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이름 상표, 어디까지 인정 받을까
보통명사화되면 권리는 인정 못 받아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한 대형마트 과자 코너에 오리온, 롯데제과의 초코파이 제품이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 과자 코너에 오리온, 롯데제과의 초코파이 제품이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초코파이’, ‘보톡스’, ‘홍초’, ‘빼빼로’.

어떤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면 그 이름이 전체 상품을 대표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은 상표로 인정받는 반면 다른 것들은 보통명사로 인식돼 처음 만든 회사뿐만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보톡스는 맞고 초코파이는 아니다

상표가 ‘보통 명칭화’되면 원래는 상표였다가 이후 식별력을 상실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초코파이다. 초코파이의 원조는 오리온이다. 오리온은 1974년 원형으로 된 빵에 마시멜로를 끼워 넣고 초콜릿 코팅을 입힌 빵을 처음 만들어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리온은 1976년 ‘오리온 초코파이’를 상표 등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모두 초코파이를 상품명으로 한 카피 제품을 내놓았다. 오리온 측은 특히 1979년 롯데 초코파이 상표 등록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오리온은 1997년 뒤늦게 롯데의 상표 등록을 무효화해 달라며 특허 심판과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이미 그 사이에 초코파이가 보통명사화되면서 오리온은 소송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현행법상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통명사는 상표로 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봉고차가 있다. 봉고차는 현재 사전에 ‘10명 안팎이 타는 작은 승합차’로 등록돼 있지만 시초는 1980년대 기아자동차가 출시한 ‘봉고 코치’라는 승합차였다.

상표명이 보통명사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상표 등록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바로 에어프라이어다. 에어프라이어는 필립스가 만든 제품의 상표였다. 2011년 출시 이후 큰 사랑을 받았지만 2012년 상표 출원에는 실패했다.

당시 특허심판원은 “에어프라이어라는 명칭 자체가 기름 없이 공기를 이용해 튀기는 튀김기로 인식되며 이미 다수의 경쟁 업체에서 비슷한 기능의 튀김기에 이 명칭을 붙여 제품을 만들고 있어 독점적인 상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에어프라이어는 특정 업체의 제품이 아니라 가전제품의 종류를 의미하는 명사가 됐다.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의약품인 ‘보톡스’다. 우리는 주름을 펴 주는 의약품을 흔히 보톡스라고 칭하지만 이는 미국 제약사 엘러간의 상표다.

보톨리눔 톡신을 주성분으로 하는 모든 의약품을 보톡스로 부르는 관용이 생기자 엘러간 측은 다른 상품을 쓰면서 보톡스라고 홍보하는 병원에 대해 경고장을 발송하는 등 상표 보호를 위해 힘썼다. 결국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20년 7월 한국 브랜드 ‘보노톡스’의 상표 등록 무효 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다.
대상그룹의 ‘마시는 홍초’와 애경산업의 세제 ‘트리오 홍초’. 사진=청정원·애경산업 제공
대상그룹의 ‘마시는 홍초’와 애경산업의 세제 ‘트리오 홍초’. 사진=청정원·애경산업 제공
‘마시는 홍초’와 홍초 세제는 다른 상표

그렇다면 이름이 같지만 상품의 종류가 다르다면 어떨까. 가장 최근 판례는 대상그룹의 ‘마시는 홍초’와 애경산업의 세제 ‘트리오 홍초’의 상표권 다툼이다. 2022년 2월 18일 특허법원 제2부는 대상이 애경산업을 상대로 낸 상표 등록 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사건은 애경산업이 2019년 세제 제품 ‘트리오 홍초’를 상표 등록하며 시작됐다. 이에 ‘마시는 홍초’의 상표를 가지고 있는 대상이 상표를 무효화해 달라며 소송을 낸 것이다.

대상은 홍초라는 브랜드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만큼 애경산업이 제품에 홍초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먼저 출시된 제품의 명성에 편승해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비자들이 식초 음료가 세제의 재료로 사용됐다고 오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대상 측은 “홍초는 사전에 없는 단어였지만 2004년 대상이 이 단어를 만들어 상표를 출원 등록했다”며 홍초에 대한 원조성을 강조했다. 재판부 역시 대상의 원조성에 대해서는 인정했지만 음료와 세제 제품의 상표를 혼동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2004년 사전에 없는 단어를 만들어 상표를 등록했고 2005년 출시한 뒤로는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면서도 “식초 음료와 세제는 전혀 다른 상품이고 대체로 ‘홍초’는 업계에서 붉은색 식초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쓰여 왔기 때문에 다르다”고 밝혔다.

또한 “대상의 상품은 ‘청정원 마시는’이라는 문자와 결합된 형태로 쓰였다”고도 지적했다. 즉 ‘마시는 홍초’는 대상의 상표이지만 홍초 자체를 상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소비자들이 ‘트리오 홍초’의 ‘홍초’를 ‘붉은색 식초’가 아닌 대상 청정원의 식초 음료 제품으로 인식해 상품의 품질을 오인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특허심판원의 심결은 적법하고 원고의 청구에 이유가 없어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빼빼로’라는 명칭 자체에 상표를 가지고 있는 롯데제과는 다른 결과를 얻었다. 2005년 A 씨는 빼빼로라는 이름으로 문구류 상표를 등록했지만 결국 소송을 통해 무효화됐다.

당시 법원은 “1983년 출시한 빼빼로는 그 자체로 주지 상표로 인정된다”며 “또한 유명한 상표에 편승해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2015년 ‘빼빼로 주사’ 상표 등록에 대해서도 롯데가 승소했다.


[돋보기]
‘보통명사’류 상표도 ‘인지도’ 인정되면 상표 등록 가능

‘해운대’, ‘암소갈비’는 주변에서 흔히 쓰는 단어다. 그렇다면 이들 단어를 조합한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상표 등록 출원은 가능할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상표 등록을 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상표 등록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결정이 나왔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은 상호를 상표로 등록하려고 했지만 2020년 9월 특허청이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이 특정 장소와 파는 상품을 결합해 놓은 성질 표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허심판원은 “‘해운대’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바닷가를 의미하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고 ‘암소갈비집’은 암소를 재료로 사용하는 갈비집을 뜻한다”며 “해운대에 있는 암소갈비집을 단순히 지칭하는 용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특허청의 거절 결정에 대해 불복심판을 제기했다. 상표법 33조 2항의 단순히 상품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친 상표라도 특정인의 상품을 식별할 수 있게 된 경우는 상표 등록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근거였다. 업체 측은 자신들이 식별할 수 있는 상표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세한 증거 자료를 수집했다.

네이버와 구글 등에서 전국 유명 갈빗집에 대한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해운대암소갈비집이 각각 2위,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증거 자료에 포함했다.

서울과 부산 지역 소비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62.4%가 해당 상표를 특정 업소의 브랜드 명칭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결과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생전 방문해 ‘화기만당(和氣滿堂 : 화목한 기운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이라는 친필 글씨를 써줬던 역사적 사실도 강조했다.

결국 특허심판원은 2021년 12월 11일 해운대암소갈비집 측의 논리를 받아들여 상표 등록 거절 결정을 취소하는 심결을 내렸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