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과 국가 안보 연계성 등 상황 급변
기술 탈취에 맞선 외국인 투자 심사 독립 법안 필요

[경제 돋보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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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중국 투자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과거 뭉칫돈을 들고 전 세계의 부동산에 투자하던 중국인 또는 중국 기업이 잠재력 있는 기술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돈뭉치를 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캐나다·독일·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들이 갑작스러운 중국 투자자들의 표적 변화의 뒤에 중국 정부가 있고 그 목적이 첨단 산업에서의 기술력 확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에 미국을 시작으로 많은 선진국이 외국인 투자의 국가 안보 위협 및 기술 탈취와 관련된 심사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외국인투자위험조사 현대화법(FIRRMA)’을 제정하고 기존의 대통령 직속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심사 대상을 더욱 확대하고 권한을 보다 강화했다. 원래 CFIUS의 심사 대상은 경영권 인수와 관련된 투자에만 한정돼 있었지만 FIRRMA 법안을 통해 군사 시설이나 국가 안보 관련 시설에 인접한 부동산 투자, 핵심 기반 시설, 핵심 기술, 미국 국민의 개인 정보 수집 및 관리와 관련된 기업에 대한 투자 등에선 경영권을 인수하지 않아도 심사 대상이 된다. 또한 과거에는 CFIUS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투자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었지만 이 법안에서는 CFIUS가 심사 단계에서 직접 투자 거래를 중단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됐다.

이 법안이 제정되기 이전인 2016년 중국의 안방보험집단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호텔 델 코로나도’를 인수하려고 하자 미국의 재무부와 CFIUS가 이 호텔이 미 해군 기지의 인접한 지역에 있다며 국가 안보 측면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결국 중국 기업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이후 유사한 사례와 관련해 우려를 모아 미국은 FIRRMA 법안을 제정했다. 2020년에도 중국 기업이 미국의 불임 클리닉을 인수하려고 하자 미국 국민의 생물학적 정보와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이 인수 건을 승인하지 않았다.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 우방 국가들에도 중국 투자의 위험성을 알리고 미국과 유사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2019년 ‘EU 외국인직접투자(FDI) 규정’을 제정하고 EU 회원국의 FDI 심사 제도를 강화했다. EU는 심사 제도 강화와 함께 적용 대상 분야 역시 확대했는데, 국가 안보 및 의료 관련 분야와 함께 2021년에는 인공지능·로봇공학·반도체·생명공학·양자기술 등 최첨단 기술 분야를 추가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에서의 외국인 투자 관련 핵심 법안은 1998년 제정된 외국인투자촉진법이다. 이는 당시 1997년 외환 위기를 겪고 나서 외환 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법적 근거였다. 하지만 이제 외국인 투자를 통한 기술 유출과 국가 안보와의 연계성 등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 유치에 초점을 둔 이 법안을 개정하거나 국가 안보 위협이나 기술 탈취에 맞서 외국인 투자를 심사할 독립 법안이 필요하다.

중국계 사모펀드가 한국 반도체 기업인 ‘매그나칩’을 인수하려다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것 역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매그나칩은 미국 증시에도 상장돼 있어 미국 CFIUS의 심사 대상이었고 CFIUS는 매그나칩이 보유한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한국 역시 다른 미국 우방 국가처럼 외국인 투자 관련 심사 제도를 강화할 것을 미국으로부터 요청받았고 한국 정부 역시 이와 관련한 제도적 틀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틀을 바탕으로 우리가 발전시켜 온 기술을 보호하고 만에 하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외국인 투자 심사 강화할 때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