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공사 대금 합계액이 1500만원 이상이면 형사 처분 대상”이라고 판결해 주목

[법으로 읽는 부동산]
서울의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의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업을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종별로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 제9조 1항 단서는 건설업 등록 제도의 예외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미한 건설 공사를 업으로 하려는 경우에는 등록하지 않고 건설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이 법 시행령 제8조 제1항은 ‘경미한 건설 공사’ 중 하나로 공사 예정 금액이 1500만원 미만인 전문 건설 공사를 정하면서 동일한 공사를 2개 이상의 계약으로 분할해 발주하면 각각의 공사 예정 금액을 합산한 금액을 공사 예정 금액으로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처럼 1500만원 미만의 공사는 무등록 건설업자도 적법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1500만원 이상의 공사이면서도 형식적으로는 1500만원 미만으로 별개의 수개 공사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공사를 수주함과 동시에 건설산업기본법상 형사 처분을 면하고자 하는 모습이 오랜 기간 중소 건설업계에서 성행해 왔다. 최근 이러한 업계의 관행에 제동을 건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돼 눈길을 끈다.‘공사의 동일성’ 판단이 관건A는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고 2015년 4월 거제시 B아파트 자치관리회장과 아파트 외벽·옥상에 대한 2895만원 상당의 1차 방수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공사 대금 각 965만원인 3개의 계약으로 나눠 계약서를 작성했다. A는 같은 해 5월 B아파트와 5040만원 상당의 2차 방수 공사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사 대금 350만~660만원인 10개의 계약으로 나눠 계약서를 작성했다. 총 10개 동인 B아파트는 각 동이 그 사이에 차량 통행이 가능한 통행로와 주차장이 있는 등 서로 떨어져 있다.

1심 법원은 “피고인 A와 B아파트 자치관리회장은 건설산업기본법이 정한 건설업 등록 없이 건설업을 영위할 수 있는 경미한 건설 공사에 해당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계약서를 분리 작성한 것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며 A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하나의 동에 대한 1, 2차 방수 공사 모두를 ‘동일한 공사’로 평가할 여지는 있으나 전체 동에 대한 1차 방수 공사 또는 전체 동에 대한 2차 방수 공사 또는 전체 동에 대한 1, 2차 방수 공사를 ‘동일한 공사’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이에 대법원은 최근 판결에서 “건설업 등록 제도의 취지와 관련 규정 내용 등에 비춰볼 때 분할 발주된 수개의 공사가 ‘동일한 공사’로서 공사 예정 금액 합산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각 공사 계약의 당사자, 공사 목적물, 공사 기간, 공사 내용과 방법, 수개의 계약으로 분할해 체결한 경위 등 제반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각 공사 계약이 하나의 계약으로서 각 공사 사이에 동일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1~2차 공사는 모두 B아파트 전체에 대한 옥상·외벽 균열 보수 및 방수 공사로서 공사 대상이나 시공 방법 등에 차이가 없고 공사 대금도 분할 발주된 각 개별 계약을 구분하지 않은 채 전체 공사의 진행도에 따라 수시로 지급됐다”며 “A는 2차 공사가 완료될 무렵 하자 보수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 역시 각 개별 계약을 구분하지 않은 채 전체 보수 공사에 대해 4회의 하자 보수 공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대법원은 “A가 1차 공사는 3개의 계약으로, 2차 공사는 10개의 계약으로 분할해 공사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질적으로 동일한 공사에 해당한다”며 “A가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정한 건설업 등록 제도를 회피하거나 면탈할 의도에서 동일한 공사를 다수의 계약으로 분할해 수주한 것으로 볼 여지도 커 1~2차 공사는 모두 공사 예정 금액이 1500만원을 초과하는 전문 건설 공사로서 건설산업기본법 제9조 1항 단서에서 정한 ‘경미한 공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A는 유죄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받았다.

건설산업기본법에서 건설업 등록 제도의 취지는 이렇다. 미등록자 내지 부정 등록자를 처벌하는 것은 건설 공사의 적정한 시공과 건설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무등록 업자에 의한 부실 시공을 예방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해당 법에서 경미한 공사를 업으로 할 때 등록 의무를 면제하는 이유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 재산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경미한 건설 공사만을 업으로 하는 경우에 관해서까지 법으로 엄격한 자격 요건을 규정해 관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실 시공에 따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 중 일환으로 건설산업기본법은 일정 금액 이상의 공사 계약 체결시 등록 건설업자에게만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경험에 기초한 이런 조항은 반드시 준수돼야 한다. 우회적으로 위 조항을 무력화하려는 일부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대법원의 판결은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여러 공사에 대한 ‘공사의 동일성’ 판단을 위한 법원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전에 수개의 공사 계약으로 쪼개 계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는 건설업자에 대해서는 건설업 등록이 있는지, 건설산업기본법령 위반의 의도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조주영 법무법인 신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