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관행을 퇴행으로 만들어버린 1000만 주주 시대
지난 2년간 세계 주식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학개미운동’은 1000만 주주 시대를 열었고 메타버스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새로운 메가트렌드도 등장했습니다.

올 들어 시장은 차분해졌습니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폭풍같은 2년의 시간을 보낸 한국의 주식 시장과 자본 시장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더하게 만든 사건도 있었습니다. 물적 분할 후 재상장 논란, 스톡옵션 매각, 횡령 사건 등이었습니다. 침체된 공모·사모펀드 시장, 정권 말기 감독 당국의 소극적인 태도 등도 코로나19 사태를 거친 한국의 자본 시장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의문을 풀 단초라도 찾기 위해 시장 최일선에서 증권사·운용사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국내 48개 증권사, 자산 운용사 대표들이 생각하는 한국 주식 시장의 문제점을 다뤘습니다.

키워드는 신뢰였습니다. 투자자들은 기업과 증권사, 자산 운용사를 믿지 못하고 증권사는 기업의 주주 정책을 불신하고, 시장은 당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한국 자본 시장. 그들의 평가는 차가웠습니다. 이 시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업이라는 게 또 하나의 결론이었습니다.

기업들은 1000만 주주 시대가 의미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기업 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소액 주주들의 이익은 뒷전이었습니다. 소액 주주들은 아무 말 안 했습니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이어도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주주들은 스마트해졌습니다. 주식 관련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고 수백 개의 주식 관련 유튜브 채널이 엄청난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기업들은 주장합니다. “물적 분할은, 합병 비율 결정은, 스톡옵션 지급과 행사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의 검증을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함정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시대가 아닙니다. ESG도 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자들의 경제적·정치적 동의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깨달은 결과입니다. 스마트해진 주주들은 더 큰 변수입니다. 이들은 ‘법적 무결점의 함정’을 파고들고 잘못된 것을 찾아내 순식간에 국민적 관심사로 만들어냅니다. 자산운용사들도 소액 주주들과 발맞추기 시작했습니다. 1000만 주주 시대는 ESG와 만나 자본 시장의 관행을 퇴행으로 만들어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주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기업 평판도 나빠집니다. LG그룹과 동원그룹은 과거 ‘대기업=악당’이라는 한국 사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던 흔하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LG그룹은 LG화학 배터리 부문을 물적 분할해 상장하는 과정에서, 동원그룹은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합병하기로 발표한 이후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증권사와 자산 운용사들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오래전 백만장자 보이 스카우트 얘기를 다시 해야 할 듯합니다. 1974년 미국 증권사들은 거대한 수익원을 만났습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시장이 열렸습니다. 너도나도 뛰어들었지만 골드만삭스는 예외였습니다. 화이트 헤드 골드만삭스 회장은 고심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고객을 위해 어떤 적대적 M&A에도 관여하지 않겠다.” 적대적 M&A를 당하는 기업들도 그들의 고객이었습니다. 이후 적대적 M&A의 타깃이 된 기업들이 방어 자문을 받으려고 골드만삭스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때부터 ‘백만장자의 보이 스카우트’로 불렸습니다. 고객을 위해 옳은 일은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입니다.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존 보글 뱅가드 창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투자자들이 지불하는 수수료가 이익을 갉아먹는다며 이를 줄여줄 획기적 상품인 ‘인덱스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뱅가드그룹을 세계적 운용사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객의 이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증권사와 자산 운용사들도 이런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