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최우선 과제는 위기 대응…인프라 투자로 대표되는 ‘현대 공급 중시 경제학’ 주목해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현대공급중시경제학(MMSE)을 주장 중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연합뉴스
현대공급중시경제학(MMSE)을 주장 중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연합뉴스
당초 예상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했다. 앞으로 제3차 세계대전에 해당하는 서방 국가와 러시아의 전면전으로 확산될 확률은 낮더라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주요 농산물과 부존자원의 생산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공급망 부족이 심각하고 금융 완화에 따른 숙취로 슬로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까지 덮친다면 글로벌 경제는 성장률이 낮아지고 물가는 현재 수준보다 오를 것으로 보인다.
新경제 위기 해법 ‘MMSE’에서 찾아야[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국제 유가 급등하면 세계 경제 추락

JP모간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유가가 150달러로 급등하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기존 전망치인 4.1%에서 0.9%까지 급락하고 세계 인플레이션율은 3%에서 7.2%로 급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차 오일 쇼크 이후 1980년대 초에 있었던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악성’으로 평가된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던 40여 년 전 초유의 사태를 맞아 당시까지 주류 경제학이었던 케인스언의 총수요 관리 대책은 무기력해졌다. 당시 대안 모색 과정에서 정책 목표대로 수단을 달리 가져가야 한다는 ‘틴버겐 정리’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던 폴 볼커가 물가 안정을 우선시했다는 차원에서 ‘인플레 파이터’라는 새로운 용어 등이 많이 등장했다.

경제학적으로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경기 대책 수단을 총공급으로 전환해 놓은 것이 ‘레이건노믹스’라고 불리는 공급 중시 경제학이다. 래퍼 곡선에 따라 세율과 세수 간 역비례 관계에 있는 비표준 지대에서는 세금을 낮춰야 경제 의욕이 고취돼 성장률이 올라가고 재정 수입도 늘어난다는 것이 이 이론의 배경이다.

이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미국 경제는 지난해 5월부터 대두된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통화 정책 우선순위를 ‘고용 창출’에서 ‘물가 안정’으로 설정했다. 레이건 정부 시절과 다른 점은 당시에는 Fed 의장이 인플레이션의 파이터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지지도 추락에 시달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보는 눈이 곱지 못하다는 점이다.

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바꾼다면 지난해 2분기를 정점으로 둔화되고 있는 경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은 ‘빚 내서 더 쓰자’는 현대 통화 이론(MMT)을 주장하고 있지만 바이든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 컨트롤 타워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현대 공급 중시 경제학(MSSE)으로 맞서고 있다.

MSSE의 논리는 최근처럼 금융 완화에 따른 숙취와 공유 경제라는 새로운 정책 목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단순히 세율만 낮춰서는 안 되고 1930년대 뉴딜 정책처럼 사회간접자본(SOC) 등 국가 인프라를 개조하는 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옐런 장관의 주장이다.

‘사회 인프라법’으로 통칭되는 MSSE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커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 측면에서도 고용 시장에서 외면 당하는 중하위 계층의 일자리가 늘어나 바이든 정부의 공유 경제 목표에도 부합할 수 있다.

차기 정부, 옐런의 MMSE 도입해야

미국이 이달 Fed 회의를 계기로 본격적인 출구 전략 추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차기 대통령 탄생이 예정돼 있다. 권력 인수 과정을 거쳐 2개월 후 출범할 차기 정부의 운명은 한국 경제의 신위기론을 해결할지 여부에 달려 있다.

첫째, 경기와 관련된 기존의 한국 경제 위기론에선 디플레이션이 거론돼 왔다. 디플레이션은 성장률 자체가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하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과 무관한 위기론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이 최대 현안으로 대두됨에 따라 경기와 관련된 위기론도 바뀌고 있다.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플레이션과 성장률 둔화 속에 물가가 오르는 슬로플레이션 우려가 동시에 고개를 들고 있다.

성장률과 실업률 간의 오쿤 계수가 떨어지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간 필립스 관계가 우상향으로 전환되면 스태그플레이션 경고가 나오는 실정이다.

둘째, 부채와 관련해 항상 가계 부문이 거론돼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가 부문, 즉 국채 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국가 채무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37%였던 국가 채무 비율은 불과 4년 만에 51%로 급증했고 2026년에는 70%에 달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 있다.

가계 부채가 많아 ‘신용 갭’이 1972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수준에 달하고 은행의 국채 보유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국채 위기가 발생하면 민간에 점염돼 금융 위기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

셋째, 1990년대 들어 글로벌화가 급진전되는 추세에 따라 정부가 대외 부문의 빗장을 푸는 과정에서 개방화 위기가 제기됐다.

수출 지향적 정책을 추진했지만 당시 경제 발전 단계에 비해 개방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다. 특히 1990년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외환 위기를 겪음에 따라 이러한 예측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개방화 위기는 문재인 정부 들어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관측으로 바뀌었다. 갈라파고스 함정은 중남미 에콰도르령인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에 빗대 세계 흐름과 격리되는 폐쇄형 위기를 말한다.

넷째, 기업이 조금이라도 해외에 나갈 경우 산업 공동화 우려가 제기됐다는 점이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해외로 나가는 기업을 불러들이는 정책을 펴면서 이 우려는 다소 줄어들었다. 이 흐름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그 대신 자본 공동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2017년 14억 달러에 불과했던 해외 주식 투자액은 지난해 218억 달러로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 해외 부동산 투자도 미국 상업용 건물의 경우 세계에서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다. 외환 위기 경험국으로서 자본 공동화는 국부 유출로 인식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다섯째, 대외 경제 위상과 관련해 고질적으로 우려돼 왔던 것이 MIT(Middle Income Trap), 즉 중진국의 함정이다. 2006년 세계은행이 처음 사용한 MIT는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처럼 신흥국이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선진국 문턱에 와서 어느 순간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면서 신흥국으로 재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한국은 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를 제외하면 선진국에 속한다. 앞으로 우려되는 점은 선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 함정이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정치와 행정 규제, 국가 부채, 글로벌, 젠더 등 5개 분야의 후진성 때문이다. 한국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신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옐런 장관의 MMSE를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올해 초 슈퍼급 예산안을 확정한 후 잉크도 마르기 전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단순히 재정 지출을 늘려서는 한국 경제의 신위기론을 극복할 수 없다. 재원 조달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적자 국채를 중앙은행이 인수해 줘야 한다는 ‘부채의 화폐화’ 방안은 특히 옳지 않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