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에 대한 가장 사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들

[서평]
다가가면 멀어지고 노력하면 달아나는 것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마리나 벤저민 지음 | 김나연 역 | 마시멜로 | 1만4000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수록 멀어지고 노력하면 할수록 달아나는 것, ‘잠’이다. 생각에서 떨쳐내야 이룰 수 있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애쓸수록 끝 모를 ‘부재의 고통’만이 남는다. 자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태, ‘불면증’이다. 습관성 불면 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잠이 개인의 내밀한 활동의 영역이듯 불면증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창백한 안색, 퀭한 눈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천근만근의 몸, 메말라 가는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는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가 쉽지 않다.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넓고 깊게 다뤄지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수면 부족을 비롯한 잠과 관련한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다는 것은 굳이 통계를 빌리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불면증은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영국의 작가 마리나 벤저민의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제목처럼 불면증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물론 어떻게 하면 불면 증세를 없앨 수 있을지 같은 병리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 그 반대에 가깝다. 잠들지 못한 숱한 밤이 그를 잠과 불면증에 대한 연구자로 만든 것일까.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중년, 잠시 멈춤’을 비롯해 에디터로 활동하며 글쓰기, 회고록, 가족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발표해 온 저자는 불면증에 대해 가장 사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솔직하고 내밀한 고백과 잠과 불면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는다. 마치 책에도 등장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의 행로는 문학, 미술, 그리스·로마 신화, 역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어느 한곳에 한정되지 않는다. 르네 마그리트에서 시작해 자크 라캉과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거쳐 ‘로빈슨 크루소’와 칼 마르크스를 지나 샤를로트 베라트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이지만 벤저민 작가의 ‘의식의 흐름’ 안에서 하나가 된다. 200쪽 정도의 작은 책이 자신의 고통을 처절하게 읊는 회고록이었다가, 동거인과 거쳐 온 사랑의 역사를 숨겨 놓은 서랍 속 일기였다가, 숨겨져 있던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한 비밀의 도서관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모든 고민은 무언가의 결핍과 그로 인한 고통에서 시작된다. 잠도 마찬가지다. 결핍과 고통이 애초에 없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임경선 작가는 “우리의 인생에 뜻밖의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대부분 통제할 수 없지만 그 문제에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만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핍과 고통은 그 문제에 대한 사유, 나아가 자신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핍을 벌이자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철없는 일일까. 어쨌든 벤저민 작가는 잠의 결핍과 불면의 고통에서 시작된 고민을 치열한 사유로 이어 갔고 자신의 불면증을 재료 삼아 책으로 빚어 냈다.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이에게 기꺼이 ‘불면의 동지’가 되기를 자처하며 공감과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내용의 독창성도 독창성이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감각적이고 유려한 저자의 필치다. 실제로 수많은 리뷰가 공통적으로 글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다. 이야기의 새로움과 함께 글에 담긴 개성과 문학성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 출판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의 저자 김나연 작가가 번역을 맡았는데 저자 특유의 스타일을 한껏 살렸다.

읽으면 잠이 쏟아진다는 얘기는 어떤 책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테지만 이 책만큼은 예외다. 최고의 칭찬이다. 저자가 아름답게 그려낸 밤의 세계는 우리를 편안한 잠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원제는 ‘인섬니아(Insomnia)’로, 해외에서는 ‘뉴요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등 다수 매체와 올리비아 랭, 대니 샤피로 등 유명 에세이스트가 추천했다. 한국에서는 다방면으로 글을 써 온 임경선·김겨울 작가가 추천했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