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처럼 시장 예상과 다른 흐름 보이기 시작한 美 중앙은행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올해 3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를 앞두고 ‘역행적 선택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회의 직전까지 시장의 예상은 금리를 0.5%포인트 올리고 경우에 따라 양적 긴축까지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 1월 회의가 시장의 예상과 달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데 이어 이번에도 0.25%포인트 올리는 데 그쳤다.

Fed 기준 충족해야 통화 정책 실시

Fed의 역행적 선택론을 이해하기 위해선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의장이던 벤 버냉키가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후 시장에선 금리 인상이 단행될 수 있다고 예측했지만 2013년 9월 회의에선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일각에선 ‘버냉키 반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출구 전략 등과 같은 통화 정책이 대변화를 모색할 때는 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준을 명확하게 예고하고 지켜야 한다. Fed도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출구 전략을 추진할 때 ‘날짜 혹은 일몰 조항 중심’이나 ‘조건 충족 중심’, ‘경제 지표 중심’ 등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금융 위기 이후 출구 전략 추진 과정을 보면 첫째 기준에 따라 1차 양적 완화는 2010년 3월, 2차 양적 완화는 2011년 6월에 시한이 되면서 종료됐다. 둘째와 셋째 기준은 물가 상승률이 2.5%를 웃돌고 실업률이 6.5%를 밑돌 때였다. 2013년 9월 회의에서 시장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가 나온 것은 두 기준이 모두 충족되지 않아서다.

2013년 9월 Fed 회의를 통해 조건 충족과 경제 지표 중심 기준이 재확인됨에 따라 출구 전략이 재추진되기 위해선 물가와 고용 목표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중 물가 목표는 수요 견인과 비용 면에서 상승 압력이 크게 완화되면서 안정세가 지속돼 출구 전략 추진 시기의 관건은 실업률이 언제 6.5%에 도달할 것인가였다.

물가와 실업률의 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이 금융 위기 이전 10년 동안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음(-)의 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금융 위기 이후에는 양(+)의 관계로 변했다. Fed가 양적 완화 등과 같은 강력한 통화 완화 정책을 실시해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에 나섰음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Fed는 내부적으로 출구 전략 추진의 관건이 될 실업률 등 고용 지표 개선 여부를 파악하는 데 ‘베버리지 곡선’을 중요시한다. 이 곡선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호전될 때 기업의 구직 활동이 증가해 실업률이 하락하는 점에 착안해 구인율과 실업률이 음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도식화한 이론이다.

2011년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페터 다이아몬드 교수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위기 이전에 우하향하던 베버리지 곡선은 위기 이후 우상향해 미국 노동 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금융 위기를 거치며 미국 기업들은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경제 성장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면 고용을 늘리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점에서다.

당시 실업률 개선 추세가 이어진다는 가정 아래 Fed가 출구 전략 추진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실업률 6.5%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5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추정됐다. 통화 정책 추진 후 효과를 보기까지 걸리는 시차가 9∼12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2013년 9월 Fed 회의에서 출구 전략 추진을 연기했던 결정은 옳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급할수록 한 걸음 쉰다” Fed의 출구전략 ‘역행적 선택론’[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분석]
역행적 선택으로 2년 넘게 미뤄진 금리 인상

2013년 9월 Fed 회의에서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온 것을 계기로 역행적 선택론이 부각됐다. 이 이론은 경제 활동에 필요한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한 정보 경제학의 한 부류다.

전통적으로 Fed는 통화 정책을 결정할 때 월가를 비롯한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특히 앨런 그린스펀 Fed 전 의장은 모호한 ‘그린스펀 화법’으로 시장과의 소통을 잘해 온 것으로 평가됐고 궁극적으로 이 화법으로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13년 Fed 설립 이후 물가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목표를 잘 수행한 의장일수록 시장의 예상을 그대로 따르는 순응적 선택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하지만 2013년 9월처럼 시장이 Fed의 의중을 잘못 읽거나 속내를 읽었다고 해도 과도하게 해석하면 예상과 다른 역행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시간이 지나며 많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1월 회의에서 재확인된 것처럼 Fed가 금리 인상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기 어려운 시점일수록 정책 추진 여건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차원에서 역행적 선택을 활용한다.

역행적 선택으로 2013년 9월의 다음 회의인 12월 출구 전략이 추진될 것으로 시장에서는 확실시됐다. 9월 Fed 회의에서 버냉키 전 의장이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할 뜻을 우회적으로 시사해서다. 버냉키 전 의장이 유임됐다면 출구 전략은 12월 단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닛 옐런이 차기 의장에 내정됨에 따라 새로운 의장의 임기가 시작되는 2014년 3월 이후로 출구 전략 결정 시기가 넘어갔다. 버냉키 전 의장으로선 Fed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출구 전략을 결정할 수 없었다.

단, 옐런 전 의장 역시 취임 직후 출구 전략을 실시할 수 없었다. 실업률 등 미국 경기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2014 회계연도를 앞두고 Fed가 제기한 재정 위험 등으로 경기가 악화되면서 금리 인상은 2015년 12월에야 이뤄졌다. 2013년 9월에 예상됐던 금리 인상이 2년 넘게 미뤄진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내린 금리와 풀린 돈을 정상화하는 출구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역행적 선택론이 재부각된 것도 위와 같다. 급할수록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인플레이션 해결을 위해 Fed가 시장의 예상과 반대로 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경기 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선 역행적 선택이 불가피하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