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저평가된 한국 증시, 기업 지배 구조 개선 적기에 해결해야

[인터뷰] 강성부 KCGI 대표
강성부 KCGI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강성부 KCGI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2018년 한국 행동주의 펀드의 첫 대기업 공격으로, 한국의 자본 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이가 있다.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한국판 엘리엇’의 등장이라고도 했고 혹자는 한국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의 선구자라고 평했다. 이른바 ‘강성부펀드’의 주인공이자 한국 최초로 ‘행동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를 이끄는 강성부 대표다.

강 대표는 2018년 한진칼 대주주를 향한 날 선 비판과 투명 경영 요구로 주목받은 뒤 줄곧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로서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투자를 해 왔다. 그는 한국 주식 시장의 오늘날 문제가 세계적인 매크로 현상 외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한국 증시에 변화의 물꼬를 텄다면 이제 다음은 정부·국회·기업이 나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시기라는 것이다. 주식 시장 침체기에 그를 만나 한국 시장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지금 증시 상황에서 ‘기업 지배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적인 동학 개미 운동이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수익에서 큰 성과가 없습니다. 투자자들의 문제가 아니에요. 한국 주식 시장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죠. 모두의 물음표가 ‘기업의 펀더멘털은 좋아지는데 주식 시장은 왜 못 따라가는가’잖아요. 기업의 펀더멘털과 주가의 괴리가 더 심해지고 있어요.

기업의 잘못일까요. 기업 역시 많은 혁신을 했어요. 제가 2015년 ‘지배구조로 본 글로벌 기업전쟁’이란 책을 냈는데 그때 산업별 전망을 다뤘죠.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혁신을 거듭했고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오고 있죠. 반도체·자동차·조선·항공·문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가는 계속 저평가 받고 있어요. 미국에서 상장하면 같은 이익에도 3~4배 이상의 밸류에이션 평가를 받는데 기업이 한국 증시에 상장할 이유가 하나도 없죠. 지금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무엇인가요.

“기업은 주주와 직원, 나머지 이해관계인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해야 해요. 기업의 백년대계를 위한 최선의 의사 결정이죠.

선진국이 겪는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는 전문 경영인과 주주의 갈등인데, 한국은 달라요. 일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전횡을 저지르며 나머지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주주 간 갈등이 대부분이죠. 이 고질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문제의 키는 ‘세금’이 쥐고 있어요.”

-세금에 어떤 문제가 있나요.

“상속 증여세가 너무 높은 게 문제입니다. 최고 세율이 50%나 돼요. 상속세율이 높은 일본(55%)에서 가져왔죠. 그런데 일본과 한국은 사정이 달라요. 일본은 금융 실명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속 재산 중 3분의 1 정도는 차명 주식으로 넘기는 경우가 허다해요. 업계에선 실제 일본의 상속세율을 15~20%라고 보고 있죠.

한국은 금융 실명제로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여요. 여기에 주식 할증 평가 시 상속세 최고 세율은 60%까지 올라가죠. 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이렇다 보니 상속세·증여세가 조세 저항이 가장 심한 세금이 됐고 상대적으로 걷히는 것은 얼마 없어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5%(2021년 기준)에 불과하죠. 그런데 우리는 이 세금을 걷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어요. 그 에너지가 바로 한국 주식 시장의 ‘디스카운트’로 나타나고 있죠.”
강성부 KCGI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강성부 KCGI 대표. 사진=이승재 기자
-부자 감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나요.

“‘부자 감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요. 역설적이게도 증세에 타격을 입는 것은 진짜 부자인 기업인이 아니라 월급쟁이 고소득자와 일반 주주들이에요.

예를 하나 들게요. 10대 그룹에서 대주주(총수) 일가가 몇 %의 지분을 갖고 있을까요. 평균 2.4%(2021년 9월 1일 기준)입니다. 2.4%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결국은 의사 결정을 독점하고 있어요.

문제는 대주주에게 배당이 매력이 없다는 데 있어요. 배당 소득 등 금융 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종합 소득에 포함되므로 50%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합니다. 대주주들은 어차피 자기 지분율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배당해 봤자 2.4%밖에 안 들어 오죠. 3%도 안 되는 지분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배당할 유인이 그렇지 않아도 적은데 배당소득세까지 50%씩 물리면 더 배당을 하지 않겠죠. 기업의 대주주는 배당과 급여 대신 유보를 통한 자본 이득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간 부의 이동, 실적과 주가의 타이밍 조절로 지주사 전환, 분할, 합병, 상장 폐지, 해외 투자를 빙자한 재산 빼돌리기 등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다양한 편법들이 존재하죠.

2.4%의 주주가 세금을 아끼기 위해 배당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연금을 포함한 나머지 97.6%의 주주가 피해를 보고 있어요.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한국 증시가 주주 간 서로 믿지 못하는 시장이 되고 있죠. 불신의 자본 시장이에요. 자본 시장을 굴러가게 하는 본질이 ‘신용’인데도 불구하고요. 한국 주식을 사야 할 이유가 없게 된 거죠.”

-현재 한국 증시의 상황은 어떤 수준인가요.

“주식 시장의 온도를 측정하는 밸류에이션 지표들이 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 평균과 비교해 굉장히 낮은 수준이에요. 배당을 하지 않고 자금을 쌓아둔 채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낮추는 경영 형태가 이뤄지고 있죠.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굉장히 저평가 된 상태예요.

더 충격적인 것은 외국 투자자들은 베트남보다 한국 시장이 더 후진적이라고 본다는 거예요. 창피한 일이죠. 한국이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주식 시장은 베트남이 훨씬 더 좋은 거버넌스를 갖추고 있는 거예요. 주식 시장은 창의력의 용광로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막지 못하면 좋은 기업이 계속 해외로 빠져 나갈 거예요.”

-이전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주장했는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골이 깊으면 봉우리도 높잖아요. 개선의 여지도, 기대도 높은 게 한국 주식 시장이에요. 실제 많은 변화들을 목격하고 있죠. 저 때만 해도 외로운 길을 걸었지만 지금은 많은 금융가 후배들이 행동주의를 이야기하며 지배 구조 개선 운동을 하고 있어요.

주주 총회에서도 큰 변화가 보이는 게 대주주에게 맡겨 놓지 않는 것 같아요. 잘못된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죠. 동학개미운동이 투자 수익률로만 성패를 가리자면 큰 이득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문화적 측면에선 수익을 거둔 것 같아요. 주식 투자자들이 1000만 명을 넘어서 1300만 명까지 간다고 하는데 실로 엄청난 인구거든요. 주식 투자자가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 된 거예요. 이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때가 온 거죠.

수많은 투자자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에요. 동학개미들의 에너지는 한국 증시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힘이 모일 겁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선두 주자로서 기분이 어떤가요.

“기분이 정말 좋아요.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는 못 가잖아요. 동학개미운동으로 1300만 명의 투자자가 생겨 지금은 멀리 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 같아요.

저 땐 불꽃놀이 하듯이 허무하게 끝나 버릴까봐 그게 제일 두려웠어요. 실제 위기도 있었죠. 대한항공이 2019년 보잉 B-787 비행기 30대를 주문한다고 했을 때 이게 정말 망해 버리면 내 한진칼 주식은 종잇조각이 되는데 큰일이다.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주주이기 때문이죠. 주주는 실질적인 기업의 소유자로서 주주 총회를 통해 기업의 불법과 잘못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해요.

그런데 주주가 그 역할을 하면 우리는 마치 ‘경영권 찬탈’이니 ‘기업 사냥꾼’이니 하며 부정적으로 내몰아요. 지금 대한항공의 부채 비율이 3월 말 기준으로 267%입니다. 2019년 영구채를 반영한 부채 비율이 당시 1200%를 넘었거든요. 만약 보잉 B-787 비행기 30대를 주문했으면 부채 비율이 2000%가 넘었을 거예요. 그리고 6개월 뒤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거든요. 그때 주문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지금도 아찔해요.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대한항공은 1분기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죠. 앞으로는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기대하고 있어요.”

-강성부펀드의 다음은 어디를 향하나요.

“다음 투자 대상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는 저평가된 기업들이 많아요.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데도 불구하고 저평가된 기업들이죠. 그 이유가 ‘거버넌스’ 때문이라면 전 언제든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뛰어들 생각이 있어요. 다만 예전처럼 대기업에 뛰어들겠느냐고 물으면 글쎄요,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요.

전문 경영인 체제에도 문제가 많아요. 임기만 채우고 나가는 경우가 있죠. 이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다음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다만 당장은 아니고 잠시 시간을 좀 가지려고 합니다.”

-세계 증시 상황 때문인가요.

“지금 투자하기에는 주식 시장의 매크로 환경에 큰 흐름이 있는데 굉장히 어려운 여건이라고 봐요. 개인적으로 묻는 이들에게도 ‘현금을 50% 이상 가져가라. 쉬는 것도 돈 버는 것이다’라고 해요. 지금의 사이클은 300년 만에 온 변화라고 봅니다. 주식·채권·부동산 전부 다 녹록지가 않아요. 지금의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붕괴 상황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이에요.

과잉 생산 시대를 살며 분업의 이익은 깨졌고 세계화는 끝이 났죠. (각 국가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됐어요. 이성적으로 보면 미·중 갈등은 10~20년 만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 갈등에 의해 시작된 공급망 붕괴가 회복될 때까지는 우리는 이 물가 폭등을, 고금리를 견뎌내야만 해요. 금리는 자본 시장의 중력과도 같아요. 금리가 2%에서 4%가 되면 이론적으로 주가는 반 토막이 나야 해요. 미국 중앙은행(Fed)이 저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둔 게 문제입니다. 작년 초에 올렸어야 했는데 적기를 놓치다 보니 그 부작용이 지금 증시에 나타는 게 경제 위기의 본질이에요. 갑자기 핸들을 틀어야 하다 보니 더 거칠고 위험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시기에는 저점에서 잡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관점이 필요해요.

다행히도 ‘강성부펀드’는 가지고 있는 포트폴리오 대부분을 올해 초 엑시트했어요. 다음 행보를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