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작가의 자전적 경험, 12년 만에 완성

[서평]
병원에서 만난 그 소녀가 궁금해졌다
방학
최설 지음 | 마시멜로 | 1만3800원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던 날 건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아빠가 살고 있는 병원에 간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듣는 약이 하나도 없는 병. 낙심한 건수는 마치 방학 숙제를 하듯 하루하루 자신과 같은 병으로 죽어간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아빠와 함께 지낸 지 보름쯤 되던 날, 새엄마가 찾아와 죽은 아빠를 데려가면서 건수는 다시 혼자가 됐고 그런 그의 앞에 하루는 상복을 차려입은 여자 강희가 나타난다. 알고 보니 그녀도 자신처럼 이곳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을 잃었고 또 자신처럼 듣는 약이 하나도 없다는 말에 건수는 강희가 자꾸만 궁금해진다.

그러던 중 건수가 병원에 온 지 1년쯤 되던 어느 날,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이 실시된다. 병원에서는 시험 대상자에 들면 신약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건수는 시험 대상자에 든 반면 강희는 들지 못했다. 그러나 혼자 살아남고 싶지 않았던 건수는 간호사 몰래 약을 반으로 쪼개 늦은 밤 성당으로 가 강희에게 내민다. 그리고 날마다 약을 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로 공범이 되길 거부하는데…. 삶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던 소년과 그의 앞에 나타난 소녀. 그들의 끝을 알 수 없는 긴 방학의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건수와 강희, 둘 다 살아남는 방법은 없을까.

소설 속 건수처럼 듣는 약이 하나도 없어 죽기로 돼 있던 저자는 그냥 죽기는 아쉬워 3년 동안 쓰던 단편에서 걸음을 옮겨 이 세상에 책 한 권은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첫 ‘장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이 소설은 2009년 처음 완성된 후 12년이 지나 새롭게 다시 손보며 2022년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소설 ‘방학’의 주인공 건수는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던 날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듣는 약이 하나도 없는 병에 걸려 입원하게 된다. 미처 인생에 대해 채 알지도 못할 어린 나이에 삶과 죽음에 직면하게 된 그는 또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맑고 순수한 모습보다 냉소적이며 삶에 대해 심드렁한 자세로 관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심사위원 김형중 조선대 교수의 평처럼 첫째로는 이 세계가 이제 곧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세계, 즉 이제 곧 자신에게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이 세계가 하찮은 것이어야 죽음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면 바로 건수와 같이 차갑고 비관적인 냉소가 발화한다.

그렇게 삶에 대해 시니컬한 태도로 살아가던 건수에게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녀 강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점차 소녀에게로 향하던 때, 건수에게는 또 하나의 시련이 닥치게 된다. 바로 ‘살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여기서 흔한 답은 물론 ‘죽음을 불사한 사랑’일 것이다. 건수 역시 이 질문에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까.
저자는 ‘방학’을 쓰면서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즉 소설 속 인물들이 진짜 현실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등장인물들이 작가인 본인조차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의도는 문체에 잘 녹아들어 독자들이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그들의 심정과 시련에 공감하면서 점차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결말이 주는 여운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건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리고 운명의 신은 건수와 강희에게 어떤 답을 선사할까.

노민정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