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보유액 늘릴 필요성 커져…외자 이탈 지속 감시할 때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읽기]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의 5월 회의 이후의 주가 흐름을 두고 월가에서 또다시 ‘데드 캣 바운스’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고양이가 죽을 때 한 번 뛰어오른다’는 의미의 이 논쟁은 지난해 11월 Fed 회의와 올해 1월 Fed 회의 후 또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나스닥지수는 30% 넘게 폭락했다.
또다시 추락한 나스닥…‘新 환율 전쟁’ 오나[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읽기]
엔화 가치 추락, 日 한국식 키코 사태 몸살

데드 캣 바운스 논쟁은 궁극적으로 경기에 의해 좌우된다. 미국 경기는 미국경제연구소(NBER)의 2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판단한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1.4%로 낮게 나왔지만 현지 경기가 침체 국면에 빠졌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것도 이 근거에 기인한다. 2분기 성장률은 오는 7월 발표된다.

하지만 ‘선제성’을 중시하는 Fed가 NBER식으로 지나간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하는 것을 시장에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유효성 문제 때문이다. 이에 따라 Fed가 경기를 판단·예측하는 기법으로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가 활용돼 왔다.

Fed의 공식 견해이기도 한 아투로 에스트렐라 렌셀러폴리테크닉대 교수와 프레드릭 미시킨 컬럼비아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는 가장 성공적인 경기 예측 기법이다.

문제는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로 최근 미국 경기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3월 Fed 회의 후 경기 침체 논쟁의 불을 지폈던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이 5월 Fed 회의를 불과 2주일 앞두고 정상화됐다. 시기적으로 보면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엔에 도달했을 때와 맞물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불안한 상황이 닥칠 때 엔화는 강세를 보이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엔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엔화 강세를 예상해 환 헤지를 해 놓았던 일본이 환차손으로 비용이 급증하는 ‘한국판 키코(KIKO)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금융 위기로 나타난 경제 위기 당시 한국은 영향을 덜 받을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미국에서 이탈한 자금이 한국에 유입될 것이란 예측이 겹치며 주가가 오르고 환율이 떨어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가 하락 폭으로 본다면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다우존스지수는 45%에 그쳤던 반면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65%나 폭락했다. 위기 발생 후 달러당 85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봤던 원‧달러 환율은 거꾸로 달러당 1600원까지 올라 ‘키코 사태’를 낳게 한 직접적 계기가 됐다.

키코는 2007년부터 한국 은행들이 수출 위주의 중소기업에 집중적으로 판매한 환헤지 통화 옵션 상품이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환율 변동 위험을 줄여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들은 계약금의 두 배 이상의 외화를 마련해 은행에 약정 환율로 팔아야 했다.

한국 기업이 당시 낭패를 본 것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금융 위기로 ‘마진 콜’을 당하면 경제 여건이 좋은 곳을 디레버리지(기존 투자 자산 회수) 대상으로 선택한다는 점과 고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레버리지 비율(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이 높았던 점을 인식하지 못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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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보유액 늘려야 하는 한국

Fed가 왜곡된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를 잘못 파악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 위기’다. 1990년대 후반 부동산 거품이 심화되자 앨런 그린스펀 Fed 전 의장은 2004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장 금리가 더 떨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면서 부동산 거품은 더 심해졌고 급기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일본에 의해 왜곡된 장·단기 금리 간 역전 현상 해소가 경기에 문제가 없다고 잘못 판단해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또다시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국제 통화 질서는 시스템이 없는 체제가 더 굳어지는 추세다.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탈(脫)달러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유로화·엔화·위안화 등 현존하는 통화가 달러화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시스템이 없는 국제 통화 제도에서는 기축 통화의 신뢰성이 저하되더라도 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제2 플라자 체제’가 태동될 수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기축 통화 논쟁과 함께 환율 전쟁이 수시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중간자 국가의 통화는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국 통화는 세 가지 위험이 적으면 안전 통화로 평가된다. 가장 중요한 ‘시장 리스크’는 시장의 상황 변화로 자산의 가치가 변동할 가능성을 의미하며 가격의 표준 편차·준분산 등으로 평가한다.

‘유동성 리스크’는 자산의 유동성이 부족해 결제 의무 이행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으로 거래량, 매매 호가 스프레드 등으로 측정한다. ‘신용 리스크’는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으로, 통화는 국가 신용 등급 등에 반영된다.

금융 위기 이후 현재까지 표준 편차를 구해 보면 원화의 시장 리스크는 최근 들어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국제 금융 시장에서 거래가 많은 중심 통화뿐만 아니라 각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변동성이 심하다는 의미다. 특히 특정국 통화의 하방 변동성을 측정하는 준분산은 원화가 높게 나온다.

유동성 리스크는 더 높게 나온다. 원화의 거래량은 아직도 부족하다. 시장의 심도를 보여주는 매매 호가 스프레드도 한국과 경제 여건이 비슷한 대만과 싱가포르 달러화보다 높게 나온다.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 프리미엄 등으로 측정되는 신용 리스크는 최근 들어 개선되고 있어 그마나 다행한 일이다.

아직까지 원화는 안전 통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 외환 시장의 여건은 ‘뉴 노멀’에서 ‘뉴 앱노멀’, 위험 관리 면에서는 ‘불확실성’에서 ‘초불확실성’으로 한 단계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외환 당국은 외국 자금의 유입 속도를 조절하고 유입 외자의 성격을 파악해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소극적인 시장 개입에 그쳤지만 평상시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환 거래세’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외자 이탈에도 대비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2선 자금까지 포함하면 5000억 달러가 넘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사전에 외국 자금의 이탈 징후를 포착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안정성과 정책 효율 면에서 더 중요하다는 점을 정책 당국은 인식해야 한다. 기업도 환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관리 방안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