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에도 시세 상승 …1년 타고 신차 가격 그대로 팔리거나 높은 가격에 재판매

[비즈니스 포커스]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에서 현대차 캐스퍼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에서 현대차 캐스퍼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약 없는 신차 출고 지연에 소비자의 눈이 중고차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반도체 수급난이 계속되면서 차량을 제작하지 못해 신차를 받으려면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6개월은 기다려야 새 차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출고 대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다림에 지친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대기 기간 없이 곧바로 차량을 활용할 수 있어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명절 이후는 중고차 시장의 비수기다. 귀향·귀경길 장거리 주행에 앞서 차를 바꾸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차 출고 지연에 따라 비수기에도 중고차 시세가 덩달아 오르고 있다.
신차 출고 지연에 중고차 시장 활황

“이르면 6개월이라는데 기대 안 합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A 씨는 최근 출시된 기아의 올뉴 니로 하이브리드를 계약했다. 대리점 영업 사원은 A 씨에게 이르면 6개월, 운이 좋지 않으면 1년이나 기다려야 출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씨는 6개월 안에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리점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영업 사원 모두 비슷한 얘기만 했기 때문이다. 6개월이란 말은 혹시나 계약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으레 하는 ‘영업용 멘트’라고 판단했다. 결국 1년을 기다려야 새 차를 탈 수 있다고 마음을 굳혔다. ‘신차’를 샀는데 1년 후에나 받아 ‘헌 차’를 사는 셈이다.

A 씨의 사례는 모든 신차 구매자에게 해당한다. 차종별로 출고 일정이 늦어지면서 현대차와 기아는 이례적으로 전 차종 납기표를 영업 사원에게 배부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대차의 인기 차종 아반떼는 7개월, 그랜저는 4~6개월, 쏘나타는 2개월 정도 후 차량을 인도 받을 수 있다.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제네시스 GV60는 1년 이상 걸린다.
기아도 마찬가지다. 내비게이션에 사용되는 반도체 부품이 부족해 출고가 늦어지고 있다.

모닝과 레이는 3개월이 걸리는데, 내비게이션 옵션을 미적용하면 1개월 안에 출고가 가능하다.

올뉴 니로는 1년, 전기차인 EV6는 13개월이 지나야 출고가 가능하다. 인기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스포티지와 쏘렌토도 1년이다.

시장에선 출고 지연 현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월 한국 자동차 생산은 지난해 동월 대비 13.7% 줄어든 27만1054대다. 산업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지속되며 1월 차량 생산량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완성차 5개사별로 살펴보면 르노삼성을 제외한 현대차·기아·한국GM·쌍용 등의 생산량이 줄었다. 현대차는 16.7%, 기아 0.5%, 한국GM 65.0%, 쌍용은 21.7% 줄었다. 르노삼성은 그룹 본사에서 반도체를 조달받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을 이어 가고 있다.
신차 출고 지연에 중고차 시장 활황
신차 가격보다 비싼 중고차도 등장

신차 출고 지연은 기이한 현상도 연출하고 있다. 신차 가격을 넘어선 중고차까지 등장한 것이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반도체 부품이 많이 사용돼 출고가 더 늦어지는 만큼 해당 차종의 중고차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직영 중고차 기업 ‘케이카’에 따르면 아이오닉5의 1월 시세는 4706만원으로 전월 대비 11.7%, 코나 일렉트릭은 10.7% 오른 2906만원이다. 아이오닉5를 비롯한 EV6 등 인기 전기차 모델은 신차 값 대비 500만원 정도 높은 가격에 중고차가 거래되고 있다.

한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인기 전기차의 출고 시기가 다른 차종 대비 가장 늦는 만큼 주행 거리가 짧은 중고차에 대한 수요가 무척 많다”며 “신차 값을 넘어선 중고 전기차 시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서민의 발’로 불리는 1톤 트럭의 중고차 가격도 상승세다. 현대차 포터2와 기아 봉고3 등의 중고차 가격은 신차 대비 각각 400만원, 300만원 정도 비싸다. 1톤 트럭은 화물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필수 차량인 만큼 마냥 신차 출고만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다른 중고 차종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시세가 높은 상황이다. 특히 인기 차종을 중심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AJ셀카에 따르면 올해 2월 그랜저HG의 중고차 시세는 1월 대비 17% 올랐다. 아반떼AD는 5%, 아반떼MD는 3% 올랐다.

SUV는 르노삼성의 QM6가 17%, 현대차 올뉴 투싼이 5%, 기아 스포티지 4세대가 4%씩 올랐다. 비수기가 찾아왔음에도 시세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높게 거래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중고차 시장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한 신차급 중고차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기아 쏘렌토는 1년 운행한 중고차 가격이 신차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모바일 중고차 플랫폼 ‘첫차’가 올해 1분기 신차 대기 모델 시세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1년식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첫차 내차 팔기 경매장에서 신차 출고가 대비 0.7% 낮은 가격에 매입가가 책정됐다.

다른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신차급 중고차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중고차 값이 신차 가격을 넘어서는 현상은 지금까지 없었다. 오랜 출고 지연에 지친 소비자들이 신차급 중고차에 눈을 돌리면서 딜러들의 매입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차급 중고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신발이나 의류처럼 ‘리셀’을 노리는 소비자도 있다”며 “신차를 인도 받은 이들이 차량을 타지 않고 곧바로 중고차 딜러에게 매입을 요청해 수백만원의 이익을 보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