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아파트 가격 ‘버블 경제’ 이전 수준 회복…글로벌 투자자들 일본 부동산에 큰 관심

[글로벌 현장]
일본 도쿄 긴자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 (사진=연합뉴스)
일본 도쿄 긴자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서울의 70% 수준인 도쿄의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투자가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도쿄 아파트의 평균 가격과 평당 가격은 모두 1990년 버블(거품) 경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미 많이 오른 도쿄의 아파트 값이 더 오를지도 관심거리다. 도쿄 아파트 투자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도쿄만 주변, 8년 새 2배 뛰어

부동산 시장 분석 전문 회사 도쿄간테이는 지난 20년간 도쿄 도심(도쿄 23구 지역)의 역세권 맨션 가격(3LDK 신축 기준) 추이를 분석했다.

도쿄만 주변 지역 타워 맨션(20층 이상 고층 아파트)이 몰려 있는 도요스는 2000년 3000만 엔(약 3억80만원)이었던 가격이 2012년 4000만 엔, 2020년 8000만 엔 이상으로 올랐다. 8년 만에 2배 이상 뛰었다.

고급 주택가인 메구로도 2000년 5000만 엔이었던 아파트 값이 2020년 1억 엔 이상으로 2배 이상 올랐다. 도심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외곽인 기타센주는 20년 동안 3000만 엔에서 6000만 엔 이상으로, 나카노도 5000만 엔에서 8000만 엔 이상으로 각각 3000만 엔 이상씩 가격이 올랐다. 대체로 고급 주택가나 타워 맨션이 몰려 있는 지역의 집값 상승률이 높았다.

2배 이상 오른 도쿄 아파트 가격의 향방을 가늠하려면 수요 분석이 필수다. 그러자면 최대 수요자인 일본인의 부동산에 대한 인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부동산을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투자 대상으로 보는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자동차처럼 부동산도 구입한 시점부터 감가상각이 일어나 점점 가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집은 월세를 내고 빌려 살거나 아니면 직장까지 지하철로 1시간 거리인 교외에 단독 주택을 지어 평생 끼고 산다는 마인드가 뿌리 깊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일본인들이 부동산을 투자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통념은 1990년대 초 거품 경제 붕괴 이후 부동산 시장 폭락의 고통이 뼈에 사무치도록 깊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도쿄의 아파트 값이 버블 경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버블 경제가 한창일 때의 부동산 가격과는 까마득한 차이가 있다.

일본인들의 주거 패턴이 월세 아니면 교외의 자가인 것은 총부채상환비율(DTI)을 5배 이내, 즉 주택 담보 대출을 연봉의 5배 이내로 받는다는 공식과 관계가 깊다.

도쿄 도민들의 평균 연간 소득이 596만 엔인 만큼 5배인 3000만 엔으로 살 수 있는 집을 고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쿄 도심의 아파트 값은 일본 직장인의 연봉을 19년 치 모아야 살 수 있을 만큼 올랐다. 1억 엔이 넘는 도심 타워 맨션은 다른 세상 얘기나 다름없다.

보통의 일본인들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교외나 수도권의 부동산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다.

하지만 도쿄 도심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값이 버블 이전 수준을 회복한 데서 보듯이 현재 일본의 부동산 시장은 일본인의 오랜 통념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은 차와 같아 구입과 동시에 값이 떨어진다는 생각과 달리 중고 아파트의 가격도 오르고 있다.

부동산 정보기술(IT) 기업 하우스마트에 따르면 도요스·하루미·가치도키·시나가와 등 도쿄만 주변 지역의 타워 맨션 가격은 2019년 12월부터 2년 새 평균 20% 올랐다. 이 지역 타워 맨션의 대부분은 중고 가격이 신축 당시의 분양가를 웃돈다.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여기지 않으니 한국·중국·동남아시아 등 해외 투자가들이 재미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시진핑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강력하게 규제하면서 중국 투자가들의 매입이 크게 늘었다.

일본 정부의 입국 규제로 일본을 방문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중국 투자가들은 5000만 엔대의 물건은 보지고 않고 매입한다는 전언이다.

평균 연봉 1400만 엔 ‘파워 커플’ 가세

최근에는 ‘파워 커플’이라는 세대가 타워 맨션의 주 수요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파워 커플은 주로 IT 기업에 다니는 20~30대 맞벌이 세대를 말한다. IT 기업에 다니다 보니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소득도 상대적으로 높다.

버블 붕괴의 충격과 공포를 뼛속 깊이 간직한 부모 세대와 달리 이들은 부동산 폭락의 쓰린 추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매일 1시간 넘게 만원 지하철에서 시달리면서 출퇴근하느니 비싸도 도심에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또 ‘매월 300만~400만원씩 월세를 내느니 집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파워 커플 앞에서는 ‘주택 담보 대출은 연봉의 5배 이내로’라는 원칙도 무력해진다. 부모 세대와 달리 이들은 맞벌이를 하는 이들의 연간 수입은 1400만 엔에 달한다. 홑벌이를 하는 보통 일본 직장인의 2~3배다. 도쿄 아파트 값이 일본 직장인 연봉의 19배까지 올랐어도 이들에게는 연봉의 10배 미만이다.

10년째 이어지는 일본의 초저금리도 파워 커플들이 타워 맨션을 사들이는 이유다. 1990년 일본의 주택 담보 대출 금리는 평균 8%를 넘었지만 현재는 1%를 밑돈다. 주택 담보 대출로 같은 금액을 빌렸다면 현재의 월 변제 금액은 1990년의 2분의 1~3분의 1 수준이다.

일본 최대 인재·부동산 정보 전문 회사인 리크루트그룹에 따르면 2020년 수도권 맨션 구입자 가운데 맞벌이 가구의 비율은 59.9%였다. 2001년만 해도 맞벌이 가구의 비율은 35.4%였다.

수요는 늘어나는 데 공급은 원활하지 않다. 지난해 수도권 신축 맨션 공급 수는 3만2500가구로 공급이 가장 많았던 2000년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입지가 좋은 지역은 한정돼 있는데 최대한 공급을 늘리려다 보니 건설사들도 타워 맨션을 주로 짓는다. 수도권 신축 아파트 4가구 가운데 1가구가 타워 맨션이라는 통계도 있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2월 중순 발표한 ‘주요 25개국 국제 주택 가격’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2021년 3분기까지 일본의 집값은 89.82에서 91.26으로 2% 올랐다(2005년 가격을 100으로 봄).

한국의 주택 가격은 150.95에서 180.96으로 20% 상승했다. 일본보다 10배가 더 올랐다. 캐나다가 38%, 미국이 21% 오르는 등 25개국의 평균 상승률이 17%에 달했다. 일본은 스페인(1%)과 함께 세계에서 주택 가격이 가장 오르지 않은 나라였다.

최근 골드만삭스·블랙록·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글로벌 투자 자금이 일본 부동산 시장에 몰려들고 있다. 글로벌 큰손들은 한결같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싼값’을 일본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로 내세운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