·화이트를 조합했다. LG에 따르면 로고 디자인은 ‘세계·미래·젊음·인간·기술’ 등 5가지의 개념과 정서를 형상화했다.

‘L’과 ‘G’를 원 속에 형상화해 인간에 중심을 두고 있는 LG의 경영 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와 ‘인간 존중의 경영’을 표현했다. 하나의 눈은 목표 지향성·집중성·미소를 의미한다.

비대칭의 우측 여백은 변화 적응성과 창조성을 상징한다. 미래의 얼굴은 LG의 얼굴로서 세계 최고를 지향하고 LG가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세계 고객’의 얼굴을 상징한다.

사명 변경 후 LG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와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 제작한 ‘사랑해요 LG’ 광고는 전 국민이 흥얼거릴 만큼 화제를 모았다. LG의 사명 변경은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롯데 CI 변천사. 사진=롯데그룹 제공
롯데 CI 변천사. 사진=롯데그룹 제공
⑤ 롯데

롯데의 사명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비롯됐다. 문학 청년이었던 신격호 창업자는 당시 이 책을 읽고 여주인공 샤롯데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과 정열에 큰 감명을 받았다. ‘롯데’라는 신선한 이미지를 사명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1948년 일본에서 롯데를 창립했다.

‘사랑과 신뢰를 받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인류의 풍요로운 삶에 기여한다’는 롯데그룹의 미션에도 창업 정신이 담겨 있다. 롯데는 롯데제과의 샤롯데 초콜릿, 롯데호텔의 샤롯데룸, 롯데시네마 샤롯데관 등 제품과 서비스 등에 샤롯데 이름을 쓰고 있다.

서울 중구 롯데 영플라자 본점 옥상 공원에 샤롯데 동상을 세우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는 괴테 동상을 설치해 창업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롯데는 1978년부터 2012년까지 영문 대문자 ‘L’ 3개를 겹쳐 놓은 로고를 사용하다가 2012년 롯데 영문명 ‘LOTTE’로 로고를 변경했다. 2017년 10월 롯데지주를 출범하면서 붉은색 둥근 마름모에 알파벳 대문자 ‘L’을 필기체 소문자 ‘ℓ’로 변경한 새로운 로고를 만들었다.

롯데지주의 비전인 ‘라이프타임(L) 밸류(V) 크리에이터(C)’의 약자인 L, V, C로도 읽힐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됐다.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고객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롯데의 의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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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