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트렌드]
사람들의 패턴을 모아 만든 인공지능의 ‘집단 지성’…새 시장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내가 본 유튜브 영상이 친구한테도 뜨는 이유
오늘 내게 추천된 유튜브 영상은 과연 누가 제공해 준 것일까. 누군가 내게 특정 영상이 보여지도록 영향을 미쳤다면 내가 특정 영상을 클릭해 시청해 본 경험도 다른 사람에게 그 영상이 보여지도록 하는 계기가 된 셈일까.

그렇다면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들 간에 내가 봤던 영상이 그들에게, 그들이 봤던 영상이 내게 추천되고 있는 것인데 서로 모르는 사람들 간에도 실제로는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IT 기업이 도입한 개인화 추천 서비스
그렇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개인의 행동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 행동이 내 하루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도 영향을 준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무심코 눌러 본 유튜브 영상이 내게 추천될 수 있는 만큼이나 상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는 평소 만나 본 적도 없는 낯선 타인일지라도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AI) 관점에서 보면 유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간에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고 유튜브 영상, 인스타그램 광고, 맛집 추천과 같은 결과물을 제공받게 된다. 즉, 나도 모르게 초연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13년 개인화 추천 전문 기업 레코벨을 창업하고 2017년 코스닥 상장사에 매각했던 경험이 있다. 이후에도 초개인화 서비스 전문 기업 아이겐코리아의 기술 자문을 해 오면서 다수의 추천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했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커피코리아·교보문고·쓱닷컴·GS홈쇼핑·롯데홈쇼핑·롯데인터넷면세점·티몬·위메프·아모레퍼시픽·삼성전자 등 수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개인화 추천 기술이 사용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분석을 수행했다.

아마존·넷플릭스·애플·구글·메타(구 페이스북)·네이버·카카오 등과 같은 빅테크 기업을 포함해 수많은 정보기술(IT) 기업 역시 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기본으로 장착해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추천 서비스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사용자를 이롭게 하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경영학 분야에서 추천 시스템을 연구한 석학인 알렉산더 투즐린 뉴욕대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추천 시스템은 고객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나이·성별·선호도·구매 이력과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고객의 효용(utility)을 극대화하는 상품을 선별해 추천해 주는 행위다.

이때 대표적인 추천 알고리즘에 해당하는 협업적 필터링에 따르면 나와 유사한 사용자들을 탐색한 다음 유사 사용자군을 정의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콘텐츠 중에서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콘텐츠를 선별해 내게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와 유사한 사용자군이 공통적으로 선호했던 콘텐츠야말로 내 만족도를 극대화해 주는 후보군이라고 판단한 배경이다. 콘텐츠 기반 필터링 방식에 따르면 유사 사용자군을 탐색하는 과정 없이도 내가 좋아했던 콘텐츠들의 공통적인 속성으로부터 선호 브랜드·가격대·제조사와 같은 정보를 통계적으로 파악한 후 해당 콘텐츠 속성과 유사한 속성을 갖는 상품을 찾아 보여주는 식으로 작동한다.

나와 유사한 사용자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구매 이력, 장바구니 담기, 검색하기, 상품 클릭하기와 같은 행동 이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데 의미가 있는 벤치마킹 대상으로 정의된다.

이 과정에서 낯선 사람들 간에 정보를 주고받도록 하는 연결 통로가 만들어지고 실제로 추천 결과가 제공된다. AI가 이러한 연결에 의해 사용자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상품을 찾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보문고 온라인 사이트에 내게 추천된 도서는 도대체 누가 왜 알려준 것일까. 내가 관심 있었던 도서와 함께 구매되거나 함께 장바구니에 담겼던 행동 이력을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해 준 결과이고 다른 수많은 고객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찾아냈던 연관 패턴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리해 준 결과다.넛지에서 말하는 ‘선택 설계’사실 AI가 찾아냈다기보다는 수많은 고객들이 남긴 행동 데이터 속에서 집단 지성의 결과를 잘 정리해 준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르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가 출간한 도서 ‘넛지(Nudge)’를 보면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ure)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유통사로 하여금 단순히 고객들에게 물건을 보여주고 구매하도록 하는 역할을 넘어 고객의 선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해 준다.

고객의 선택을 설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고객들은 자유 의지대로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의도하는 바에 영향을 받도록 적절히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세련되게 실행하는 것이 넛지이고 고객의 선택을 기업의 의도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실행하는 기술이 바로 개인화 추천이다. 고객은 자신에게 노출된 유튜브 영상, 배달 맛집 리스트, 쇼핑몰 첫 페이지 추천 상품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추천 서비스를 통해 보여지는 상품 내에서 고객이 구매 의사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상품을 먼저 노출시킬 것인지, 재고가 많은 상품에 기회를 먼저 줄 것인지, 마진율이 더 높은 상품에 가중치를 더 줄 것인 것인지 하는 식으로 가공이 가능하다.

철저하게 고객 지향적으로 추천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유사한 상품 중에서 가격이 더 저렴한 상품을 추천해 주는 식으로 작동한다면 객단가를 낮추게 돼 추천 기술의 적용이 전체 매출을 하락시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론 그대로 고객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상품을 찾아 제공해야 한다는 순수한 측면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개인화 추천 기술이 보편화될수록 디지털 넛지 시대에 오랜 시간 경제학에서 사랑받았던 표현인 ‘보이지 않는 손’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순간이다. 개인화 추천이라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손에 의해 사람들이 연결되고 누군가의 행동이 바로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초연결된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연결되는 세상에서 내 하루를 더 윤택하게 해줄 누군가의 행동을 기대하며 나 역시도 누군가의 하루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도록 선한 영향력을 주는 행동을 해야 하겠다는 인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박성혁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