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내각, 정권 출범 전이라 체계적 검증 어려워…온갖 마타도어성 제보도 판단 흐리게 해
홍영식의 정치판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를 이끌 첫 내각 구성이 완료됐지만 인사 파문이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역대 정부 모두 겪었던 일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김앤장에서 고문료 19억원을 받아 ‘전관예우’ 의혹을 받고 있고 자택을 미국계 기업에 빌려주고 임대료로 6억원을 받은 것을 두고 이해 충돌 논란을 빚고 있다. 경북대 병원장을 지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과 딸이 경북대 의대 편입 과정에서 ‘아빠 찬스’ 특혜를 입었는지 여부를 두고 거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관사 재테크’ 의혹을,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아 이해 충돌 의혹을 받고 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이다. 국무총리·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 등을 대상으로 했다가 2005년 국무위원 후보자 전원으로 확대됐다. 도입된 지 22년이 됐지만 아직도 조각(組閣)·개각 때마다 논란이 일고 정쟁 대상이 되는 이유는 뭘까. 한덕수·정호영·이종섭·이창양 등 ‘논란’
조각의 경우, 정권 출범 이전이다 보니 아무래도 검증이 체계적·효율적으로 작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는 후보자들의 부동산 과다 보유,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김용준 초대 총리 지명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자진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 조각 땐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몰래 혼인 신고한 이력과 부적절한 내용의 칼럼으로,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 운전 등으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의 이중 국적 등 의혹이 커지면서 낙마했다. 이에 따라 총리 지명 이후 이명박 정부는 45일 만에, 박근혜 정부는 83일 만에 조각이 마무리됐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 출범 195일 만에 1기 내각이 완성됐다.
인사 때마다 낙마 사태가 벌어지자 이명박 정부는 인사 검증 시스템 전반을 손봤다. 2010년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검증 질문 200개를 던져 꼼꼼하게 점검하도록 하는 자기검증서를 만들었다. 자기검증서의 질문은 △재산 형성(40개) △직무 윤리(33개) △사생활(31개) △납세 등 각종 금전 납부 의무(26개) △전과 및 징계(20개) △연구 윤리(15개) △병역 의무 이행(14개) △학력 및 경력(12개) 등 아홉 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세부적으로는 국적과 병역 면제, 음주 운전 여부, 부동산 취득 내용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직무상 얻은 정보로 주식 등 매입, 상속·증여세 납부, 각종 범칙금, 부동산 다운 계약 작성, 논문 표절, 자녀의 채용 청탁, 성희롱 등 질문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혼, 민사 소송, 해외 골프 여행, 위장 전입, 해외 부동산 보유, 골프 회원권 등 사치성 회원권, 논란이 될 만한 내기 골프나 도박, 본인과 가족의 병역 비리 연루 등도 점검 항목에 포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잇단 인사 파문이 일자 고위 공직자 배제 7대 원칙을 정했다. 질문에는 △병역 기피(4개) △세금 탈루(3개) △불법적 재산 증식(2개) △위장 전입(2개) △연구 부정 행위(3개) △음주 운전(3개) △성관련 범죄(2개) 등이 담겼다. 7대 비리 이외에 △기본 인적 사항(7개) △국적 및 주민등록(13개) △병역 의무 이행(7개) △범죄 경력 및 징계(9개) △재산 관계(30개) △납세 의무 이행(35개) △학력 및 경력(5개) △연구 윤리(16개) △직무 윤리(32) △사생활 및 기타(12개) 등도 있다. 개인과 가족에 관한 모든 것을 탈탈 털다시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인사 검증 파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인사 절차는 이렇다. 개각의 경우 실제 개각 시점 3~4개월 이전 대상이 되는 부처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통보된다. 담당자들은 평소 만들어 놓은 각 부처별 장관 후보자 명단과 각계의 여론을 취합해 후보를 추려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엔 대통령이 낙점하거나 염두에 둔 후보자도 포함된다.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 수석 등 고위 참모들이 협의를 거쳐 후보자 순위를 정한 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민정수석실에서 검증에 들어간다. 하지만 검증 과정에서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조각의 경우 기간이 짧다 보니 더 그렇다.
전직 인사 검증 담당자의 회고다. “재산, 논문, 자녀의 이중 국적 및 부정 입학 문제, 투기, 범죄 사실 등 기본적인 사항은 경찰 자료와 현장 확인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어려움은 다른 데 있다. 온갖 마타도어(흑색선전)성 제보들이 들어온다. 특정 후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거나 반대하는 측에서 육하원칙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책자로 정리해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제보들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수많은 제보를 다 확인하는 데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적임자라고 생각해 대통령이 삼고초려해도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많다. 인사청문회에서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탈탈 털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후보 10명 중 선순위 9명이 모두 탈락하고 10순위가 발탁되기도 했다. 검증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조각·개각 시한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손을 털고 일정 정도 문제가 되는 후보라도 지명 발표를 할 수밖에 없다.” 검증 과정 문제 있어도 대통령이 낙점하면 그만
문제는 기본적인 사안조차 무시하고 무리하게 발탁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투기 의혹의 경우 등기부등본·토지대장을 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직 청와대 인사 담당자는 “실무진에서 부적격이라고 판단하는데도 대통령이 ‘꼭 이 사람을 써야겠다’고 낙점하면 별 수가 없다”며 “그때부터는 방어 전략을 짜느라 부산해진다”고 했다.
스스로 정한 인사 원칙을 거스르고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문재인 정부에서 유독 많았다. ‘내로남불’과 ‘청문회 패싱’으로 인사청문회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7대 기준에 따라 장관 및 고위급 인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상당수 후보자들이 이 기준을 넘지 못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안 됐는데도 장관급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포함해 총 34번에 달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3번), 이명박 정부(17번), 박근혜 정부(10번) 때의 2~11배에 달한다.
인사청문회 자체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능력과 자질 검증보다 흠결을 찾아내 발목 잡기, 망신 주기, 신상 털기식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여야는 각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청문회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40여 개의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 미국처럼 인사 청문 과정을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으로 이원화하고 후보자와 배우자, 직계 존비속 사생활 사항은 비공개로 하는 방안이 다수였다.
하지만 정권 교체로 여야가 바뀌자 방침이 달라지면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국민의힘)은 도덕성 검증 비공개, 정책 검증만 공개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입을 닫았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이 주장을 펴다가 윤석열 당선인의 첫 내각 인사에서 도덕성 문제에서 더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이율배반이다.
홍영식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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