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출세가 아닌 돈을 버는 곳…공헌한 이들에게는 ‘힘’ 대신 ‘중간 정산’을 하라

[경영 전략]
충성과 업적을 ‘권력’으로 보상한다? 망하는 기업의 지름길[박찬희의 경영 전략]
대기업 경영자로 일한 사람이 자기 자식은 ‘눈치 안 보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교수가 되길 바란다. 한평생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 ‘토사구팽’ 당했다는 한탄과 함께 말이다.

이분의 회사 일은 돌아보면 가치가 없는, 힘센 사람들의 이익만을 위한 나쁜 짓이 많았나 본데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엉터리 논문질이나 강의가 더 한심하다는 사실은 모르나 보다. 의미 없는 일이면 하지 않아야지 애써 끼어들어 돈 벌고 투덜대면 무엇하나.

회사는 복지 기구가 아니다. 할 일이 없어지면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 잘리지 않고 싫어 떠날 수도 있다. 삶아서 먹는다는 ‘팽(烹)’이란 한자에는 억울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어져야 좋을까.

과거의 충성과 업적을 자본 삼아 권세를 누리면 회사는 달라진 세상에 쓸모없어진 꼰대들의 정치판이 된다. 이 판에 끼이려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충성에 나서고 그 보상으로 회삿돈을 쓴다면 도적떼와 다를 바 없다.

회사 일을 잘했으면 회사가 보상하고 개인에 대한 충성은 받은 사람이 직접 보상해야 마땅하다. 과거의 업적을 자리로 보상하면 일도 사람도 망친다. 쉽게 말해 사업해 돈을 많이 벌었으면 보너스를 줘야지 분에 맞지 않는 자리를 주면 엉망이 된다는 얘기다. 회사가 아닌 대주주 사모님에게 충성했으면 그 보상은 사모님에게 받아야 한다.
한때의 헌신이 ‘권력 자본’으로M그룹은 약 10년째 전문경영인 K회장이 이끌고 있다. 젊은 시절 사심 없고 유능한 일처리로 인정받던 K회장은 선대 창업 회장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계열사들의 난맥상을 수습하고 대주주 일가의 지분 관계를 정리해 냈다. 그런데 최근 신사업 개발에서 몇 가지 크게 실패했다.

K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사업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벤처 업체를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해 협력하기보다 계열사 사업부로 진행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1조원이 넘는 투자 지출을 허공에 날리고 사업을 접고 말았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판단의 오류는 누구나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내부의 얽힌 사연들 때문에 큰돈을 날리고 미래 기회도 놓쳤다. K회장과 그의 사람들의 집단적 이해관계가 작동한 결과다.

사심 없기로 유명한 K회장이지만 불행히도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지는 않아 일정한 권한을 나눠 주고 같이 일할 수밖에 없었다.

K회장과 그의 사람들로선 획기적 보상은 무리가 따르니 각자 적절한 자리에서 무난한 보상과 권한을 오래도록 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잘 모르는 신사업에 나섰다가 잘못되면 책임이 따르니 심란하고 체질적으로 달라 통제하기도 어려운 벤처기업 경영진도 부담스럽다.

그나마 사업부를 만들고 투자하면 자기 사람들을 키우고 권한도 누릴 수 있지만 인수·합병(M&A)으로 가면 이런 실익도 없이 책임만 진다(1조원 써서 시설 투자하고 수백 명을 채용하는 권한과 팀장 1명에 직원 몇 명이 법무법인 써서 벤처 업체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비교해 보시라).

M그룹의 승계 과정에서 K회장의 공헌은 분명하지만 이런 공헌이 권력 자본이 되고 집단적 이해관계가 더해지면서 회사는 정치 기구가 되고 말았다. K회장의 공헌에는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고 중간 정산해 매듭짓고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면 그에 맞는 권한과 책임 그리고 보상을 설계하는 방식이 옳다. K회장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역전의 용사들에서 혁신의 걸림돌로정보기술(IT), 전자 부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Q전자는 최근 인공지능(AI)과 프로세서 분야의 사업에서 잇달아 부진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Q전자를 만든 최고의 인재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고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력이 있는데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Q전자의 경영진과 생산·연구개발(R&D)의 수뇌부는 변방 개발도상국의 부품 업체였던 Q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런데 이들 변방의 엔지니어들이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이 돼 아직도 자리를 지키는 체제가 혁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Q전자는 약 10년 전 지금은 세계적 기업이 된 L게임사의 M&A를 시도했다. 당시로선 큰 금액인 8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해 지분을 인수하고 ‘글로벌 기업 Q전자의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제의에 L게임사의 경영자와 직원들은 “왜 우리가 당신네 월급쟁이를 하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기업 Q전자의 폼 나는 자리는 그들에겐 쓸데없는 족쇄였을 뿐이다.

AI·프로세서·설계 분야의 인재들은 아이템을 제대로 사업화해 ‘대박 신화’를 만드는 것이 삶의 목표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그 신화가 명예이고 나중에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한 밑천이 된다.

이들에게 Q전자의 꽉 짜인 관리 체제와 그 속에서 한때의 성공을 권력 자본으로 보상 받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에 참견하는 회사 수뇌부는 꽉 막힌 꼰대일 뿐이다.

Q전자 역전의 용사들은 여전히 유능하다. 최신 기술동 향과 시장 정보도 꾸준히 따라잡았고 다양한 위기 돌파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로 짜여진 체제는 여전히 ‘Q전자의 핵심 인사로 출세해 사회적 존경과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는’ 과거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체제는 Q전자의 치밀한 관리 통제와 이를 움직이는 나름 출세한 사람들의 속성과 잘 들어맞는다. 회사 구석구석이 치밀하게 관리되고 예측 가능한, 적절한 보상과 인사 조치로 구성원들이 눈치껏 움직이게 하는 조직은 부리는 사람에게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한자리 한다고 크게 특별할 것 없고 아이템만 좋으면 세계의 돈이 모여드는 세상에서 ‘눈치껏 움직이는 착한 직원’들로 대박 신화를 만들 수는 없다.

Q전자도 과거의 성공 신화를 만든 역전의 용사들에게 거액의 보상을 지급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그 보상은 사장·부사장 자리에 얹혀진 쓸데없이 넓은 방과 기사 딸린 차에 더해진 돈이고 가만히 보면 대주주 일가를 관리해 한자리 얻은 사람들이 더 많이 받았다.

Q전자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한때의 성공을 권력 자본으로 삼아 꽉 짜인 관리 체제에 결합한 ‘쉽게 망하지는 않지만 크게 잘되기 힘든’ 체제에 고착돼 있는 셈이다.

회사는 출세의 장이 아니라 사업해 돈을 버는 곳이다. 과거의 업적이 권력 자본이 되고 집단적 이해관계로 얽히면 달라진 세상에 맞는 새로운 유능함이 설 공간이 없어진다. 세상이 달라져서 눈치 보며 한자리 얻기보다 잘하는 일에 운명을 걸어 대박 신화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그런 꽉 막힌 출세 게임을 경멸한다.

생각해 보면 관료적 출세는 왕조국가 체제에서 선발된 지주 관료들이 벌인 권력 게임의 유산이다. 다양한 보상과 성장 경로가 있고 선출된 권력이 작동하는 세상에서 등급을 정해 방 크기에서 차량 종류, 월급 액수까지 맞춰 주는 짓을 대단하게 생각한다면 이는 회사를 권세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다.

금융 시장을 통해 충성과 업적을 중간 정산하고 나름의 경력과 평판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 외길 출세 게임에만 몰두해 ‘내게 이럴 수 있느냐’며 의심과 원망에 서로 원수가 된다면 바보 같은 짓이다.

사람들을 덧없는 눈치 게임과 충성 경쟁에 몰아넣고 남 괴롭히는 부스러기 권력을 나눠 주며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경영자는 과거의 충성과 업적이 미래의 유능함을 밀어낸 텅 빈 성에서 서서히 망하게 된다. 공헌에 대한 보상은 회사가 어떤 사람과 만나 어떻게 일하고 헤어질지 정하는 심오한 일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