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EDITOR's LETTER]2022년 기업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문화가 아침 식사로 전략을 먹어 치운다.”

과거 한 글로벌 기업의 회의실에 붙어 있던 문구입니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이를 실행할 문화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쓸모없다는 얘기입니다. 피터 드러커가 한 말이라는 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기업 문화에 대한 관심은 1982년을 기점으로 급증합니다. 톰 피터스가 ‘초우량 기업의 조건’을 발간한 해입니다. 그는 르네 마그리트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를 인용해 말합니다. “조직도는 조직이 아니다. 새로운 전략이 저절로 기업의 시름을 덜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의 관심은 사람과 문화로 이어집니다. 그가 “전략이 눈치채지 못한 인간이란 얼룩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이후 문화는 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10여 년 전 삼성그룹이 대대적으로 기업 문화 개선 캠페인을 하면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당시 삼성전자가 사내 방송을 통해 내보낸 상황극 하나가 생각납니다. 제목은 ‘이 대리 아이디어 누가 죽였나’였습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죽인 범인은 “상무님이 싫어한다”고 말한 팀장, “당장 실적이 필요해”라고 무시한 과장, “어차피 내 일 아닌데 뭐”라며 방관한 동료 등이었습니다.

기업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한 중견기업이 기업 문화를 개선하겠다며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수평적 문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였지요. 당시 호칭 변경은 유행이었습니다. 한달 후, 그 회사 직원에게 잘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답은 이랬습니다. “사무실에서만 김**님이라고 부르고 담배 피우러 가면 그냥 대리님, 과장님이라고 불러요. 실패지요 뭐.” 호칭을 바꾸는 것도 힘듭니다. 문화를 바꾸는 것은 더더욱 지난한 일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기업 문화를 다뤘습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 대기업이 기업 문화란 재계의 담론을 주도했습니다. 이후 판교로 넘어갑니다. 스타트업과 빅테크들은 구글을 연상케 하며 파격적인 기업 문화는 선보입니다. 여기에 스톡옵션이라는 강력한 무기까지 장착, 인재들을 빨아들입니다.

2022년 다시 기업 문화를 얘기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이 된 재택근무, 그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의 입사, 더 빨라진 기술과 문화의 혁신 등이 다시 기업 문화를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기업 문화는 신체 부위인 머리·입·배·심장을 다루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조직 문화는 직원들의 뇌를 활성화합니다. 일을 통해 학습하고 배울 수 있는 상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입은 말할 자유를 뜻합니다. 윗분들의 생각과 다르거나 초보적 수준의 아이디어라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말이지요. “위대한 발명은 교수 연구실이 아니라 교수들의 휴게실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나온 생각들이 자유롭게 교환되는 자리가 아이디어의 성지가 됐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입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상사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회의와 카톡창 때문에 카톡 지옥, 회의 지옥이란 말까지 나왔습니다.

다음은 배. 사실 직원들의 지갑을 두둑이 채워 주는 것보다 더 큰 복지는 없지요. 삼성 직원들이 퇴사할까 하다가도 매년 나오는 성과급 때문에 주저앉는다는 얘기는 익숙합니다.

심장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건전한 박동이 첫째입니다. 조직이, 일이 직원들의 심장을 뛰게 해주는가입니다. 진취적 목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불어넣는 문화를 말합니다. 불건전한 박동은 경계해야 합니다. 쓸데없이 직원들을 긴장하게 하는 문화 말입니다. 출근할 때 ‘오늘은 어떻게 견뎌내지’라는 불안감을 느끼는 직장인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저 혼자만 살겠다는 상사와 동료에게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동료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문화를 갖는 조직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좋은 문화를 만들기 힘들다고 합니다. 숫자를 지키려고 사람을 희생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기 위해 수치를 희생하는 문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글을 마치면 후배들의 글을 고칠 예정입니다. “왜 글을 이 정도밖에 못 쓰냐”고 귀한 집 아들딸들을 몰아칠 스스로를 떠올려 봅니다. ‘오늘은 이런 글도 썼으니 좀 참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