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57조’ 관리…‘디지털 · 녹색 금융 경쟁력’이 새 선정 키포인트로
[비즈니스 포커스] 한 해 50조원 이상을 관리하는 서울시 금고지기 자리를 놓고 한국의 주요 시중 은행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1금고를 관리하는 신한은행은 기관 영업 베테랑들을 전면 배치하며 강한 수성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100년 이상 금고지기 자리를 독점해 오다 4년 전 신한은행에 내줬던 우리은행도 1금고 유치팀을 구성하며 물밑 작업을 진행 중이다. 리딩 뱅크인 KB국민은행이 시금고(市金庫) 진출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뜻밖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들 모두 추가된 평가 항목과 바뀐 배점 기준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며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예대 마진 기본에 기관 영업에서 유리해져
시금고는 시청과 계약하고 시청에서 부과하는 세금 등을 도맡아 수납하고 관리하는 은행이다. 이번에 입찰을 진행하는 서울시금고의 한 해 운용 규모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금고 중 최대다. 올해 기준 1·2금고 합쳐 약 57조원 규모다. 통상 5조원 이상의 평균 잔액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된다. 5조원이라는 평균 잔액은 은행들이 예대 마진을 관리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한다.
또 시금고를 맡게 되면 서울시의 세정 파트너로서의 대외 신인도와 신뢰성이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 시금고 운영뿐만 아니라 향후 연금 사업 유치 등 기관 영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금고 운영권 확보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신용도가 높은 공무원 등 알짜 고객도 추가로 유치할 수 있고 인프라 구축 등 서울시 추진 사업에 가장 먼저 참여 기회를 얻을 가능성도 높다.
물론 출연금과 전산망 구축에 큰 비용이 든다. 신한은행은 3000억원이 넘는 출연금을 베팅해 은행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앞서 나열했듯이 이점이 더 많다.
이 때문에 유력 금고지기 후보로 거론되는 신한·우리·KB국민은행 등 각 은행의 수장들은 서울시금고 업무 선정을 올해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이원덕 우리은행장과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올해 지휘봉을 잡았다. 이원덕 행장은 완전 민영화된 우리은행이 ‘옛 위상’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서울시 금고지기 자리를 탈환하면 눈에 띄는 첫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근 행장은 KB국민은행을 확고부동한 리딩 뱅크로서의 입지를 굳혀야 하는 특명이 있다. 이를 위해 약점이었던 기관 영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2019년 취임해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진옥동 신한은행장도 서울시금고 입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4년 전인 2018년 신한은행은 삼수 끝에 1금고의 운영권을 따냈다. 당시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은 프레젠테이션(PT)을 위해 동남아 출장 중 한국에 돌아와 몇 시간 머무른 뒤 곧장 현지로 떠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신한은행은 지난 4년간 1000억원을 투자해 서울시금고의 정보기술(IT) 전산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전임 수장이 씨앗을 뿌렸다면 진 행장은 열매를 수확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1금고 지키려는 신한, 반전 노리는 우리·KB
서울시금고는 1915년 경성부금고 시절부터 2018년까지 104년간 우리은행이 독점했다. 하지만 2018년 복수금고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신한은행은 압도적인 출연금을 제시며 2022년까지 1금고(일반·특별회계) 운영 은행의 자리를 꿰찼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2금고(기금)를 맡았다. 올해 기준 서울시 일반·특별회계 규모는 약 53조원, 기금 규모는 약 4조원이다.
지난 선정 과정에서 2금고로 밀렸지만 우리은행의 100년 노하우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또 우리은행은 25개 서울시 자치구 중 구금고 점유율 72%를 기록하고 있다. 시금고에 선정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은 조직 개편을 통해 서울시금고 쟁탈전을 비롯한 기관 영업에 힘을 싣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7년 말 기관고객부를 그룹 체제로 격상했다. 최근엔 기관 영업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로 라인업을 꾸렸다. 우선 지난해 연말 임원 인사에서 서울시 1금고 선정 당시 주도적 역할을 했던 박성현 신한금융지주 지속가능경영 부문장(CSSO)을 기관그룹 부행장에 선임했다. 박 부행장은 대관 업무의 이해도가 높아 지자체 금고 등 기관 영업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호대 기관영업3본부장 역시 시금고를 따낸 주역 중 한 명이다.
리테일 영업의 강자인 KB국민은행도 2017년 말 기관 영업을 영업그룹 내 기관영업본부로 확대했다. 2019년엔 아예 독립된 본부로 분리했고 2020년 기관고객그룹으로 승격시켰다. 당시 경기도·광주광역시·부산광역시 등의 2금고의 운영권을 따내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서울시는 4월 5일부터 11일까지 1금고 지정 제안서를 접수하고 이후 금고 지정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입찰 참여 시중 은행들을 대상으로 PT를 진행한다. 금고지정 심의위원회는 서울시 조례에 따라 금융·전산 분야 전문가 등 민간 전문가와 시의원 등으로 구성된다. 인원은 9~12명 정도다. 지난번 입찰 때는 총 12명이었다. 서울시는 4월 안에 최종 선정을 마치고 5월 금고 업무 취급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에 선정되는 은행은 2023년부터 2026년까지 4년간 서울시금고를 맡게 된다.
이번 입찰에선 예금·대출 금리, 금고 관리 업무 수행 능력, 전산망 구축 능력 등에 대한 평가 비율이 높아졌다. 또 시민의 이용 편의성 세부 항목에 무인 점포 수와 관내 현금입출금기(ATM) 설치 대수가 평가 항목에 추가됐다. 비대면·디지털 금융 접근성 지표를 반영한 것이다. ATM 기기 수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많이 보유하고 있다. 녹색 금융 실적에 대한 평가도 신설됐다. 녹색 금융 이행 실적은 시금고 조례가 개정·시행된 2021년 5월 20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ATM 설치 대수는 2021년 12월 31일이 기준이다.
반면 외부 평가 기관의 신용도와 재무 구조 안정성, 서울시와 협력 사업(출연금 등)의 비율은 낮아졌다. 특히 출연금은 지난 선정 과정에서 과잉 경쟁 논란이 일면서 점수가 4점에서 2점으로 축소됐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 간의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안정성만 고려하면 금고지기 자리를 놓칠 수 있고 출연금과 예금·대출 금리를 너무 과하게 제시하면 실리는 취하지 못한 채 은행의 출혈만 심해질 수 있다”며 “특히 코로나19 사태와 국내외 상황으로 중·장기 금리의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금리 인상만 생각하고 예금 금리를 높게 제시하다가 금리가 떨어지면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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