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받는 스위스 은행의 중립성…가까운 미래에 비트코인도 ‘세상 밖으로’ 나올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쏘아 올린 포탄이 스위스 은행들을 때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립국 지위에 대한 관용이 메마르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때 비밀 유지로 유명했던 스위스 은행들의 오랜 전통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국제적 공조가 여론을 등에 업고 진행 중이다.유엔 특별보고관 이레네 칸은 스위스의 은행법이 유엔의 국제 협약과 충돌한다고 밝혔고 스위스 의회가 47조를 수정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회부하겠다고 압박했다. 스위스 의회는 5월 6일 투표에서 47조에 대한 개정안을 거부했다.
문제의 47조는 기자까지 포함해 은행 고객 정보의 외부 누설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최대 3년이지만 정보의 대가를 받을 경우에는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스위스가 서명한 국제 협약, 특히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의 19조와 충돌하며 역시 스위스가 서명한 유럽인권협약 10조와도 충돌한다고 비판 받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의회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타협책으로 스위스 정부는 의심되는 은행 계좌를 보유한 기업에 대해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연방정보국(FIS)에 부여하는 새로운 정보법 초안을 제출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스위스 정보국조차 국내 은행 고객의 금융 거래를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나치 도왔다? 스위스 은행 ‘도덕성 타격’의 역사 스위스 은행이 도덕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위스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에 협력했다는 것은 소설이나 음모론으로만 존재했었다.
하지만 스위스 은행이 홀로코스트에서 사망한 유대인들의 유족들에게 가족 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출금을 거절해 왔던 것에 대해 유대인 단체가 미국의 정가를 움직여 압박을 가했다. 뉴욕과 미국에서 UBS 은행이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엄포도 놓아 결국 협상이 이뤄졌다.
당시 미국의 정가가 움직였던 이유는 스위스가 나치에 협력해 유대인들에게서 빼앗은 금괴를 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했고 결과적으로 나치 독일이 전쟁을 오래 끌 수 있는 자금을 지원했다는 증거들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심지어 스위스가 나치에게서 입수한 금괴로 발행한 금화에서 치과용 금니에나 있을 법한 높은 농도의 수은이 검출됐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등 스위스 은행의 이미지는 신뢰의 상징에서 더러운 돈의 파수꾼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유대인 유족들에게 천문학적 액수를 보상하고 10년쯤 지난 2008년, 월가는 금융 위기의 산실이 됐다. 금융 기업들의 회생을 위해 미국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어야 했는데 금융 엘리트들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좋지 않을 때 마침 스위스 은행에서 내부 고발이 흘러나왔다. 미국의 부자들이 세금 회피의 목적으로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국제 사회를 끌어들여 스위스 정부를 압박했고 2014년 결국 스위스는 자국 은행들이 50여 개의 국가 수사 기관에 의심되는 계좌 정보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는 협약에 사인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충격적인 데이터들이 드러났다. 2022년 2월 독일 언론사가 스위스 은행의 내부자에게서 입수한 정보를 전 세계 언론사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악명 높은 독재자들과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들의 비밀 계좌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여론이 악화될 때마다 스위스 은행 관계자들은 내부 정화를 위해 문제가 되는 계좌를 지속적으로 퇴출시키고 있다고 했지만 이 폭로로 자구적 노력의 진정성이 의심됐다. 서구 언론은 스위스 언론계와 협력해 스위스 은행에서 일하는 내부자들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어했지만 스위스 은행들은 제47조처럼 비밀 보호 위반의 대상자를 넓히고 형량을 강화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유럽의 변방에서 무력을 동원해 국제 질서를 깨뜨려 버리자 서구 세계는 금융 동결 같은 응징이라도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됐다. 결국 간판밖에 남아 있지 않은 스위스의 은행의 비밀 제도를 끝장내서라도 국제 사회의 굳은 의지를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다.
스위스의 은행비밀보호법은 1934년 제정됐지만 스위스의 은행 비밀 제도와 그에 따른 명성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교의 아성이던 제네바는 스위스로 이주한 프랑스인들을 프랑스의 구교 정부가 추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은행 정보를 외국 정부에 제공하지 못하게 했었다.
물론 스위스의 은행들이 수백 년 동안 은행 비밀 제도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꼭 도덕적이거나 올바른 제도여서는 아니다. 지정학적 환경의 변화가 이를 가능하게 한 점이 컸다. 이런 역사적 우연에 더해 스위스 은행가들의 독특하면서도 투철한 직업 정신 그리고 중립성 유지라는 명성에 힘입어 전 세계 부자들의 돈을 빨아들일 수 있었던 덕분에 척박한 지리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리게 되는 금융 산업의 원리를 국민이 일찌감치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위스의 은행이 비밀을 유지했기 때문에 거대한 악성 자금이 형성됐을까. 아니면 금융 비밀을 유지하려는 수요가 한 나라를 거대하고도 튼튼하며 중립적인 하나의 금고로 탈바꿈시켰던 것일까. 전자라면 스위스 은행의 비밀 유지 관행을 교살함으로써 이상주의자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의 축이 후자에 더 기울어져 있다면 비밀을 원하는 부자들의 자금이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결국 이상주의자들의 노력이 생각만큼 성공적인 결실을 얻지 못할 지 모른다. 비트코인 제도화, ‘신뢰 고속도로’ 열릴까 격랑의 시대 변화를 살아내야 할 미력한 개인에게 이는 중요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미국과 유엔 그리고 국제 사회가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주의의 간판을 떼어버리는 방식, 즉 국제적인 여론의 압박과 법제화의 힘으로 비트코인의 중립성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비트코인은 히틀러를 도운 적도 없고 유대인 유족들에게 갚을 빚도 없다. 하지만 만약 이미 발행이 완료돼 개인 지갑에 담겨져 있는 수백만 개의 코인들이 금융권과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탈세, 범죄 수익 은닉, 독재자와 그 측근들의 해외 도피 재산 등을 보호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언론들의 대대적인 공세가 이어지고 정치가들이 자극적인 말로 여론을 자극한다고 했을 때 스위스 은행의 수백 년 전통을 잠식하듯이 법정에 세우거나 사인을 강요하거나 유엔에 불러낼 증인이나 피고가 존재할까. 물론 문제의 주소에 입금된 비트코인을 현금화해 준 거래소나 뭉텅이 비트코인을 상대의 신분도 확인하지 않고 종이에 담아 넘긴 채굴자를 찾아내 법정에 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을 처벌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현실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너무나 많은 비트코인의 발행이 이미 끝났다. 즉 채굴업자나 거래소와 상관없이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금괴처럼 금고가 필요하거나 옮길 때 수송 트럭과 무장한 호송차도 필요하지 않다.
몇 년 전 이 사실을 눈치챈 미국의 규제 관련 엘리트들은 지연 전략을 구상했다. 되도록이면 국민이 비트코인을 모르게, 되도록이면 국민이 비트코인을 믿지 않게, 되도록이면 국민이 비트코인을 멀리하게로 요약되는 전략이다. 하지만 지연은 궁극적 해결책이 아니다. 언젠가는 밀린 숙제를 해야만 한다.
비트코인이 1달러를 넘는 순간부터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를 끝장내고자 하는 이상주의자들의 마음에 쏙 드는 해결책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로서 이상주의자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줄 수는 있다. 비트코인을 현실로 받아들이면 이 문제를 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보인다고 말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비트코인을 기업들의 회계 장부에 오르게 하는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다.
그렇게 되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비트코인의 상당 부분은 알프스 암벽 안의 어두컴컴한 금고에서 나와 신뢰 고속도로라고 해야 할 돈의 인터넷을 따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반짝거리며 돌아다니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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