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역차별 논란에 서울행 ‘유턴’
포항·광양 갈등으로 번진 신사업 유치전
주주와 지자체 사이에서 딜레마

[비즈니스 포커스]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 앞에서 2022년 2월 8일 포항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포스코그룹 지주회사 포항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 앞에서 2022년 2월 8일 포항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포스코그룹 지주회사 포항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를 출범시킨 포스코가 자사 제철소가 들어선 두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간 샅바 싸움에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포스코 신성장 사업의 중심이 될 지주회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의 소재지를 두고 경상북도와 전라남도 간 역차별 문제가 불거져서다.

포스코는 당초 포스코홀딩스의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했지만 포항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강력히 반대하고 경영진 퇴진 운동 조짐까지 보이자 결국 서울행을 철회했다. 포스코의 지주회사 전환 안건은 올해 1월 28일 참석 주주 8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해당 안건에는 신설 지주회사 소재지를 서울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주회사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다시 주주들의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포스코는 2월 25일 성명문을 내고 “포스코홀딩스 소재지를 이사회·주주 설득과 의견 수렴을 통해 2023년 3월까지 포항으로 이전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에 본원을 설치하고 포항 중심 운영 체계 구축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신설 법인·연구소 포항 설립에 뿔난 광양시

포스코가 지주회사 서울행을 철회하면서 지역사회와의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최근 광양제철소가 있는 전남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며 다시 지역 간 역차별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전남도는 광양 홀대론을 제기하며 지역 간 균형을 위해 현재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와 포스코케미칼을 광양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앞서 포스코가 전남 광양제철소를 중심으로 3년간 약 5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밝혔지만 지역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투자 계획에는 수소 복합 단지 건설,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7~8호기 증설이 포함됐다. 향후 신규 투자 부문도 추가될 예정이다.

포스코는 올해 광양제철소 2·4고로 개·보수와 친환경 자동차 전기 강판 생산 능력 증대 사업 등에 1조7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023년에는 신사업 등에 1조7000억원, 2024년에는 1조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방침이다.

포스코가 올해 광양 지역에 투자하는 1조7000억원은 지난 3년 평균 투자액인 1조1000억원보다 6000억원(54.5%) 정도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광양 지역사회는 사전에 계획된 투자일 뿐이라며 포스코에 추가 투자 계획을 수립해 조속한 시일 내에 발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남도는 3월 7일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을 만나 “최근 포스코홀딩스가 포항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모든 의사 결정이 포항 중심으로 진행돼 광양 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며 “포스코와 포스코케미칼 본사를 광양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포스코 미래기술원 내 ‘수소저탄소에너지연구소’를 광양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이 철강 분야 탄소 중립 핵심 기술 연구·개발(R&D) 중심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들끓는 광양 민심에 5조원 투자 계획 발표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광양제철소가 포항제철소보다 생산량이 앞서는 데도 R&D 인프라와 신사업 결정, 구매와 계약 체결 등 모든 의사 결정이 포항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 우려를 전달하며 포스코 지주회사가 포항으로 이전한 만큼 광양에 본사를 둔 포스코 지주회사 계열사를 확대하고 광양에 소재하는 신규 계열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계획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은 “포스코의 핵심인 철강뿐만 아니라 그룹 차원의 신성장 사업은 사업장(제철소) 기반의 확장형으로 진행돼 핵심 지역인 광양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양에는 올해 5월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인 연 9만 톤 규모로 준공할 양극재 공장, 리튬 원료를 생산하는 포스코리튬솔루션,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으로 원료를 공급하는 포스코HY클린메탈 등 그룹의 2차전지 소재 사업 인프라가 집적돼 있다.

광양만권 내에 양극재 사업의 전체 공급망(밸류 체인)을 구축하고 있는 포스코케미칼은 세풍산업단지에 약 6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10만 톤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앞서 경북도는 “포스코가 165만2893~330만5785㎡(50만~100만 평) 규모의 신산업 단지를 조성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포항으로 가는 R&D 심장, 인재 확보 차질 우려

수소·인공지능(AI)·2차전지 등 미래 신산업 주도권 선점을 위해 주요 기업들은 우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 산업을 이끌어 갈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R&D 연구소를 수도권에 설립하는 추세다.

SK그룹은 부천 대장신도시 내에 친환경 기술 R&D 인력 3000여 명이 근무할 SK그린테크노캠퍼스(가칭)를 2027년까지 설립하기로 했다. 두산그룹은 용인에 그룹 첨단 기술R&D센터를 신설하기로 했다. 2026년 완공이 목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성남시 분당에 글로벌 R&D센터(GRC)를 짓고 있다.

기업들이 R&D 연구소를 수도권에 설립하려는 이유는 그동안 석·박사급 연구원들의 지방 근무 기피로 우수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그룹의 미래 사업을 위한 R&D 컨트롤타워인 ‘미래기술연구원’을 포항에 설립하기로 하면서 우수 연구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에 R&D센터를 두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본사 소재지로 서울을 선호하는 이유는 정보·인재·중앙정부·금융의 집중과 용이한 해외 접근성 등 우호적인 조건과 전국 사업체 통괄을 위해 서울이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R&D센터를 수도권에 설립하면 지방에 R&D센터를 둔 경쟁사와의 인재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포스코 ‘탈포항’ 논란이 쏘아 올린 지역 소멸 위기

포스코의 지주회사·미래기술연구원의 ‘탈포항’ 논란은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지방 소멸 이슈로도 불이 붙었다. 비수도권에서는 수도권 집중화로 청년 인구 유출, 고령화 등으로 지방 소멸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역사회가 필사적으로 글로벌 기업 포스코 본사와 연구소까지 사수하려는 이유는 기업 본사의 수도권 집중이 인구와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는 요인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2021년 8월 발간한 ‘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 최근 동향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 본사 소재지가 서울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공시 대상 기업집단 64곳(소속 계열회사 1967개) 중 약 56곳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본사 소재지가 비수도권에 있는 기업집단은 포스코(경북)를 비롯해 현대중공업(울산), 카카오(제주), 하림(전북), 대우조선해양(경남), KT&G(대전), SM(광주), 중흥(광주) 등 8곳이다. 이 가운데 카카오는 판교테크노밸리에 본사보다 큰 규모의 사무소를 갖고 있고 포스코·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KT&G는 실질적으로 서울에 본사 기능의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보고서는 “정부가 그동안 각종 세제·보조금 지원 시책을 통해 기업 본사의 지역 이전을 추진해 왔지만 수도권의 압도적인 입지 경쟁력으로 기업 본사의 수도권 집중이 더욱 심화하는 추세”라며 “행정·재정상의 과감한 제도 개선을 통해 기업 친화적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지역 대학의 역할, 사업 서비스의 발전, 지역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타깃 기업군의 공동 이전을 유도하는 방안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