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2000년대 중반쯤의 일입니다. 서점에서 이상한 제목의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20대 재테크에 미쳐라’였습니다. 진짜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꿈, 희망, 미래, 정의를 얘기해야 할 젊은이들에게 재테크에 미치라니….’ 물론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의 화두는 양극화였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요즘과 비슷했지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책을 집어든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깔려 있는 정서는 ‘불안’이라는 것을….

그러나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발 금융 위기가 터졌습니다. 투자 열기는 한순간에 식어 버렸습니다.

몇 년이 흘렀습니다. 2011년 또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째 세대인 밀레니얼을 위로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이 책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지요. 위로가 필요했겠지요.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밤을 학원에서 보내고 어렵게 대학을 가도 곧장 취업 전쟁에 내몰린 이들…. 겨우 입사하면 ‘꼰대’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을 겁니다. 그걸 다 버텨내고 직장을 다녀도 서울에 자신만의 힘으로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힐링’이란 단어도 유행어가 됐습니다.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잘못된 현실을 인정하라는 강요였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프면 환자지 XX야, 뭐가 청춘이냐”란 방송인 유병재의 말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철학자 강신주도 “힐링은 미봉책”이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 굴레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수단은 소비였습니다. ‘가성비, 가심비’,‘욜로’가 일상어가 됐습니다. 휴가철이면 모아둔 돈을 털어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럼 나는 평생 이렇게 살라는 말인가.’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0년 봄,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사회를 덮쳤습니다. 암울한 상황에서 누군가 과거의 경험을 소환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직후 주가가 급반등했던 그 경험을…. 코스피지수 1400~1500대에 사람들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주식에 열광한 것은 젊은 세대였습니다. 이들은 동시에 암호화폐 시장에도 뛰어들었습니다. 한 푼 한 푼 모아 삶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 주식으로도 눈을 돌렸습니다. 100조원이 넘는 돈이 순식간에 주식 시장에 흘러들어 왔습니다. 머니 무브라고 부릅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 보겠다는 모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어떤 청춘들은 돈을 벌고 어떤 청춘들은 날렸습니다. 머니 무브에는 제동이 걸린 듯합니다. 주식 시장에 흘러들어 오던 돈의 흐름은 멈췄습니다. 1400에서 3300까지 올랐던 주가는 2700 전후로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2년간의 머니 무브가 멈춘 재테크 시장을 다뤘습니다. 한번쯤 돌아보자는 의미입니다.

지난 2년간 투자자들은 몇 가지 교훈을 얻은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식 투자는 귀동냥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친구따라 강남은 갈 수 있지만 주식 투자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얘기죠. 또 세상의 변화속에 ‘내 주식은 예외’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알게됐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가 타격을 받는다”는 얘기를 몇 달간 해도 ‘그래도 내 주식은 아니겠지’ 하며 들고 있는 선수들을 한두 명 본 게 아닙니다.

평소 존경하는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에게 젊은 투자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투자의 기회는 버스와 같습니다. 떠나고 나면 다시 오지요.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니 늘 시장에는 발을 들여놓고 있어야 하는데 조정기를 견디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힘든 일이지요. 약세장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경험에서 배워야 합니다. 손실이 나면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지만 투자 세계에서 살아갈 날은 훨씬 깁니다.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 나락에 떨어져 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견디는 것도 투자입니다. 주식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이들이 투자자로 살아갈 날은 지난 2년보다 훨씬 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가진 시간의 힘을 믿어야겠지요.”

그의 말처럼 경험에서 배워야 할 시간입니다. 폭풍같은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자신의 투자 패턴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투자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말로 글을 답습니다. “준비한 자가 성공하면 행운이라고 말하고 준비하지 않은 자가 실패하면 불운이라고 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