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기업 협력 통해 아시아 등 해외 시장 개척 가능성
그린 이노베이션 주도할 잠재력도 있어
극도로 경색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일본에서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물론 역사 문제를 비롯한 한·일 관계의 어려움이 있어 일본 정치권에서도 한·일 관계의 개선을 지나치게 낙관할 수 없다는 경계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양국 관계의 어려움은 있지만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의 악화 속에서 한·일 양국은 서로 협력하는 이점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경제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은 협력을 통해 양국의 경제적 위상을 글로벌한 차원에서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이다. 또한 일본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거대한 규모에 달한다. 일본의 수출 규모는 2019 회계연도 기준으로 76조9000억 엔이지만 일본계 기업 해외 현지 법인의 총매출액은 263조1000억 엔, 이들의 각종 제품 조달 금액은 151조2000억 엔이다.
한국 기업은 일본 시장에서만 일본 기업과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동남아 등에서 일본계 기업과 많은 거래를 하고 있고 대아시아 수출 중에는 이들 일본 기업의 현지 거점에 대한 수출도 포함된다.
한국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전기전자·자동차·화학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반도체를 비롯한 각종 분야에서 한·일 기업 협력을 통해 아시아 등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서로 소재·부품·장비 등 B2B 분야의 수출이 주종을 이루는 등 제조업의 기반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협력하면서 산업의 탈탄소화, 그린 이노베이션을 주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전력뿐만 아니라 원료·열에너지 등을 포함한 산업 전반의 탈탄소화는 단기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고 선진국이라고 해도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비용으로 탈탄소화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상태다.
차세대 그린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비용 절감, 효율성 제고 등에 주력해야 하는데 세계 유수의 제조 강국인 한·일 양국이 차세대 원자력, 차세대 재생에너지, 수소 제조·활용 시스템, 석유화학·철강 분야 등의 화석 자원 원료 대체 기술 등의 개발에서 협력하고 서로의 강점 분야에 주력함으로써 주력 제조업의 도태 압력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공급망 안정화 차원에서도 한·일이 협력하는 이점은 많다. 양국은 제조 강국이면서 각종 자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는 취약성 측면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다. 양국 모두 자유 무역의 이점이 크고 미·중 마찰, 자원 민족주의, 글로벌화의 후퇴 압력 속에서도 보다 자유로운 통상·투자 질서를 지키는 데 협력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제삼국에서 희소 자원의 공동 개발이나 공동 구매를 통해 조달망의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다. 제조 거점인 아시아 역내 각국의 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일이 협력하는 것이 부품 조달난에 따른 자동차 생산 차질 등의 피해 최소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이 중국의 위협을 보다 경계하면서 아시아 역내의 협력 파트너로서 일본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은 통상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한 외교력을 높이고 있고 한국은 지역 협정, 세계 통상 질서 등에서도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일 양국 협력의 잠재적인 이익을 고려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각종 문제를 극복하고 우호적인 글로벌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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