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부자 1, 2위 엎치락뒤치락 ‘세기의 라이벌’…IT, 우주 산업 이어 ‘미디어 혁신 경쟁’ 주목

[비즈니스 포커스]
제프 베이조스와 엘론 머스크…이번엔 ‘언론 자유’ 두고 격돌
지난 4월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트위터 인수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운 머스크 CEO는 이번 딜에 무려 440억 달러(약 55조원)를 쏟아부었다. 트위터의 인수 소식이 전해진 직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머스크 CEO가 트위터를 인수하게 된다면 테슬라와 중국의 긴밀한 비즈니스 관계를 고려할 때 트위터를 통한 중국의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론 자유’를 위해 트위터를 인수한다는 머스크 CEO를 정면으로 비판한 셈이다.

머스크 CEO의 트위터 인수를 계기로 베이조스 창업자와의 라이벌 관계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지닌 인물들이다. 2021년까지 베이조스 창업자가 줄곧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지켰지만 2022년 머스크 CEO가 세계 최고 부자에 올랐다. 테슬라와 아마존이라는 정보기술(IT) 빅테크 기업을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은 현재 각각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으로 ‘우주 산업’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경쟁 분야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현재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의 소유주다. 머스크 CEO가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트위터 인수를 완료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두 사람이 ‘미디어 산업’에서 다시 한 번 맞붙게 되는 것이다.

‘뉴스의 품격’ vs ‘모두의 공론장’

베이조스 창업자가 약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원)에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것은 2013년이다. 10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유력 일간지의 주인이 바뀐다는 소식에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1993년부터 80년이 넘게 워싱턴포스트를 운영하던 그레이엄 일가는 악화하는 경영난에 고심하다 베이조스 창업자에게 먼저 워싱턴포스트의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베이조스 창업자는 언론사는 수익성이 없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베이조스 창업자는 ‘언론사로서 워싱턴포스트의 명성과 의미’를 고려할 때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인 ‘언론 자유’를 위해 언론사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실제 워싱턴포스트는 베이조스 창업자의 품에 안긴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워싱턴포스트’라는 명성을 활용해 오랜 신문 산업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변모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아마존의 성공 방정식을 워싱턴포스트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플랫폼의 힘’을 익히 알고 있던 그는 더 많은 독자들을 유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자들마다 어떤 독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가 하면 각각의 독자들마다 관심사에 맞는 기사가 먼저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워싱턴포스트는 2020년 기준 300만 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확보할 만큼 성장했고 ‘디지털 플랫폼’으로서의 수익성을 증명했다. 아마존이라는 IT 혁신 기업을 운영하는 수장의 디지털 혁신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베이조스 창업자가 쇠락해 가던 워싱턴포스트를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 모델로 탈바꿈시켰듯이 머스크 CEO 또한 트위터에 ‘혁신을 통한 마법’을 선보이겠다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실 트위터는 글로벌 SNS 가운데 경쟁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이용자 수가 4억3600만 명 수준으로, 하루 이용자 수만 19억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과 비교하면 내실이 부족하다고도 볼 수 있다. 머스크 CEO의 인수에는 “현재 트위터가 잘못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이를 손본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SNS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와 엘론 머스크…이번엔 ‘언론 자유’ 두고 격돌
하지만 ‘미디어 산업’에 접근하는 데 두 사람의 태도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워싱턴포스트와 트위터를 인수한 명분으로 ‘언론 자유’를 앞세우고 있지만 두 사람이 그리고 있는 ‘언론 자유’의 개념은 상당히 다르다. 그만큼 두 사람이 각각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 또한 확연히 다르다. 이는 ‘언론 자유’의 밑바탕이 될 미디어 혁신의 첨병으로 두 사람이 각각 전통 신문 산업에 뿌리를 둔 ‘레거시 미디어’와 새로운 정보 공유 플랫폼인 ‘SNS’라는 선택을 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워싱턴포스트의 인수 이후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만 집중했을 뿐 편집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콘텐츠로서 ‘뉴스’를 다루는 데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워싱턴포스트 인수 후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 기자들을 대폭 증원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머스크 CEO 또한 트위터 인수 후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트위터의 ‘280자 제한’을 없애고 편집 버튼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트위터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언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콘텐츠 조정’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대목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머스크 CEO는 5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영구 정지와 관련해 “트위터에서는 스팸과 같은 정보가 아니라면 어떤 정보도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 또한 마찬가지 관점에서 영구 정지를 푸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글로벌 IT 기업의 수장으로서 두 사람은 미디어 산업 역시 ‘혁신이 필요한 또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언론 자유’에 대한 두 사람의 극명히 다른 태도 만큼 향후 이 라이벌전이 어떻게 전개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돋보기> 슈퍼 리치들이 언론사를 탐내는 이유는?
“2021년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워싱턴포스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부자 2위는 이제 트위터를 소유하고 있지요. 셋째 부자는 페이스북을, 넷째 부자와 아홉째 부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섯째와 여섯째 부자는 구글을, 열째 부자는 블룸버그를 갖고 있죠. 언론 자유? 당신이 판단하세요.”

지난 4월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인수 소식 후 화제를 모은 트윗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머스크 CEO 외에도 현재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이미 ‘전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대 SNS인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을 소유하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물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최대 비즈니스 SNS인 ‘링크트인’을 운영 중이다. 세계 9위 부자인 스티븐 발머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2대 CEO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유튜브를 통해 지금도 전 세계에 유통되는 정보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블룸버그를 포함한 대형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L.P.를 창립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은 대표적인 언론 재벌 중 한 사람이다. 이 밖에 월스트리트저널·폭스뉴스·타임스 등을 소유하고 있는 루퍼트 머독 또한 대표적인 언론 재벌로 손꼽힌다.

‘억만장자’와 같은 부자들이 언론사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숱하게 반복돼 온 역사다. 미디어 리서치 업체 엔더스애널리시스의 클레어 엔더스 대표는 “슈퍼 리치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언론사를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머스크 CEO의 트위터 인수는 이와 같은 슈퍼 리치의 욕망이 SNS라는 플랫폼을 통해 조금 더 진화된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머스크 CEO와 같은 부자들이 언론사나 SNS를 인수하는 데 어떤 이유를 대든 결국 그들의 목적은 ‘보다 다른 차원의 막대한 영향력’을 갖기 위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와 SNS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긍정적인 영향력과 부정적 영향력 모두 포함하는 의미다. 실제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최근까지도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되며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특히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 등의 SNS가 10대 소녀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기업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이를 방치해 왔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머스크 CEO의 트위터 인수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엔더스 대표는 “재벌이 소유하지 않은 글로벌 언론사와 SNS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가짜 뉴스를 비롯해 SNS가 우리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보다 정확한 분석과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