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X잡코리아 설문]
집중력·유대감 높이는 것은 숙제…어중간한 복지보다 현금성 복지 원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기업 평점이 낮은 회사에 꼭 써 있는 리뷰다. 지능이 높은 순서대로 회사를 탈출한다는 뜻이다. 낡은 기업 문화와 성장 전망의 부재, 업계 대비 낮은 처우 등을 이유로 직원들의 목표가 곧 ‘탈출’이 된 기업이다.
판교 정보기술(IT) 기업과 스타트업 위주로 진화해 온 한국의 기업 문화는 지난 2년간 급변했다. 코로나19 사태와 새로운 세대의 등장, 익명 커뮤니티 활성화가 기업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촉발했다. 특히 공정한 성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노사 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사원이 경영진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정확한 성과급 산출 방법을 요구했고 경영진은 직접 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보상책 마련을 약속했다.
지난해 LG전자·금호타이어·현대차그룹에서는 2030세대가 주축이 된 사무직 노조도 설립됐다. 삼성전자는 2020년 ‘무노조 경영’을 철폐했고 지난해 창사 52년 만에 처음으로 노사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성과급 논란의 불씨는 임금 인상 행렬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직원들 사이에서 보상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던 기업들은 논란을 잠재우고 인재 이탈을 막기 위해 연봉 인상안을 들고나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는 기업 문화 혁신의 도화선이 됐다. 블라인드 등 직장인 익명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기존에 사내 게시판이나 입소문을 통해서만 알려지던 일들이 다른 기업과 동종업계, 언론 등에서 쉽게 공론화됐다.
"다시 출근? 싫어요"기업 문화는 곧 기업의 경쟁력이다. 낡은 기업 문화는 인재 유출로 이어지고 인재 유출은 기업의 비용 손실과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 소통은 필수가 됐고 직원 처우는 경영의 핵심 요소가 된 지금, 한경비즈니스가 잡코리아와 함께 다시 ‘기업 문화’를 조명했다. 직장인 1501명에게 기업 문화 혁신에 대해 물었다. 1501명 중 40명을 제외한 모두가 기업 문화 혁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일과 삶의 균형이나 회사에서 주는 아침밥보다는 ‘현금성 복지(34.8%)’를 가장 최우선으로 꼽았고 기업 문화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영진의 강한 의지(49.8%)’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기업 문화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새로운 근무 방식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시 출근하라’는 기업과 ‘싫다’는 직원들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애플과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기업들 역시 사무실 출근을 권하는 회사와 재택근무 연장을 요구하는 직원들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는 ‘협업’을 위해 출근하라고 하고 직원들은 ‘효율성’을 위해 집에서 일하겠다고 한다. 한경비즈니스와 잡코리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501명 중 65.2%는 재택근무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보통이다’라는 답변이 25.9%,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답변은 8.9%에 불과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으로 ‘출퇴근 시간 단축으로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58.4%)’를 꼽았다.
한국 직장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통근 시간이 가장 길다(2018년 OECD 통계). 통근하는 데는 평균 58분이 걸려 OECD 국가 26곳의 평균 통근시간인 ‘28분’보다 약 2배 길다. 그래서인지 출퇴근 시간 단축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은 직장인이 가장 많았다. ‘상사 등 불편한 사람과의 접촉을 줄일 수 있다(13.3%)’는 답변은 2위를 차지했다. ‘잦은 회의 등 비효율적인 업무가 감소한다’는 답변은 12.3%로 3위였다. ‘회식이 줄어 좋다(5.2%)’는 답변은 가장 적은 선택을 받았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집에서 업무 환경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23.4%로 가장 많았다. 2위는 ‘집중력이 떨어진다(22.6%)’였고 ‘다른 직원들과의 유대감이 떨어진다(22.3%)’는 답변은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했다.
이 설문 결과에 비춰볼 때 기업들에 주어진 가장 큰 숙제는 재택근무 등 유연 근무제를 유지하면서 직원들의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SK그룹 일부 계열사들은 이를 위해 집에서 가까운 곳에 거점 오피스를 내기도 했다. 직장인 1501명이 회사에 가장 바라는 기업 문화는 복지카드나 복지포인트 등 ‘월급 외 현금성 복지 확대(34.8%)’였다. 최근 기업 리뷰나 평점에서는 ‘금융 치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업무 강도와 성과에 대한 압박이 높더라도 돈으로 이를 치료한다는 뜻이다. 연봉과 성과급 외에도 현금성 복지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일을 해 돈을 벌었다면 다음은 휴식이다. ‘해피 프라이데이 등 워라밸을 높이는 제도(19.1%)’가 2위를 차지한 배경이다. 다음으로 ‘수평적인 소통(16.9%)과 ‘출퇴근 및 점심시간 유연화(15.3%)’가 뒤를 이었다. 여전히 많은 한국 기업들은 권위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침밥이나 사내 유치원 등 사내 복지’를 꼽은 직장인은 14%로 가장 적었다.
최근 스타트업과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재택근무와 스톡옵션 등 직원들을 위한 복지가 경쟁처럼 번지고 있다. 직장인의 대부분은 ‘이들의 기업 문화 혁신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79%)’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기업의 소식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블라인드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 다른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만의 독특한 구조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말 바꾸는 상사’가 가장 문제
ㄹ1501명의 직장인 중 97.3%가 ‘기업 문화 혁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기업 문화 혁신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 ‘기존 업무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30.7%로 가장 높았다. ‘구성원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29.5%)’는 답변은 2위를 차지했다.‘산업 패러다임의 변화(22%)’와 ‘인재 경쟁(15.9%)’을 위해 필요하다는 응답도 꽤 많았다. 혁신보다 ‘지금이 좋다’는 응답자는 1.8%에 불과했다.
‘기업 문화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는 1위부터 3위까지가 모두 구성원의 의지와 관련된 답변이었다. ‘경영진의 강한 의지(49.8%)’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22.9%)’와 ‘CEO의 명확한 전략(15.4%)’이 뒤를 이었다.
기업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상사에 대해서도 물었다. 직장인의 85.9%는 상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응답자 중 45%가 상사가 일할 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답했고 40.9%가 ‘크다’고 답했다. ‘영향이 작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1500명 중 32명에 불과했다.
현재 응답자의 상사가 가진 문제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명확하지 않은 업무 지시와 말 바꾸기(37.2%)’였다. ‘답이 정해져 있는 대화(24.8%)’는 2위를 차지했고 ‘권위적인 태도(20.3%)’ 역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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