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클래식, 예술가와 우리 삶을 잇는 39가지 이야기로 배우는 오늘의 영감

[서평]
음악가가 하얗게 지새운 밤과 화가가 느낀 별의 감동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
김희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1만6800원


클래식과 미술은 동경하고 친해지고 싶지만 가까워지려면 용기가 필요한 친구 같다. 예술 경영을 전공한 문화부 기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만화 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저자는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을 통해 클래식 음악 그리고 미술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로 독자를 안내한다. 작품 감상과 분석에 앞서 ‘예술가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라고 짐작하며 공감해 보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삶과 철학 속으로 성큼 들어가 보는 것이다. 우정을 깊이 나누고자 할 때 먼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가장 중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총 11개 장에 걸쳐 39명의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에두아르 마네, 앙리 마티스, 니콜로 파가니니와 같이 세상을 들썩인 파격과 변신의 귀재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알폰스 무하, 라파엘로 산치오 등과 같이 지독한 고통 가운데 뜨거운 창작혼을 불태웠던 예술가들, 벨라스케스, 무하 등 천재가 모인 예술가 가운데서도 다시 천재로 손꼽히는 예술가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아실 드뷔시 등의 예술가적 낭만과 감성과 사랑을 만날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클래식과 미술을 접할 때 예술 작품이라는 아름답고 위대한 결과물에 속곤 한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세기의 걸작을 남겼다고 해도 예술가이기 전에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과 예술가의 뒷모습은 쉽게 기억되지 못한다. 창작에 발 들인 순간의 설렘, 세상에 없던 작품을 일구는 동안 내내 느꼈을 불안과 회의, 포기를 거듭한 뒤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고야 만 의지, 그렇게 영혼과 시간과 몸을 바쳐 이룬 작품의 진가를 인정받았을 때 느끼는 환희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반복하는 삶의 과정이나 감정 기복과 다르지 않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작업을 시작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자신의 근원이자 한계라고 여겼던 탱고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클래식과 탱고의 경계를 허무는 걸작들을 남겼다. 불멸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형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에 더욱 매진했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의지와 집념을 버리지 않고 뜨거운 창작혼을 불태웠던 예술가들은 존경스럽지만 때로는 위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잠도 거의 자지 않고 70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그려내며 고독한 장인 정신을 실현한 미켈란젤로, ‘최고의 재능은 집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 안토닌 드보르자크, 은밀하고 관능적인 그림 속에 자신만의 탈출구를 만들어 낸 에곤 실레 등은 삶을 불사르며 예술을 남긴 이들이다. 피아졸라는 평생 걸음이 불편한 장애를 지녔으나 2500여 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20세기 화가들이 뽑은 최고의 화가 벨라스케스는 빛나는 재능과 감각으로 서민의 삶을 담아내며 “높은 수준의 미술에서 2등이 되기보다 평범한 것들의 1등 화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평생 찬사를 받으며 활동한 파블로 피카소는 92세에 생을 마감하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위대한 그들 역시 평범한 우리와 같이 고뇌의 시간을 견디며 노력한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지식과 경험을 쌓고 폭풍 같은 고뇌를 거듭한다. 이것들은 한데 어우러지고 넘쳐흘러야 그만의 독창적인 시선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음악과 그림은 그렇게 구현된 세계의 결정체라고 강조한다. 더 많은 예술가와 친구가 되고 그들의 작품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한다는 의미다. 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모차르트 소품뿐만 아니라, 라디오와 TV에서, 영화와 광고에서 늘 접하던 클래식과 미술은 이미 우리와 늘 함께해 왔다. 이 작품들을 듣고 보고 영화나 전시를 통해 변주되고 확장된 결과물까지 감상하면 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풍요로운 예술의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에는 예술가들의 삶, 생각과 철학을 되새기며 그림을 감상하고 언급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QR코드를 함께 수록했다. 39인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나면 음악가 브람스가 지새운 하얀 밤의 의미를, 화가 고흐가 쏟아지는 별을 보며 느낀 감동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마현숙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