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구글의 ‘어덜트 슈퍼바이저’ 역할을 했던 에릭 슈미트(가운데) 전 CEO와 두 
명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오른쪽).  사진=구글
구글의 ‘어덜트 슈퍼바이저’ 역할을 했던 에릭 슈미트(가운데) 전 CEO와 두 명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오른쪽). 사진=구글
2001년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가 기자와 마주 앉았다. 당시 구글은 에릭 슈미트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20대인 두 창업자가 46세의 전문 경영인을 구글로 불러들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브린이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부모 역할인 거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부모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혁신을 좇는 벤처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스타트업의 성지’ 실리콘밸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 역시 벤처기업이 성장할수록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는 창업자와 관련한 것이다. 벤처기업에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벤처 마인드’는 기업을 성장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업자’가 기업을 이끌어 가는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하고 그만큼 경영을 좌지우지할 힘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어느 단계까지 성장하게 되면 외부와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진다. 투자자들은 물론 규제와 관련한 정부 관계자, 때로는 소비자들까지 소통의 대상이다.

2017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창업자의 권력이 너무 세질 때’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도 한때는 벤처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할 때가 되면 창업자가 아닌 전문 경영인을 대표로 선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험이 적고 기술만 아는 창업자보다 전문 경영인이 주주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이와 같은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창업자가 기업 내에서 어느 정도 경영과 관련한 권한을 유지하고 있어야 ‘벤처 마인드’를 유지할 수 있고 이는 실제 기업의 수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바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점이 있다. 창업자의 권력이 지나치게 세지면 창업자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2017년 당시 ‘최고의 기업 가치’를 자랑했지만 트래비스 캘러닉 CEO의 성추문 스캔들이 불거지며 최대 위기를 맞은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우버에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조폭 리더십’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과 창업자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 줄 ‘어른’의 존재다. 2017년 위기를 겪은 우버와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한 구글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글 내에서 CEO로서 슈미트의 역할은 일반적인 CEO와 달랐다. 슈미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구글에서 내 역할은 두 창업자인 브린과 페이지의 의견을 듣고 간섭하는 데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CEO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회사의 경영과 관련한 무게 추는 여전히 두 창업자에게 쏠려 있다. 다만 엔지니어 출신으로 모든 문제를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두 사람의 아이디어 가운데 어느 것이 실현 가능하고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간섭’함으로써 구글이 벤처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맡은 것이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벤처기업에 필요한 ‘어른’은 세상의 시선만 대변해 줄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창업자들의 시선과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세상을 향해 ‘이들의 아이디어’를 전파하고 설득하는 역할 또한 이 ‘어른’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다.

실제 구글의 두 창업자가 슈미트를 CEO로 결정할 당시 40대인 슈미트에게 20대의 문화인 ‘버닝맨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버닝맨은 미국 네바다 주 사막에서 수만 명이 모여 벌이는 축제로,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슈미트가 어른이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얼마나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본 것이다. 슈미트는 2011년 페이지에게 CEO 자리를 물려준 뒤에도 2017년까지 이사회 의장으로 구글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구글에서 슈미트 외에 어른의 역할을 한 인물이 또 있다. 무명의 미식 축구 코치 출신인 빌 캠벨이다. 그는 구글의 슈미트와 두 창업자들 외에도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 전설들의 스승 역할을 도맡으며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로 알려져 있다. 미식 축구 코치인 그는 빅테크 기업의 CEO들에게 ‘팀워크’와 ‘신뢰’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했다고 한다. 페이지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경영상 중요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마다 캠벨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떠올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