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30% 낮추고 공모 주식 수 줄여 이달 코스닥 상장 목표

[마켓 인사이트]
김대권 보로노이 대표. 사진=한국경제신문
김대권 보로노이 대표. 사진=한국경제신문
약물 설계 전문 기업 보로노이가 코스닥시장 상장 재도전에 나선다. 보로노이는 지난 3월 공모에 나섰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증시가 급락하면서 상장을 철회한 바 있다. 이번에는 공모 가격을 30% 이상 낮추고 공모 주식 수를 줄이고 재입성을 시도한다.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도입한 ‘유니콘 특례 요건’으로 증시에 입성하는 첫 사례가 될지도 주목된다.
‘약물 설계 전문 기업’ 보로노이, 석달 만에 증시 입성 재도전
회사 설립 후 7년간 기술 수출 4건

2015년 설립된 보로노이는 인천 송도에 본사를 둔 신약 개발 전문 기업이다. 2016년 시리즈 A 투자를 받아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실험실과 인공지능(AI)을 연계한 플랫폼 ‘보로노믹스’를 통해 기술 이전이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독자 개발한다. 세포 내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550여 개의 키나아제(인산화 효소) 중 질병의 원인이 되는 효소에만 선택적으로 결합해 병을 치료하는 표적 치료제가 주력 분야다.

현재 비소세포폐암과 유방암, 자가 면역 질환 치료제, 퇴행성 뇌 질환 분야 등 11개의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개발 물질은 전 임상과 임상 1·2상 등 초기 단계에 기술을 이전해 수익을 내고 있다. 신약 개발을 최종 목표로 하거나 임상 2상 후 기술 수출을 하는 다른 바이오 기업과의 차별점이다. 기술 이전이 목표인 만큼 이른 시일 안에 적합한 약물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한다.

약물 설계에서는 자체 AI 플랫폼인 보로노믹스를 활용한다. 실험실과 AI를 결합한 플랫폼으로 타깃 선정에서 최종 후보 물질 개발까지 필요한 기간을 1년~1년 6개월로 줄였다. 업계 평균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보로노이는 설계한 약물의 기술 수출을 적극 추진해 왔다. 이를 통해 2020년부터 3건의 미국 기술 수출을 포함해 총 4건의 기술 이전에 성공했다.

2020년 10월 미국 오릭파마슈티컬스(이하 오릭)에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를 기술 수출했고 지난해 8월 미국 브리켈바이오테크에 자가 면역 질환 및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 기술을 이전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피라미드바이오사이언스에도 고형암 치료제를 기술 수출했다. 한국 제약사 HK이노엔과도 같은 해 1월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기술 수출 규모는 17억9050억 달러(약 2조1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오릭에 기술을 이전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는 올해 1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임상 1상 승인을 받았다. 오릭은 임상 1상은 한국과 호주에서 진행하고 임상 2상부터 미국에서 할 계획이다. 뇌전이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에 집중해 조건부 시판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로노이는 중국·홍콩·마카오·대만 등 중화권 지역에도 이 물질의 기술 수출을 추진할 방침이다.

보로노이 관계자는 “다수의 중화권 업체에서 관심을 보이고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며 “임상 결과를 확보한 후 중화권 판권 계약을 신규 체결하면 큰 규모의 기술 이전 거래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술 수출 성과는 실적으로 나타난다. 보로노이는 지난해 오릭에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를 기술 이전해 47억원의 매출을 얻었다. 미국 브리켈바이오테크(52억원)와 피라미드바이오사이언스(24억원), HK이노엔(25억원) 등에서도 기술 이전 계약금을 받았다. 올해 1분기에도 오릭스에서 1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해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누적 결손금은 1000억원을 넘어 완전 자본 잠식 상태다. 회사 측은 이번 공모로 신주 모집 자금이 유입되고 추가 기술 이전으로 매출 증가세가 본격화된다면 재무 안정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보로노이는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순이익을 내고 영업 현금 흐름이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한다. 후속 파이프라인을 기술 수출하고 기존 파트너사들과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한 파이프라인의 임상이 진전되면 마일스톤 수수료와 판매 로열티 등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최근 기술 이전 협상 진행 상황 등을 반영하면 올해 매출이 261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148억원 대비 76%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약물 설계 전문 기업’ 보로노이, 석달 만에 증시 입성 재도전
공모가 30% 낮춰 증시 입성 재도전

보로노이는 지난달 13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본격적인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이달 8~9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진행해 공모가를 확정하고 14~15일 청약을 거쳐 이달말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공동 대표 주관 업무를 맡았다.

희망 공모 가격은 기존 5만~6만5000원에서 4만~4만6000원으로 약 30% 낮췄다. 공모 주식 수도 200만 주에서 130만 주로 줄였다. 총 공모 금액은 공모가 하단 기준 520억원이다. 공모가 기준 시가 총액도 6667억~8667억원에서 5056억~5814억원으로 낮아졌다. 한때 장외 시장에서 몸값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평가받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보로노이는 지난해 8월 프리 IPO(상장 전 지분 투자)를 유치할 당시 기업 가치를 7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VTI파트너스와 DS자산운용에서 각각 200억원과 50억원씩 총 25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일반적인 IPO 단계에선 프리 IPO 단계보다 기업 가치가 상승한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된 만큼 보수적으로 기업 가치가 산정됐다. 올해 초 상장을 철회했다가 재도전에 나선 대명에너지도 공모가를 30% 정도 낮춘 덕분에 증시 입성에 성공했다.

보로노이는 시가 총액 5000억원 이상의 기업에 적용되는 ‘유니콘 특례 요건’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예정이다. 유니콘 특례 상장은 비상장사 중 기업 가치가 높은 우량 기술 기업 등에 대해 기술 평가 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제도다.

적자 기업이더라도 시가 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면 평가 기관 1곳에서 ‘A’ 등급을 받는다면 상장이 가능하다. 기술 특례 상장은 평가 기관 두 곳에서 각각 ‘A’ 등급과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지만 유니콘 특례를 활용하면 1곳에서만 평가를 받으면 되기 때문에 유리하다.

기존 주주들은 상장 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기로 약속하는 보호 예수를 약속했다. 상장 직후 유통 가능한 주식은 기존 476만3046주(35.72%)에서 323만5562주(25.60%)로 줄었다. 상장 후 불거질 수 있는 오버행(대규모 매각 대기 물량)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보로노이는 유한양행·종근당·녹십자·보령제약 등 4개사를 비교 기업으로 선정해 기업 가치를 책정했다. 2024년 추정 당기순이익 704억원에 비교 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률(PER) 26.94배를 적용, 기업 가치를 9700억원으로 평가했다. 주당 평가 가액은 7만2464원으로, 할인율 36.52~44.8%를 적용해 공모가를 4만~4만6000원으로 제시했다.

김대권 보로노이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상이 진전됨에 따라 매출 추정에 변화가 있다”며 “올해도 글로벌 기술 이전에 성공하고 우수한 파이프라인을 확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