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오빠·배당 빈손 언니의 역습…구지은 체제의 미래는

[비즈니스 포커스]
아워홈 본사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아워홈 본사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범LG가의 식자재 유통 업체인 아워홈의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간 분쟁이 재개될 조짐이다. 지난해 보복 운전과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해임된 구본성 전 부회장이 임시 주주 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올해 2월 보유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했던 약속을 두 달 만에 뒤집었다. 장녀 구미현 씨와 연합 전선을 구축, 48명의 새 이사를 선임하겠다고 통보했다.

아워홈은 구자학 회장의 1남 3녀가 전체 주식의 98%를 나눠 갖고 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아워홈 지분 38.56%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막내인 구지은 부회장이 20.67%, 장녀 미현 씨가 20.06%(자녀 지분 포함), 차녀 명진 씨가 19.6%를 보유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것은 미현 씨다. 2017년에는 구본성 전 부회장 편에 섰고 2021년에는 구지은 부회장의 손을 잡았다. 올해는 다시 구본성 전 부회장 편으로 돌아섰다. 업계에선 아워홈의 무배당 정책이 미현 씨를 돌아서게 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아워홈은 지난해 매출 1조7400억원, 영업이익 257억원, 순이익 47억원을 올려 흑자로 전환했지만 2021년 실적에 대해 무배당을 결정했다. 배당보다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구지은 부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업계에선 시대에 역행해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다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구지은 부회장은 4남매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해 꾸준히 차기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아워홈 경영과 무관한 삶을 살던 오빠 구본성 전 부회장이 2016년 장자 승계 원칙을 앞세워 경영권을 꿰차게 됐다.

구지은 부회장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고 남매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여성의 경영 참여를 배제해 온 범LG가 가풍으로 보면 구지은 부회장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범LG가에서 구지은 부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 등에서 근무한 경영 전면에 나선 첫 사례로 꼽힌다.

또 구본성 전 부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들은 향후 아워홈 경영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보복 운전으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횡령·배임 혐의로 경찰 수사도 받고 있다.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집행 종료로부터 2년간 범죄 행위와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급식 사업을 하는 아워홈의 특수성도 중요한 포인트다.

요즘 ESG 추세는 협력사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고객사들이 구본성 전 부회장의 혐의를 들어 납품을 거부한다면 경영 차질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급기야 아워홈 노조도 구 전 부회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노총 전국 식품산업연맹노동조합 소속 아워홈 노조는 29일 성명을 내고 “구본성 전 부회장의 경영 참여로 창사 이래 첫 적자가 났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됐다”며 “끝나지 않은 경영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또한 1000억원 이상을 배당을 요구하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연출됐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한 기업의 대표로서 보복운전으로 회사와 노동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아워홈의 대외 신뢰도도 무너뜨렸다”며 “경영 안정을 뒤흔드는 사태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경영권 분쟁에서 당초 지분 매각 주간사 회사로 선정된 라데팡스파트너스도 관심의 대상이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 출신 김남규 대표와 신민석 부대표가 만든 경영 컨설팅 회사다. 하지만 매각 자문 등 현재까지 실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일했던 KCGI는 과거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아워홈도 한진과 연결돼 있다. 구지은 부회장의 언니 명진 씨의 남편은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막내아들)이다. KCGI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조 회장의 조카다.

구 전 부회장은 라데팡스파트너스를 통해 잠재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매각 물건에 대한 정보를 담은 티저 레터를 29일 배포했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아워홈의 회사 가치가 국내 유사 업체들과 비교하면 1조원을 상회하며, 글로벌 상장 유사업군 회사인 컴패스그룹 등의 주가 수준과 코로나19 이후 식품산업 정상화 등 성장성을 반영하면 최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매각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8월 중 예비입찰을 받아 실사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9월 말까지 최종 낙찰자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범LG가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인 구지은 부회장이 매출 1조원대의 기업을 계속 경영할 것인지, 아니면 장자 상속과 배당을 앞세운 구본성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탈환할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