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연공제 직급 폐지하고 ‘경영리더’로 통합…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확실한 보상

[스페셜 리포트=CJ 인사 혁신, 대변혁이 시작됐다]

CJ가 혁신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그 첫 시작은 바로 ‘사람’이다. CJ의 미래를 위해서는 ‘최고의 인재’가 핵심이고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인사 제도와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래를 위해 과감한 변화를 진행 중인 CJ의 인사 혁신과 그 의미를 짚어 봤다.
남산 중구 소월로에 위치한 CJ그룹 본사 'CJ 더 센터'. 사진=CJ 제공
남산 중구 소월로에 위치한 CJ그룹 본사 'CJ 더 센터'. 사진=CJ 제공
“새로운 세대들이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할 것이다. 최고의 인재들이 들어오고 싶어하고 일하고 싶어하며 같이 성장하는 CJ를 만들겠다.”

지난해 11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CJ의 미래’를 위해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인재’였다. 이 회장은 4대 성장 엔진 중심의 중기 비전을 발표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 문화 혁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혁신을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이를 위해서는 ‘최고의 인재’들이 CJ에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이다.

이와 같은 고민의 결과물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CJ의 ‘인사 혁신 실험’이다. 기존 대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제도들을 잇달아 도입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직급 파괴, 주요 포지션 사내 공모,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지원 등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CJ가 추구하는 ‘일터’의 모습은 꽤 선명하다. 연차나 직급,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 분야까지 넘어 직원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일에 도전하고 성과를 내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터다.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직원들에게 ‘최고의 지원’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리더를 꿈꾸는 자들에게 기회의 문 활짝

변화의 첫 시작은 기업 내 공고히 자리하고 있는 ‘직급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CJ는 기존에도 ‘님’ 호칭 문화를 통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심는 데 앞장서 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존의 연공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리더가 되길 원하는 직원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CJ는 지난해 말 이를 반영해 새로운 임원 직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사장·총괄부사장·부사장·부사장대우·상무·상무대우로 나눠져 있던 6개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 단일 직급으로 통합한 것이 개편안의 골자다. 기존 대기업들 중에서도 임원 직급을 2~3단계로 축소한 사례는 있었지만 사장급 이하 임원들을 ‘단일 직급’으로 통합한 것은 CJ가 한국에서 최초다.

CJ의 이와 같은 결정 뒤에는 연공서열·직급 위주로 운영되는 기존 제도로는 우수 인재들의 역량을 끌어내기 어렵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CJ 직원들은 뛰어난 성과가 바탕이 된다면 연차 등에 상관없이 ‘경영리더’로 승진할 수 있다. 단일 직급인 ‘경영리더’들의 처우와 보상과 직책 또한 철저하게 ‘역할과 성과’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성과를 내고 맡은 업무 범위가 넓은 임원일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더 빨리 주요 보직에 오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체류 연한에 관계없이 부문장이나 최고경영자(CEO)로 조기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역량 있는 인재의 조기 발탁 및 경영자 육성 시스템이 구축되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은 지난 1월 연공제 직급을 전면 폐지했다. 대리·과장·부장과 같은 직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승진을 위한 체류 연한이나 연차 개념이 사라지면서 역량을 갖춘 인재라면 10년 내 ‘스타 크리에이터’나 ‘경영리더(임원)’ 등으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직제 개편에 맞춰 업무 범위 또한 달라졌다. 기존 정형화된 팀 단위의 업무 범위를 넘어 프로젝트 단위의 협력적 업무 수행이 확대된다. 중요한 것은 직급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프로젝트를 발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는 ‘최적임자’가 리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일반적으로는 프로젝트를 발의한 이들이 그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만큼 리더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젝트 리더들은 프로젝트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멤버들을 모아 팀을 꾸리는 것을 포함해 프로젝트 전반을 이끌어 가게 된다.

CJ ENM은 이와 같은 ‘프로젝트 중심’의 일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 업무 부서를 넘어 조직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업무에 도전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리더’로서의 역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대가 크다.

CJ ENM에 앞서 CJ제일제당·CJ대한통운·CJ CGV·CJ푸드빌 등도 기존 7단계의 직급 체계를 3~4단계로 축소했다.
‘공정한 성장 기회’ 중점
이와 같은 CJ의 직급 파괴는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이와 함께 미래 성장의 주역이 될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원하는 ‘공정한 성장 기회’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CJ그룹은 MZ세대 구성원의 비율이 75%로 인적 구성이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다. CJ를 이끌어 가는 인재들의 특성을 반영한 인사 제도와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일하고 싶은 조직’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위해 연공서열에 얽매이기보다 실질적으로 조직 내에서 맡고 있는 ‘역할’과 그에 따른 ‘성과’를 중심으로 모두에게 공정한 성장 기회를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직급 파괴만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자율적인 업무 분위기’ 조성이다. CJ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CJ 직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를 직접 설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업무 시간에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최고의 업무 효율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CJ그룹이 최근 도입한 ‘CJ 워크온(Work On)’이 직원들에게 근무 공간에 대한 선택지를 넓히는 제도라면 근무 시간에 자율성을 확보하는 제도는 ‘선택적 근로 시간 제도’다. CJ주식회사·CJ제일제당 등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직무 특성을 고려해 ‘하루 또는 1주일 단위의 최소 근무 시간’ 원칙만 지키면 요일별로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편성할 수 있는 선택 근무제를 도입했고 현재 그룹 전반으로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CJ ENM 엔터테인먼트부문은 올해부터 매주 금요일 4시간의 오전 업무가 종료되면 일괄적으로 PC가 꺼지고 자율적 외부 활동으로 전환하는 ‘비아이 플러스(Break For Invention Plus)’를 시행 중이다. 사실상 ‘주 4.5일제’를 선언한 것이다.

‘비아이 플러스’ 제도는 금요일 오후만큼 4시간 더 길어진 주말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직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상당수의 직원들이 이 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하며 체력을 증진시키거나 영어 공부와 같은 자기 계발에 쏟는다. 때로는 짧은 여행지를 가거나 콘서트를 관람하며 최신 트렌드를 즐기기도 한다. 최신 문화를 향유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겨 생활의 질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이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휴가 제도도 한층 강화했다. CJ는 이달 초 5년마다 시행했던 ‘창의 휴가’ 제도를 3년, 7년 차로 확대했다. 기존 5년 주기 외에도 3년, 7년을 경과하면 최대 4주간(연차 포함)의 휴가를 통해 역량 개발, 트렌드 경험 등 자기 계발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다. CJ 관계자는 “일과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자기 주도적 창의 개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운영 주기를 단축했다”고 말했다.
“내 커리어는 내가 설계한다”
CJ의 인사 제도는 ‘직원들의 업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율성을 제공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CJ 임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진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성장 경로(career path)’까지 그 폭을 넓혀 주겠다는 것이다. 뭐든 하고 싶어 하고 일을 만들어 하는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하고잡이’ 인재들에게 더 많은 기회의 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다.

CJ그룹이 지난해 11월 도입한 ‘잡 포스팅(Job Posting)’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소속 계열사와 직무에 제한 없이 그룹 내 다양한 사업과 직무에 도전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에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CJ제일제당·CJ대한통운·CJ ENM·CJ올리브영·CJ프레시웨이 등 주요 계열사에서 다양한 직무를 공모했고 실제로 많은 인재들이 이에 도전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이 밖에 CJ는 직급에 관계없이 기회를 제공하는 ‘리더 공모제’도 신설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하고잡이 인재’들에게 다양한 성장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기존의 조직에서 벗어나 신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독립 조직인 CIC(Company In Company)와 사내 벤처를 활성화하고 사업화 성공 시 다양한 보상 제도도 함께 마련한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3월 친환경 바이오 소재 사업을 담당하는 화이트 바이오 CIC를 만든 데 이어 7월에는 건강 사업 CIC를 꾸렸다. 그룹의 미래 성장 엔진인 서스테이너빌리티(Sustainability)와 웰니스(Wellness) 사업 강화를 위한 전담 조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독립성을 확보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과 추진력을 가능하게 해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지난해 말 건강 사업 CIC를 100% 현물 출자 방식으로 분할, ‘CJ 웰케어(Wellcare)’를 출범시켰다. 소비자의 건강한 삶을 위한 ‘웰니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헬스케어 전문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사내 벤처 제도도 활성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이노백(INNO 100)’을 꼽을 수 있다. ‘혁신에 몰입하는 100일’이라는 의미의 ‘INNO 100’은 CJ제일제당이 스타트업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며 미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취지로 지난해 2월 도입됐다. 프로그램에 지원한 직원들은 기존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100일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만 몰입할 수 있다. ‘INNO 100’은 MZ세대인 입사 3~4년 차 직원들의 큰 관심과 호응 속에서 ‘도전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은 지난해 11월 사내 벤처 육성 및 지원 프로젝트 ‘시리즈 A’를 시행하며 젊은 인재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혁신 사업 아이템 육성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사내 벤처로 선정된 팀은 사업 수행 전반에 걸친 자율권과 독립적인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 최종 결과물이 사업화되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사업 성과에 따라 사내 독립 기업(CIC)을 설립하거나 분사까지 검토할 예정이다.

CJ대한통운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내 벤처 아이디어 공모전 ‘다(多)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들로 가득한 젊고 열정 넘치는 MZ세대 임직원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접수된 전체 아이디어 210건 중 72%(151건)가 사원·대리 등 젊은 임직원들이 접수했다.

성공적인 인사 혁신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제도도 개편했다. 개인의 역량과 성과 기여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상시 성과 관리, 다면 피드백 등을 골자로 한 새로운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CJ 관계자는 “구성원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커리어를 설계하며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다양한 기회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피드백과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는 문화 안착 등 미래 성장을 위한 조직 문화 혁신에 지속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역량 있으면 나이·연차 상관없이 리더’…CJ가 쏜 인사 대혁신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