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 기술 기업① - 식스티헤르츠, 날씨에 좌우되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의 발전량 예측
[ESG 리뷰] 굴뚝과 발전소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에너지업을 운영하는 회사가 있다. 가상 발전소(VPP : Virtual Power Plant) 기업 식스티헤르츠가 그 주인공이다. VPP는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와 에너지 저장 장치(ESS) 등 분산형 에너지 자원을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로 통합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식스티헤르츠의 이력은 화려하다. 신한금융그룹 퓨처스랩, 현대차 H-온드림, LG 소셜 펠로 지원 기업에 선정됐다. 이 밖에 소셜 벤처 경연 대회 대상(국무총리상), 산업통상자원부 공공 데이터 활용 비즈니스 아이디어 공모전 대상, 공공 데이터 활용 공모전 왕중왕전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력만 훑어봐도 주목받는 기후 기술 기업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서울 명동 식스티헤르츠 사무실에서 3월 23일 만난 김종규 대표는 “기존의 전력 생산은 석탄 화력 발전소 등 큰 발전소 위주로 짜여 있었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는 소규모인 데다 지역적으로 분산돼 있다”며 “이런 분산 자원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발전량을 예측·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VPP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VPP는 유럽이나 미국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나라에서는 에너지 예측과 전원 관리를 위해 활성화돼 있는 방식이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도 VPP 사업에 뛰어든 업체 중 하나다. 김 대표는 VPP에 그치지 않고 각각의 소규모 발전사에 맞춘 에너지 예측·관리를 위한 재생에너지 관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간헐성 보완하는 발전량 예측
사명인 식스티헤르츠(60Hz)는 전력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할 때 전력망의 주파수를 의미한다. 현재 한국전력이 각 산업체와 가정에 보내고 있는 전력 주파수가 60Hz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인 이 60Hz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간헐성(intermittency) 문제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것을 일컫는다. 흔히 재생에너지로 꼽는 태양광·풍력·수력 등은 일조량·풍속 등 날씨의 영향을 받고 낮과 밤의 기온 차이도 크다. 대표적으로 태양광은 오전 7시께부터 낮 동안은 공급이 과다하고 오후 5시 이후 저녁과 밤 동안에는 공급이 뚝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전력 공급이 달리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나지만 전력 공급이 많아도 문제다. 전력 공급이 과다하면 전력망을 안정시키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멈추는 현상(출력 제한)이 생긴다. 실제로 2020년 한 해에만 제주도에서 풍력 발전이 77차례 멈췄고 2021년 전남 신안에서도 태양광 발전이 3월에만 두 번이나 중단됐다.
정확한 예측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소 가동률이 향상되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물론 온실가스 감축과 비용 절감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김 대표가 VPP 개념에 착안한 이유다. 정부가 공개한 공공 데이터에 기반해 구축된 식스티헤르츠의 VPP는 한국 최대 규모(32GW), 매우 낮은 예측 오차율(2.6%)로 한국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갖췄다. 식스티헤르츠의 VPP에서는 ‘태양광+ESS’, ‘태양광+풍력+ESS’의 현시점에서 한 시간 뒤, 하루 뒤, 1년 뒤 발전량을 예측한다. 발전소에 설치된 ESS가 언제 충전하고 방전하는지도 포함된 계산이다.
이를 바탕으로 식스티헤르츠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적용된 발전량 예측과 모니터링 시스템도 개발했다. 적용된 발전소는 3000여 개, 합계 용량은 700MW에 달한다. 식스티헤르츠의 고객이 바로 이들이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가 하루 전 발전량을 특정 시간 내 오차 범위 내에서 예측하면 국가에서는 전력망 안정에 기여한다는 의미로 정산금을 준다. 정산금은 예측 오차율 6% 이하는 kWh당 4원이다. 이 예측을 식스티헤르츠가 대신해 주면서 발전 사업자로부터 대가를 월정액 형태로 받고 있다.
식스티헤르츠는 VPP 운영에 클라우드·인공지능(AI)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국지 수치 예측 모델(LDAPS)과 인공위성 분석을 통해 하루 뒤, 한 시간 뒤 일사량 예측이 가능하고 모듈과 인버터 특성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소 시뮬레이션을 활용한다. 풍력 발전량 예측은 수치 예보 모델을 활용해 하루나 한 시간 뒤 풍향·풍속 예측과 관측 장비인 라이다(lidar)를 활용한 실시간 풍속·풍향 측정, 터빈 특성을 반영한 발전소 파워 커브 추정 등으로 이뤄진다.
김 대표는 “다양한 기상 모델을 사용하고 에너지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로 구성된 인적 자원의 수준이 높고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올해부터 유럽연합(EU) 등 해외 기상 데이터를 많이 참고해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특히 풍력 전력량을 예측하는 데는 식스티헤르츠만의 노하우가 있다. 그는 “처음부터 풍력 발전 사업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현장에서 기계적 구성과 원리를 확인하는 등 데이터만으로 예측하는 게 아니라 발전기의 원리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 해결’ 정관에 담아
식스티헤르츠는 소셜 벤처로 사회적 기업과 벤처기업의 성격을 지닌,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회사다. 회사의 정관 2조 사업 목적에는 ‘기후 변화 및 환경 문제 해결을 사명으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사회에서는 매년 사회적 성과를 측정하는 소셜임팩트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기후 위기는 인간의 과도한 욕구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단순히 유니콘 기업만을 목표로 하면 기후 위기를 초래한 ‘과도한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고 그보다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위해 소셜 벤처라는 형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롤모델로 친환경에 앞장서는 의류 업체 파타고니아와 폐비닐로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신발 업체 올버즈를 꼽았다.
VPP 플랫폼 ‘햇빛바람지도’를 무료로 공개한 것도 공익적 목적이다. 식스티헤르츠는 기상 정보와 발전소 위치 등 공공 데이터를 가공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대표적 기업이다. 햇빛바람지도는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서울에너지공사·서울대·네이버·SK가스·한화솔루션 등 800여 곳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올해 초 기준 누적 사용자 8000명이 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햇빛바람지도에서는 각 지역별 바람과 햇빛, 기온과 구름 현황을 보여주며 확대하면 전국 8만여 개 태양광·풍력 발전소의 발전량 예측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는 “재생에너지 회사지만 공공 데이터 우수 사례로 대통령상을 받고 공공 데이터로 실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기업”이라며 “앞으로 정부가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공개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사용 활성화 역시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공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김 대표는 우선 시장 원리에 맞는 전력 시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현재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0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가장 낮고 전력 시장을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구조를 띤다. 김 대표는 “독일은 시민들이 어떤 에너지원을 쓸지 선택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전력의 독점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전력 선택권 문제에 대해 농가에서 필요한 비료를 정부가 일괄적으로 유기농과 화학 비료를 모두 섞어 한 바구니에 담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특히 글로벌 수출 기업이 탄소 중립을 위해 RE100(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캠페인)에 속속 동참하는 것을 감안하면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수출 기업이 실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의 에너지 비용이 너무 낮기 때문에 에너지 과소비에 중독된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탄소 중립을 이행하려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시장 흐름에 따라 전력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싼 전기 요금으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대는 갔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100%로 전환한 애플은 이어폰 번들을 빼는 결정을 감행했음에도 애플 사용자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과거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고안해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된 사례도 기억해야 한다. 전기차 등 소규모 분산 전원 활용 연구
현재 한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이 3~15% 사이인 2단계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발전량 예측에 기반한 다양한 제도를 시험하고 있다. 3단계(13~25%)로 가면 독일과 영국처럼 유연성 자원을 확보해야 하고 4단계(25~50%)가 되면 덴마크와 아일랜드 등 재생에너지 선진국처럼 가용한 모든 자원의 동적 가동을 시행하게 된다. 식스티헤르츠가 주목하는 것은 3단계다. 재생에너지가 주가 되면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주기에 따라 다른 전원이 생산량이나 소비량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다. 한국 발전량 예측 시장은 낙관적이다. 발전량 예측 규모는 현재 재생에너지 생산량 20GW, 시장 규모는 800억원이지만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 60GW, 시장 규모는 2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VPP를 원활하게 가동하기 위해서는 공급원뿐만 아니라 수요원 관리도 중요하다. 수요원도 일종의 전원으로, 이를 수요 반응 자원(DR)이라고 한다. 수요량을 줄이는 데 참여한 수요 전원은 전력 감축 지시가 내려오면 수요를 줄이고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된다. 김 대표가 다음 타깃으로 전기차나 스마트 가전제품 등 소규모 분산 전원의 연결에 주목하는 이유다. 김 대표는 “전기차는 도로에 있을 때는 운송 수단이지만 멈춰 서 충전할 때는 전기를 사용하고 저장하는 배터리 역할을 한다. 스마트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라며 “이 같은 분산 전원이 들어온다면 재생에너지 생산이 과잉인 시간대에 전기차 충전이나 가전제품 사용을 활성화한다거나 재생에너지 생산이 줄어들 때 충전을 줄이는 등 효율적 설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도 호주에서 VPP 사업을 하고 있다. 호주에 대규모 배터리 시설을 조성해 전력이 필요할 때 공급해 주는 사업이다.
김 대표는 재생에너지의 직접 거래에도 나설 예정이다. 올해 중 기업들이 낮은 거래비용에 재생에너지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손쉽게 사고팔 수 있도록 플랫폼을 월 구독형으로 제공하는 형태다. 김 대표는 “현재 REC는 큰 회사 사이에서만 서류상으로 오가는데 규모가 작은 회사도 REC를 더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고 RE100에도 동참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려는 기업이 전담 인력 없이도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380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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