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중심으로 법조인·교수·기업인 등 후보자 물망에
60대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들 ‘급부상’
고유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로 가계 부채에 대한 우려와 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5월 10일 출범한 새 정부의 금융 정책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금융 당국과 주요 국책 금융 기관 수장 자리를 누가 채우게 될지가 관심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실세 부위원장 먼저 임명
새 정부 출범으로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대내외 금융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금융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의 수장 자리를 오래 비워 두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신임 금융위원장으로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김주현(63) 현 여신금융협회장이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유력한 금융위원장에 꼽혔던 최상목(60)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청와대 경제수석에 낙점됐다.
김 회장은 중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 MBA를 수료했다. 그는 글로벌 긴축 전환과 코로나19 이후 난제를 헤쳐 나갈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4년여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사무처장을 맡아 금융 시장 변동에 대응할 위기관리 능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부실 저축은행 구조 조정을 이끌어 냈고 2012년 예금보험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에도 성과를 냈다.
‘경제 원팀’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적임자란 평가도 있다. 김 회장은 윤석열 정부에 기용된 핵심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행정고시 25회로 추경호(63)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동기다. 또 김 회장이 2010년 금융위 사무처장 당시 추 부총리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최 경제수석은 금융위 공적자금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에서 활약한 기재부(구 재무부) 출신 3명의 경제 관료가 윤석열 정부에서 함께 일하게 되는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는 고교 동창으로 박 전 대통령과도 어릴 때부터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부위원장(차관급)으로는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김소영(55)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5월 17일 임명됐다.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 인사는 장관급에 이어 차관급으로 이어지지만 이례적으로 금융위원장을 공석으로 둔 채 부위원장에 대한 인선을 먼저 단행해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과 후보자 검증 등의 문제로 금융위원장과 공정위원장 등 장관급 인선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차관 대행 체제’를 갖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발 금리 인상 등 녹록지 않은 금융 환경도 부위원장 인선을 서두른 배경으로 꼽힌다.
어쨌든 금융위 안팎에서는 실세 부위원장이 부임했다는 반응이다. 김 신임 부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린다. 지난 대선 기간 선거캠프의 경제정책본부장을 맡아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등 금융 지원 확대 같은 경제 분야 공약을 총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출범과 동시에 경제분과 위원으로 참여했고 경제수석과 한국은행 총재 후보 물망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학자로선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이론에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고 규제 철폐와 민간 주도의 성장을 주장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 등 여러 국제 금융 기관의 자문역과 컨설턴트로 활동한 거시경제 전문가다.
일각에서 김 신임 부위원장이 정권 후반부 직접 경제 운영을 책임지는 직책으로 옮겨 갈 것이란 성급한 관측이 나온다. 금융위 부위원장은 차관급 자리지만 요직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역대 부위원장들을 보면 그 자리를 발판 삼아 더 높은 자리로 옮겨 가는 경우가 많았다. 추 부총리가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냈고 이창용(62) 현 한국은행 총재도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금융위 부위원장이었다. 현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위 부위원장 출신인 셈이다. 금감원장에 검사 출신 후보자 급부상
차기 금감원장은 검사 출신이 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연수 김앤장 변호사(전 금감원 부원장보)와 박순철 전 남부 지검장, 박은석 법무법인 린 변호사(전 금감원 국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 3명 모두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관료 출신으로는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과 이찬우 금감원 수석부원장, 이병래 한국공인회계사회 대외협력부회장 등이 물망에 올랐고 정치인 출신으로 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언급된다. 학계에선 이번 인수위에 참여했던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와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 등이 거론된다. 신 교수는 한국금융연구원장을 거쳐 홍익대 경영대학원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로 안철수 인수위원장 측 인사로 꼽힌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정연수(60) 변호사다. 그는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장·형사2부장, 홍성지청장, 성남지청 차장검사 등을 거친 검사 출신이다. 2001년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파견됐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본부장(부원장보), 금융투자업검사·자본시장조사담당 부원장보로 일한 경험이 있어 금감원 업무에 익숙하다. 이후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다만 금감원장 인사는 막판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검찰 출신이 금감원장에 임명된 사례는 현재까지 없었고 검사·제재로 금융사와 법적 갈등을 겪는 금감원의 수장으로 검사 출신이 적합한지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KDB산업은행 민영화 추진 인사 다시 요직에
금융 공기업 수장직 인선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책 은행의 대장 격인 차기 KDB산업은행 회장에는 가장 큰 현안인 부산 이전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인물이 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걸 전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4월 미리 사의를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 퇴임에 맞춰 5월 9일 수장직을 내려놓았다.
유력하게 거론되던 이석준(64) 전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4월 서울장학재단 이사장에 선임됨에 따라 최근 최수현(66) 전 금감원장과 황영기(69) 전 금융투자협회장 등이 주목받고 있다.
최 전 원장은 기재부와 금융위‧금감원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금융 관료다. 추 부총리, 김 회장과 행정고시 동기(25회)이기도 하다. 금감원장 퇴임 후 국민대에서 석좌교수로 지내며 금융·경제 전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황 전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과 우리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역임한 민간 분야 금융 전문가다. 직업이 금융 최고경영자(CEO)인 셈이다. 그는 지난 2월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는 전·현직 금융인 110명 선언을 주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최근 금융 당국 인선이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민영화 등 구조 개편의 신호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KDB산업은행 민영화 논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처음 언급됐다. KDB산업은행을 쪼개 정책금융공사를 따로 만들어 금융사와 기업 지원을 맡기고 KDB산업은행은 글로벌 상업 투자은행으로 키우겠단 복안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로 대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았다. 정책금융공사는 매년 수천억원씩 적자를 냈고 부실 기업이 도산되는데 KDB산업은행은 민영화 준비로 구조 조정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5년 만에 두 기관을 다시 통합했다.
그러다 대우조선해양·쌍용자동차에 이어 KDB생명(구 금호생명) 매각에 실패하면서 KDB산업은행 무용론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KDB산업은행 민영화를 주도했던 당사자들이 다시 요직에 기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김 회장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KDB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했던 실무자였고 황 전 회장은 KB금융지주 회장으로 KDB산업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취임한 이 총재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KDB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을 입안해 이후 금융위 부위원장으로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 총재는 4월 19일 인사 청문회에서도 “당시 KDB산업은행 민영화는 민간 기능을 확장해 투자은행으로서 기능을 하고 정책 금융을 현대화하자는 목적이었다”며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 당국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 대부분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요직을 거쳤던 60대 연령층이다. 전문성이나 경륜이 검증된 셈이다. 다만 디지털 전환, 가상 자산 등 급변하는 금융 환경을 다루는 데 적합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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