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 업소명·주소, 이미 공개된 정보”
네이버·다원중개 크롤링 분쟁에도 영향 줄듯

[법알못 판례 읽기]
야놀자 유튜브 광고 화면. 사진=야놀자 유튜브
야놀자 유튜브 광고 화면. 사진=야놀자 유튜브
경쟁 회사 ‘야놀자’의 제휴 숙박 업소 목록을 영업 목적으로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기어때’ 창업자 심명섭 전 위드이노베이션 대표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미 이용자들에게 공개된 정보를 가져갔기 때문에 크롤링(자동으로 웹페이지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가 나온 것이다.최근 크롤링을 두고 법적 분쟁이 잇따르는 플랫폼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크롤링 합법’ 판례 등장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22년 5월 12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정보통신망 침해 등) 혐의로 기소된 심 전 대표의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사건은 여기어때가 2016년 6월부터 10월까지 크롤링 프로그램을 활용해 야놀자의 제휴 숙박 업소 목록, 주소 정보, 가격 정보 등을 수집하면서 비롯됐다.

여기어때는 이전까지 야놀자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과 PC용 웹페이지에 접속해 수기로 일일이 해당 정보를 취합했지만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면서 더 광범위한 정보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여기어때의 크롤링 프로그램은 반경 1000km 내에 있는 숙박 업소의 정보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어때는 크롤링 프로그램으로 4개월간 야놀자의 모바일 앱용 앱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서버에 1594만여 차례 접근했다. 그러던 중 야놀자가 여기어때의 반복적인 크롤링 프로그램 이용에 따른 대량 호출 신호를 감지하게 됐다. 이는 곧바로 고소와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에선 야놀자가 승소했다. 재판부는 심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했다. 크롤링 프로그램을 통한 정보 수집 행위에 참여했던 다른 여기어때 직원들도 징역형의 집행 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

1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신민석 판사는 “여기어때 측은 야놀자와의 경쟁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당 기간 크롤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서버에 침입, 숙박 업소에 관한 정보를 복제했다”며 “크롤링 프로그램이 검색 엔진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타인의 정보통신망을 무단으로 침입하는 불법 행위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서울 강남구 여기어때컴퍼니 본사 전경. 사진=여기어때 제공
서울 강남구 여기어때컴퍼니 본사 전경. 사진=여기어때 제공
“공개된 정보 수집은 위법 아냐”

형사 처분을 받을 위기에 몰렸던 여기어때 임직원들은 항소심에서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부장판사 최병률‧유석동‧이관형)는 심 전 대표와 임직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크롤링 프로그램으로 확보한 정보 대부분이 이용자들에게 공개돼 있는 것이란 점을 판결 근거로 삼았다.

야놀자가 앱이나 API 서버 접속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도 재판의 흐름을 바꾼 요인으로 작용했다.

2심 재판부는 “여기어때 측이 크롤링을 통해 가져간 정보는 야놀자가 숙박 예약 영업을 위해 이용자들에게 공개한 정보”라며 “앱을 통하더라도 크롤링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과 똑같은 정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결이 유지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일반 이용자들도 앱을 통해 야놀자의 서버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고 서버 접근을 막는 별도의 보호 조치도 없었다”며 “크롤링 프로그램으로 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정만으로 접근 권한이 없는 정보에 침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심 전 대표 등이 무죄를 인정받으면서 여기어때가 야놀자와의 민사 소송(권리 침해 금지 소송) 결과도 뒤집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2부(부장판사 박태일‧이민수‧이태웅)는 2021년 8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고 여기어때에 “야놀자에 10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여기어때가 크롤링 프로그램으로 야놀자의 숙박 정보를 수집한 것을 민법상 불법 행위인 부당 경쟁 행위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여기어때가 크롤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야놀자의 정보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그 결과 야놀자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형사 소송 결과는 다른 플랫폼 업체들의 크롤링 분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네이버가 부동산 정보 스타트업인 다원중개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다원중개가 크롤링 프로그램을 통해 네이버부동산의 매물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했기 때문에 이 같은 행위를 중단하고 손해 배상을 하라는 내용이 골자다.


[돋보기]
잡코리아 채용 정보 무단 복제한 사람인은 ‘패소’

여기어때와 야놀자보다 먼저 크롤링으로 갈등을 겪었던 채용 플랫폼 기업 잡코리아와 사람인 간 법적 분쟁에선 다른 판결이 나왔다. 크롤링 프로그램을 통해 잡코리아의 정보를 가져간 사람인이 패소했다.

잡코리아와 사람인의 분쟁은 2008년 시작됐다. 잡코리아에 등록된 기업들의 채용 공고를 사람인이 크롤링 프로그램을 사용해 수집해 자사 플랫폼에 게재한 것이 불씨가 됐다. 사람인은 처음엔 잡코리아의 지적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그 이후에도 같은 방식의 정보 복제를 계속했다.

이에 잡코리아는 2010년 법원에 채용 정보 복제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듬해인 2011년 잡코리아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람인에 “잡코리아의 채용 정보를 무단 게재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사람인의 무단 정보 복제가 이어지자 잡코리아는 저작권 침해 금지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사는 소송전에 뛰어들면서 사람인에 “무단 복제한 채용 정보 1건당 50만원씩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법원도 연이어 잡코리아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사람인에 “무단 복제한 채용 정보 396건을 폐기하고 잡코리아에 건당 50만원씩 계산해 총 9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잡코리아가 ‘데이터베이스권 침해’ 주장을 추가로 펼친 2심에서도 원고가 승소했다. 재판부는 사람인에 데이터베이스권 침해 관련 손해 배상금 2억5000만원 등 총 4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람인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법정에선 잡코리아가 일률적으로 크롤링을 금지했음에도 사람인이 가상 사설망(VPN)을 활용해 잡코리아의 정보통신망에 침투한 것이 유죄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이는 야놀자와 여기어때 간 분쟁 상황과 가장 다른 점으로 꼽힌다.

여기어때는 야놀자가 모바일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별도로 제한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야놀자의 정보를 수집해 갔다.

다만 ‘정보 제공자의 허락’은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롤링이 위법인지에 대한 논쟁이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크롤링한 데이터가 저작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정보 제공자의 노력이 투입됐는지, 크롤링으로 정보 제공자가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도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