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시즌 기준만 채워서는 안 된다. 타자·투수 모두 1군 등록 기간이 145일을 넘어야 1시즌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 조건들은 모두 충족해야 FA 자격을 얻는다. 모든 팀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어 입맛에 맞는 팀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각 구단에서도 FA는 팀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야구판에서 오랜 시간 뛰어 검증된 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천정부지로 오른 FA 금액은 구단 운영을 힘들게 한다.
지난해 스토브리그에서 FA 자격으로 이적한 선수는 6명, 기존 팀에 잔류한 선수는 7명이다. 이적생 중 100억원이 넘는 계약 금액을 기록한 선수 나성범(NC→기아·6년 150억원), 양현종(텍사스→기아·4년 103억원), 박건우(두산→NC·6년 100억원) 선수 등이다.
잔류 멤버 중에서는 김재환(두산·4년 115억원) 선수와 김현수(LG·4년 115억원) 선수 등이 100억원이 넘는 계약을 체결했다. 10개 구단 중 지난해 스토브리그 FA에 가장 많은 돈을 쓴 구단은 기아다. 나성범·양현종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253억원을 썼다. 시즌 초반 중위권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어 LG 175억원, NC 164억원, KT 132억원, 두산 115억원, 삼성 74억원, 한화 54억원 순이다. FA 시장에서 오간 돈은 총 967억원이다.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한 시즌 스토브리그에서 오간 셈이다.
FA 계약을 통한 모든 금액은 단번에 지급되지는 않는다. 다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계약금은 곧바로 줘야 해 구단의 정상적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최고액을 기록한 나성범 선수의 계약 내용을 보면 기간 6년에 계약금 60억원, 연봉 60억원, 옵션 30억원 등 총 150억원이다. 그중 60억원을 일시불로 지급해야 한다. 연봉과 옵션은 매년 지급되는 방식이다. 지난해 기아의 실적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2020년 기준 매출은 383억원, 순손실은 4억원이다. 매출의 15.7%가 나성범 선수 1명의 계약금으로 쓰인 셈이다.
기아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두 선수의 영입에 큰 금액을 쓴 것은 추락한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2019년 7위, 2020년 6위였던 기아는 지난해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포스트 시즌 근처에도 가지 못한 최악의 성적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FA 계약에 253억원을 썼다. 기아 다음으로 스토브리그 당시 큰돈을 쓴 구단은 LG다. LG는 ‘집토끼’ 김현수 선수를 지키기 위해 115억원, 박해민 선수를 삼성에서 데려오기 위해 60억원 등 총 175억원을 썼다. 투자 결과는 올해 성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지난해 4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배했지만 올해는 SSG에 이은 2위다. 모기업이 힘든 상황에도 김재환 선수를 잡기 위해 115억원이라는 큰 금액을 쓴 두산이 3위다.
다만 투자비용이 모두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란 말이 있는데 투수의 선발 및 교체 권한은 감독이 가지고 있다. 명장이 지휘하는 팀은 선수단에 큰돈을 투입하지 않아도 ‘태풍의 눈’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정규 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한 KT가 대표적이다. KT의 지난해 선수단 연봉 총액은 56억7700만원으로 10개 구단 중 6위였다. 선수의 평균 연봉 역시 같은 순위다. 중간 수준의 투자비용으로도 시즌을 제패한 것이다.
KT의 통합 우승에는 ‘강철 매직’으로 불리는 이강철 감독의 외유내강 지도력이 큰 몫을 했다. 그는 ‘스타 출신 감독’이란 말에 담긴 편견에도 불구하고 선수를 믿는 자율 야구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KT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프로 스포츠팀 관계자는 “모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선수단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단, 좋은 지도자와 기세 좋은 선수, 모기업의 적극적인 지지 등이 동시에 작동해야 우승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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