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중심 유연한 노동 문화 확산…기업도 ‘인재확보’ 위해 적극 도입

[비즈니스 포커스]
집무실 왕십리점은 철도하역장을 개조해 높은 천장이 특징이다. 다양한 높이의 의자를 배치해 공간을 디자인했다. (사진=집무실)
집무실 왕십리점은 철도하역장을 개조해 높은 천장이 특징이다. 다양한 높이의 의자를 배치해 공간을 디자인했다. (사진=집무실)
김예지 스파크플러스 매니저는 최근 역삼 본사 대신 공덕역에 있는 스파크플러스의 ‘스플라운지’로 출근하고 있다. 김 매니저의 거주지인 은평구에서 역삼까지 통근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하지만 공덕 스플라운지로 출근하면서 30분으로 단축됐다. 매일 두 시간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김 매니저는 “듀얼 모니터와 콘센트가 부착된 넓은 책상 덕분에 재택근무보다 업무 집중도가 높다”며 “회의실도 따로 마련돼 있어 화상 회의를 할 때도 배경이나 소음 때문에 민망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간 유연근무제·협업·네트워킹에 초점을 맞췄던 공유 오피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점·분산 오피스로 진화하면서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최근에는 개인 고객들의 문의가 늘었다. 재택근무에 어려움을 겪는 워킹맘·대디부터 이동이 잦은 영업 사원, 미팅이 잦은 소규모 기업 경영인들이 공유 오피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스파크플러스의 스플라운지 마들역점은 스플라운지 중 가장 많은 이용자가 오간 지점이다.(사진=스파크플러스)
스파크플러스의 스플라운지 마들역점은 스플라운지 중 가장 많은 이용자가 오간 지점이다.(사진=스파크플러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출근해요”
공유 오피스 업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 맞춰 직주근접성을 갖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스파크플러스의 ‘스플라운지’가 대표적이다.

스플라운지는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스파크플러스의 월간 비즈니스 라운지로, 개인 고객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고객은 본인의 필요에 따라 한 지점만 이용하는 싱글 멤버십과 8곳을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멤버십을 선택하면 된다.

거주지에서 가까운 사무실이라는 모토에 맞게 스플라운지는 공덕역·마들역·영등포구청역·왕십리역 내부에 지점을 열었다. 상업 시설이 주를 이루는 지하철 역사 내에서 흔하지 않은 사무 공간이다. 4월 11일 찾은 스플라운지 공덕역점에도 사무 공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공덕점의 주요 고객은 30~40대 남성이다. 회사의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고객들이 스플라운지를 찾고 있다.

스플라운지의 장점은 ‘직주근접성’이다. 스파크플러스에 따르면 스플라운지 전체 이용객의 22.2%가 서울 노원구에 있는 지하철 7호선 마들역점을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근무 형태가 유연해지면서 거주지에서 가까운 마들역점에 이용객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

스플라운지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스파크플러스의 매출도 3년 연속 성장했다. 스파크플러스의 매출은 2019년 137억원에서 2020년 260억원, 2021년 436억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출점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2020년 1월 12호점인 성수점을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26호점(분당점)까지 확대했다. 올 상반기 내에 30호점까지 출점을 완료할 예정이다.

공유 오피스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 고객의 증가라는 전환점을 만나게 됐다. 공유 오피스에서 제공하는 편의 시설은 재택근무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라운지 내에 있는 사무 자동화(OA)존부터 다양한 규모의 회의실, 커피머신과 냉장고 등 편의 시설은 마땅한 사무 공간이 없는 고객들에게 호평 받고 있다.
SK텔레콤은 구성원들의 편의를 위해 신도림을 포함한 3곳에 거점오피스 문을 열었다.(사진=SK텔레콤)
SK텔레콤은 구성원들의 편의를 위해 신도림을 포함한 3곳에 거점오피스 문을 열었다.(사진=SK텔레콤)

SK텔레콤의 IT 집약한 거점 오피스 ‘스피어’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나서자 구성원들에게 공간을 먼저 제공하려는 기업들도 늘었다. 이들을 겨냥해 직주근접성이 뛰어난 분산 오피스를 운영하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스타트업 알리콘의 오피스 브랜드 ‘집무실’은 KT·카카오엔터프라이즈·LG디스플레이·LG에너지솔루션 등 대기업과 다수의 스타트업을 고객사로 확보해 분산 오피스를 제공하고 있다.

분산 오피스가 공유 오피스의 서비스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도심의 번화가나 오피스 타운에 자리한 공유 오피스와 달리 집무실 지점들은 수도권 내 주요 주거 지역에 터를 잡았다. ‘걸어서 15분’ 이내를 원칙으로 주거지 중심 위주로 출점해 왔다. 현재 ‘집무실’은 정동·서울대·석촌·일산·목동·왕십리 등 6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판교·마포·노원·은평 등 고객사 수요에 기반해 출점을 검토 중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개인화된 공간을 넓혔다는 점이다. 집무실은 1인 이용자에게 최적화된 3가지 타입의 워크 모듈로 사용자의 선택지를 확대했다. 1인용 폰 부스와 미팅 부스를 마련해 직원 개개인의 업무 환경과 상황에 맞춰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집무실 관계자는 “기업 고객은 대시보드를 통해 구성원들의 일별·월별·이용자별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거점 오피스를 직접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SK텔레콤은 서울 신도림·일산·분당 등 3곳에 거점형 업무 공간 ‘스피어(Sphere)’를 공식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세 장소는 수도권에 근무하는 SK텔레콤 구성원 4300여 명의 거주지·수요·업무 특성을 고려해 설계하고 선정했다.

구성원은 별도의 출입카드가 없어도 인공지능(AI) 기반의 얼굴 인식 기술을 통해 0.2초만에 출입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개인 PC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 자리에 비치된 태블릿에 얼굴을 인식하면 가상 데스크톱 환경(VDI)과 즉시 연동돼 본인이 평소에 사용하는 PC와 동일한 환경에서 업무를 볼 수 있다. 자리에 비치된 태블릿을 통해 비대면 회의에도 참여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이번 거점 오피스를 확대한 이유 중 하나는 거점 오피스를 활용한 선진적인 업무 문화가 향후 인재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근 IT업계 인재들은 일자리를 얻을 때 자유롭고 효율적인 기업 문화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는 재택근무를 경험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자율과 성과를 기반으로 한 선진적인 일 문화를 장착한 회사를 찾기 위해 이직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IT업계의 인재 유치전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선진적인 업무 문화는 기존 구성원들의 업무 효율뿐만 아니라 인재 영입을 통해 회사 전체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판단에서다.

공유 오피스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직주근접’의 중요성을 알게 된 직원들과 유연한 노동 문화를 위해 거점 오피스가 필요한 기업의 니즈가 맞아떨어졌다”며 “향후 공유 오피스 사업은 이를 겨냥한 형태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