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운영 실패, 국민 안보 흔들
동맹국·군사력 확보는 필수
우크라이나인들은 구소련과 현재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뼈에 사무쳐 있다. 1930년대 초반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 1980년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이어 작금의 러시아 침공 등 많은 피해를 봤다.
우크라이나는 비료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한 흑토(체르노젬)를 보유한 세계 3대 곡창 지대로, 예나 지금이나 농업의 경쟁력이 높은 국가인데 스탈린 치하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우크라이나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소련 시절인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이 방사능 유출로 초토화될 뻔했다.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화공·기계·에너지(원전) 등 중공업을 육성했고 중공업 육성과 지역 통치 차원에서 동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편입시켰다.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사이좋게 지냈지만 소련이 해체되면서 지역 간 갈등이 촉발됐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원래 우크라이나 사람이 주로 살았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주민은 러시아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친러시아 성향이 강했다. 현재 총인구의 78%는 우크라이나인이고 18%는 주로 동부와 남부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이다. 탈러시아와 유럽화를 추구하는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들어서면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위협했다. 2014년 러시아는 군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점령해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켰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줄고 있고 열악한 의료 환경, 높은 영아 사망률과 알코올 중독 등으로 평균 수명이 70세 초반으로 1960년대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다. 또한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경제는 수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기도 했고 유럽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다.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경제는 더 악화될 것이고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병력의 수나 무기에서 절대적 우세인 러시아의 전면 공격에 우크라이나는 밀릴 수밖에 없다. 정부의 징집 명령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탈출 행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러시아 군대의 미사일과 포탄을 피해 방공호로 쓰이는 지하철역으로 대피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국민의 ‘엑소더스(대탈출)’ 행렬이 국경을 접한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 등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전에 열린 한국의 대통령 선거 후보 간 공식 TV 토론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설전이 오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정 운영 실패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휩싸였다는 주장과 국방력을 갖추지 못하면 평화 협정을 체결하더라도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례라는 주장이 맞섰다.
우크라이나는 부패가 난무하고 정치권의 무능이 국가 발전을 방해해 온 대표적인 국가이고 정치 난맥상으로 시장 경제로의 전환도 늦었다. 독립 국가에 러시아가 침공한 사실은 비난받아야 하고 국제 사회가 규탄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정치가 바로 서고 국가 운영을 제대로 해야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있고 또한 국가 안보에 동맹국이 중요하고 물리적 군사력이 뒷받침돼야만 평화와 안전이 유지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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